광주비엔날레의 제1전시장으로 들어갈 때 잊지 말고 위쪽을 한번 쳐다보자. 전시장 입구 위에는 긴 이파리를 한가로이 늘어뜨린 야자수가 있는 옥상 정원이 있다. 미술전시장에 웬 야자나무? 궁금증은 잠시 걷어두고 나무 옆 의자에 앉아 나른한 봄 햇살을 즐겨 보면 어떨까.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을 만든 베르트 타이스의 의도니까 말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또 다른 진풍경이 펼쳐진다. 중국식 카펫과 의자가 놓여 있는 중국 찻집이 한구석에 보이는가 하면, 폴크스바겐의 딱정벌레차를 거꾸로 매달아 그네처럼 흔들리는 쉼터도 있다. 넓은 전시장 군데군데에 만든 쉼터는 광주비엔날레의 가장 큰 특징이다. ‘파빌리온’(정자)이라 불리는 이 쉼터는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인 ‘멈춤’(Pause)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관람객들은 쉼터인 동시에 그 자체가 기발한 설치작품인 파빌리온에서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를 다시 한번 곱씹게 될 것이다.
3월29일에 개막해 6월29일까지 3개월간 열리는 제4회 광주비엔날레는 어느 해보다 불리한 조건에 놓여 있다. 선거 열풍이 이미 광주를 휩쓸고 있는 데다, 비엔날레 기간중 열리는 월드컵도 호재로 작용하지 않을 듯싶다. 더구나 예산마저 3회의 11억원에서 3억7000만원으로 3분의 2 가까이 삭감되었다. 예산 부족으로 비엔날레 기간에 열리는 축제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개막을 불과 1주일 앞둔 시점이지만 광주 시내에서 비엔날레의 축제 분위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광주비엔날레가 ‘멈춤’을 주제로 삼은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멈춤’은 잠깐 주춤하고 있지만 곧 활동을 재개한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바삐 돌아가는 ‘삶의 속도전’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해보자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박만우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은 “홍보 등이 예년보다 미흡했던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전시 자체는 세계 여느 비엔날레 못지않은 높은 수준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가장 큰 특징은 ‘멈춤’이라는 큰 주제하에 네 개의 프로젝트를 나누고 그 프로젝트별로 전시 내용과 스타일을 달리했다는 점이다. 성완경 예술감독은 “프로젝트별 전시로 전시 내용을 명료하게 만들어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네 개의 전시장에 231명의 국내외 작가가 참가한 첫번째 프로젝트는 다양한 ‘멈춤’의 현상을 보여준다. 함진은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매향리에서 가져온 미사일을 천장에 매달았고 정연두의 ‘보라매 댄스홀’은 신대방동에 있는 실제 댄스홀을 그대로 재현했다. 일본 작가인 츠요시 오자와는 한국과 일본 작가 11명이 각기 축구공으로 자유롭게 작품을 만든 ‘예술인들의 축구경기’를 선보였다. 작가들의 제한 없는 상상력을 감상할 수 있는 첫번째 프로젝트는 사실상 이번 비엔날레의 메인 전시인 셈이다.
이에 비해 프로젝트 2, 3, 4는 제각기 특별한 ‘멈춤’의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프로젝트 2는 ‘이산의 땅’이라는 주제로 해외에서 활동중인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영상 위주로 꾸몄다. ‘이산의 땅’의 큐레이터는 재미교포 1.5세인 민영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수. 전시장의 디자인을 맡은 로널드 스트로드는 입양아 출신인 한국계 미국인이다. 24명 작가들의 이방인 의식은 작품 곳곳에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 거주하는 작가 김주영은 ‘고려 사람 : 그 슬픈 족적의 순례-쌀의 영혼제’라는 퍼포먼스로 7000km에 달했던 고려인의 강제 이주 과정을 그린다.
“‘이산의 땅’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한국인이 되어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같은 미국 계열이라도 2세와 3세의 표현 방식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하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땅에서 아웃사이더임을 느끼고 있고 그 같은 의식은 결국 작품의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민영순 큐레이터는 서툰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관객들이 열린 마음으로 ‘이산의 땅’ 프로젝트를 보아 주기를 부탁했다.
5·18 자유공원에서 열리는 프로젝트 3 ‘집행유예’는 어쩌면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흥미로운 전시일지도 모른다. 전시가 열리는 장소는 공원 내 옛 헌병대 부지. 이태호 김영수 신학철 등 국내 작가 49명은 내무반과 영창의 각 방을 전시장 삼아 작품을 설치했다. 한계륜은 영창의 바닥에 소금을 깔고 이 바닥을 스크린으로 이용해 갖가지 영상을 보여준다. 작가는 ‘역사의 부패를 소금으로 절이기 위해’ 소금을 뿌리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조덕현은 내무반 앞 공터를 파내고 타살된 개의 시체를 막 발굴하는 순간을 묘사한 작품 ‘개죽음’을 설치했다. 공원 한가운데 있는 헌병대 본부 사무실에는 고암 이응노의 작품이 등장했다.
‘집행유예’의 작품들은 명백히 정치적으로 보였다. 전시 장소로 군 헌병대를 택한 것부터가 이 프로젝트의 의도를 말해준다. 그러나 5·18항쟁을 주제로 삼았던 과거의 전시 방식에 비해 ‘집행유예’ 프로젝트는 상당히 유연하고 포용력 있는 방식으로 과거사를 끌어안고 있다.
학생동원 등 자제 ‘거품빼기 원년’
네 번째 프로젝트인 ‘접속’은 아예 광주 시내로 나왔다. 이 프로젝트는 남광주시장 옆에 있는 옛 남광주 역사(驛舍)와 폐선 부지를 전시 장소로 택했다. 역사와 철도 주변에 10동의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그 안팎에서 전시가 열린다. 시민들이 직접 돌탑을 쌓는 ‘쇄석의 고고학’처럼 대중 참여작이 많다는 점이 ‘접속’ 프로젝트의 특징이다. ‘접속’이라는 주제는 시장과 철도의 접속 지점인 전시 장소를 가리키는 동시에 일상과 미술이 만나는 지점을 상징하기도 한다. 주최측은 비엔날레관과 제3, 4 프로젝트가 열리는 5·18 자유공원, 폐선 부지 사이를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영할 계획이다.
4회를 맞은 광주비엔날레는 어느 정도 제자리를 잡을 시기를 맞았다. 95년 열린 제1회 행사에서 무려 2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광주비엔날레가 과연 올해의 ‘멈춤’ 이후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 것인가. 지역 언론은 형편없이 줄어든 예산과 시민의 무관심, 부족한 홍보, 미흡한 준비상황 등을 계속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반면 학생 동원 등으로 관람객 수를 부풀리는 분위기였던 과거에 비해 올해의 광주비엔날레는 거품이 꺼진 진정한 미술 축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없지 않다.
취재를 위해 광주를 찾은 날은 마침 몇 십년 만에 최악이라는 황사가 광주 시내를 온통 뒤덮고 있었다. 비엔날레관이 있는 중외공원 주변에는 광주비엔날레의 연두색 깃발들이 걸려 있었다. 뿌연 먼지바람 속에서 깃발들은 유난히 힘없어 보였다. 그 깃발들이 본래의 화사한 색깔을 빛내며 펄럭이는 광경이 보고 싶어졌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또 다른 진풍경이 펼쳐진다. 중국식 카펫과 의자가 놓여 있는 중국 찻집이 한구석에 보이는가 하면, 폴크스바겐의 딱정벌레차를 거꾸로 매달아 그네처럼 흔들리는 쉼터도 있다. 넓은 전시장 군데군데에 만든 쉼터는 광주비엔날레의 가장 큰 특징이다. ‘파빌리온’(정자)이라 불리는 이 쉼터는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인 ‘멈춤’(Pause)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관람객들은 쉼터인 동시에 그 자체가 기발한 설치작품인 파빌리온에서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를 다시 한번 곱씹게 될 것이다.
3월29일에 개막해 6월29일까지 3개월간 열리는 제4회 광주비엔날레는 어느 해보다 불리한 조건에 놓여 있다. 선거 열풍이 이미 광주를 휩쓸고 있는 데다, 비엔날레 기간중 열리는 월드컵도 호재로 작용하지 않을 듯싶다. 더구나 예산마저 3회의 11억원에서 3억7000만원으로 3분의 2 가까이 삭감되었다. 예산 부족으로 비엔날레 기간에 열리는 축제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개막을 불과 1주일 앞둔 시점이지만 광주 시내에서 비엔날레의 축제 분위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광주비엔날레가 ‘멈춤’을 주제로 삼은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멈춤’은 잠깐 주춤하고 있지만 곧 활동을 재개한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바삐 돌아가는 ‘삶의 속도전’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해보자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박만우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은 “홍보 등이 예년보다 미흡했던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전시 자체는 세계 여느 비엔날레 못지않은 높은 수준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가장 큰 특징은 ‘멈춤’이라는 큰 주제하에 네 개의 프로젝트를 나누고 그 프로젝트별로 전시 내용과 스타일을 달리했다는 점이다. 성완경 예술감독은 “프로젝트별 전시로 전시 내용을 명료하게 만들어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네 개의 전시장에 231명의 국내외 작가가 참가한 첫번째 프로젝트는 다양한 ‘멈춤’의 현상을 보여준다. 함진은 군부대의 협조를 얻어 매향리에서 가져온 미사일을 천장에 매달았고 정연두의 ‘보라매 댄스홀’은 신대방동에 있는 실제 댄스홀을 그대로 재현했다. 일본 작가인 츠요시 오자와는 한국과 일본 작가 11명이 각기 축구공으로 자유롭게 작품을 만든 ‘예술인들의 축구경기’를 선보였다. 작가들의 제한 없는 상상력을 감상할 수 있는 첫번째 프로젝트는 사실상 이번 비엔날레의 메인 전시인 셈이다.
이에 비해 프로젝트 2, 3, 4는 제각기 특별한 ‘멈춤’의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프로젝트 2는 ‘이산의 땅’이라는 주제로 해외에서 활동중인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영상 위주로 꾸몄다. ‘이산의 땅’의 큐레이터는 재미교포 1.5세인 민영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수. 전시장의 디자인을 맡은 로널드 스트로드는 입양아 출신인 한국계 미국인이다. 24명 작가들의 이방인 의식은 작품 곳곳에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 거주하는 작가 김주영은 ‘고려 사람 : 그 슬픈 족적의 순례-쌀의 영혼제’라는 퍼포먼스로 7000km에 달했던 고려인의 강제 이주 과정을 그린다.
“‘이산의 땅’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한국인이 되어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같은 미국 계열이라도 2세와 3세의 표현 방식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하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땅에서 아웃사이더임을 느끼고 있고 그 같은 의식은 결국 작품의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민영순 큐레이터는 서툰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관객들이 열린 마음으로 ‘이산의 땅’ 프로젝트를 보아 주기를 부탁했다.
5·18 자유공원에서 열리는 프로젝트 3 ‘집행유예’는 어쩌면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흥미로운 전시일지도 모른다. 전시가 열리는 장소는 공원 내 옛 헌병대 부지. 이태호 김영수 신학철 등 국내 작가 49명은 내무반과 영창의 각 방을 전시장 삼아 작품을 설치했다. 한계륜은 영창의 바닥에 소금을 깔고 이 바닥을 스크린으로 이용해 갖가지 영상을 보여준다. 작가는 ‘역사의 부패를 소금으로 절이기 위해’ 소금을 뿌리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조덕현은 내무반 앞 공터를 파내고 타살된 개의 시체를 막 발굴하는 순간을 묘사한 작품 ‘개죽음’을 설치했다. 공원 한가운데 있는 헌병대 본부 사무실에는 고암 이응노의 작품이 등장했다.
‘집행유예’의 작품들은 명백히 정치적으로 보였다. 전시 장소로 군 헌병대를 택한 것부터가 이 프로젝트의 의도를 말해준다. 그러나 5·18항쟁을 주제로 삼았던 과거의 전시 방식에 비해 ‘집행유예’ 프로젝트는 상당히 유연하고 포용력 있는 방식으로 과거사를 끌어안고 있다.
학생동원 등 자제 ‘거품빼기 원년’
네 번째 프로젝트인 ‘접속’은 아예 광주 시내로 나왔다. 이 프로젝트는 남광주시장 옆에 있는 옛 남광주 역사(驛舍)와 폐선 부지를 전시 장소로 택했다. 역사와 철도 주변에 10동의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그 안팎에서 전시가 열린다. 시민들이 직접 돌탑을 쌓는 ‘쇄석의 고고학’처럼 대중 참여작이 많다는 점이 ‘접속’ 프로젝트의 특징이다. ‘접속’이라는 주제는 시장과 철도의 접속 지점인 전시 장소를 가리키는 동시에 일상과 미술이 만나는 지점을 상징하기도 한다. 주최측은 비엔날레관과 제3, 4 프로젝트가 열리는 5·18 자유공원, 폐선 부지 사이를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영할 계획이다.
4회를 맞은 광주비엔날레는 어느 정도 제자리를 잡을 시기를 맞았다. 95년 열린 제1회 행사에서 무려 2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광주비엔날레가 과연 올해의 ‘멈춤’ 이후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 것인가. 지역 언론은 형편없이 줄어든 예산과 시민의 무관심, 부족한 홍보, 미흡한 준비상황 등을 계속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반면 학생 동원 등으로 관람객 수를 부풀리는 분위기였던 과거에 비해 올해의 광주비엔날레는 거품이 꺼진 진정한 미술 축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없지 않다.
취재를 위해 광주를 찾은 날은 마침 몇 십년 만에 최악이라는 황사가 광주 시내를 온통 뒤덮고 있었다. 비엔날레관이 있는 중외공원 주변에는 광주비엔날레의 연두색 깃발들이 걸려 있었다. 뿌연 먼지바람 속에서 깃발들은 유난히 힘없어 보였다. 그 깃발들이 본래의 화사한 색깔을 빛내며 펄럭이는 광경이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