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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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는 왜 고레에다를 싫어할까

칸영화제 황금야자수상 수상작 ‘어느 가족’에 답이 있다

  •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입력2018-08-07 11: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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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야자수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왼쪽)과 7월 30일 기자간담회장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진 제공·티캐스트, 뉴시스]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야자수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왼쪽)과 7월 30일 기자간담회장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진 제공·티캐스트, 뉴시스]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56) 감독이 한국을 찾았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야자수상(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원제 ‘만비키 가족’)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7월 30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관심은 고레에다 감독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긴장관계에 모아졌다. 고레에다 감독은 “정부의 축하는 영화 본질과 상관없는 문제”라며 “영화가 정쟁의 소재가 되는 것이 편하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5월 19일(현지시각) 칸영화제에서 ‘어느 가족’이 황금야자수상을 수상하자 일본열도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요미우리’와 ‘산케이’ 등 우익신문도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감독의 ‘우나기’(1997) 이후 21년 만의 쾌거라며 찬가를 불렀다. 그들에겐 영화 내용보다 일본영화의 수상이라는 결과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정부 차원의 축하 사절한 고레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베 총리의 축하메시지가 나오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스포츠 또는 문화 이벤트에서 세계적 성과를 거둔 일본인에게 축전을 보내거나 축하전화를 걸었다. 심지어 지난해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石黒一雄)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도 축하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기자들 질문에 축하의 뜻을 전했을 뿐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급기야 6월 7일 일본 참의원 문부과학위원회 대정부 질의 과정에서 이에 대한 질의가 나왔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문부과학상이 “감독을 직접 만나 축하인사를 전하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고레에다 감독은 바로 그날 자신의 블로그에 ‘영화가 한때 ‘국익’이나 ‘국책’과 일체화돼 큰 불행을 초래한 과거가 있었다. 이를 반성한다면 거창하겠지만, 공권력과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글을 올렸다. 일본 정부 차원의 축하를 사실상 거부한 것이었다. 정부의 홀대론이 등장하자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려다 망신을 당한 꼴이 되고 말았다. 

    고레에다 감독은 일본 사회의 복지제도와 교육 문제를 다뤄온 TV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이다. 서른셋에 극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후 해체된 가족을 자주 등장시켜 ‘제2의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라는 평가를 들을 때마다 “차라리 일본의 켄 로치(영국의 사회파 감독)가 되고 싶다”고 응대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아베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좋게 봤을 리 만무하다. 



    고레에다 감독은 2013년 발간한 에세이 ‘걷는 듯 천천히’에서 아베 정부의 일본 대중문화 수출 정책인 ‘쿨 저팬’을 이렇게 비판했다. ‘단순히 영화의 해외 진출로 외화를 벌겠다는 발상이라면, 그런 태도는 ‘쿨’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밖에 없다. (중략) 속내는 어떻든 ‘영화의 다양성에 기여하기 위해’, 즉 ‘영화 문화 그 자체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가치관을 내걸고 임하지 않는 한, 그 대응이 세계 영화인들에게 존경받는 일도 없을 것이며, 그런 접근이 영화의 현재와 이어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속 좁은 아베 총리가 그저 자신을 비판했다고 고레에다 감독을 싫어한다는 것은 너무 1차원적 시각이다. 거기엔 좀 더 심층적인 진실이 숨어 있을 공산이 크다. 먼저 영화 ‘어느 가족’의 내용부터 살펴보자. 

    영화가 시작하면 낡고 좁은 집에 3대가 오순도순 살아가는 시바타가(家) 사람들이 하나 둘 소개된다. 연금생활자인 할머니 하츠에(기키 기린 분), 막노동꾼인 아들 오사무(릴리 프랭키 분)와 세탁부인 며느리 노부요(안도 사쿠라 분), 젊은 남성들에게 묘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처제 아키(마쓰오카 마유 분), 초등학생 나이지만 홈스쿨링을 하는 손자 쇼타(조 가이리). 오사무와 쇼타 부자는 슈퍼마켓에서 콤비플레이로 일용품을 훔친 뒤 귀가하는 길에 추위에 떨고 있는 다섯 살 소녀 유리(사사키 미유 분)를 발견한다. 유리가 학대아동인 것을 알게 된 시바타가 사람들은 “돈을 요구하지도, 협박 전화를 하지도 않았으니 유괴가 아니다”라며 유리를 친딸처럼 키운다. 

    처음엔 다소 코믹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이들 가족 구성원의 정체가 하나씩 밝혀지면서 영화는 점점 무거워진다. 이들 중 유일하게 안정적 수입원이 있던 하츠에가 ‘고맙다’는 입술인사만 남긴 채 숨지자 남은 가족은 이를 감추고 하츠에 몫의 ‘연금’에 의지해 살아간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아베

    블루엘리펀트가 최근 출간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블루엘리펀트가 최근 출간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영화는 몇 해 전부터 일본열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숱한 연금사기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노부모의 연금을 계속 타려고 사망 사실을 숨긴 채 살아 있는 척 속여 국민 혈세를 훔쳤다고 비난받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양심’을 비난하기 전 그들을 그렇게 몰아넣은 ‘상황’을 먼저 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를 묻는다. 

    아베 총리로 대변되는 주류 관점에서 영화 속 가족은 사회적 악(惡)이거나 병(病)이다. 영화에서도 경찰에 체포된 그들은 경악과 혐오의 대상으로 추락한다. 즉 영화도 그들을 마냥 순박한 사람들로 그리진 않는다. 다섯 살 아이에게 도둑질을 가르치고, 자기들을 거둬준 할머니를 장례도 없이 뒷마당에 묻고, 경찰에게 잡힐 위기에 몰리자 아들처럼 키우던 아이를 버리고 도망가려 한다. 감춰진 원한과 범죄까지 드러난다. 

    하지만 사회 안전망 밖으로 내팽개쳐진 그들은 자신의 생존과 욕망을 위해 윤리보다 철저히 효율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최소비용-최대효율 원칙에 뻔뻔할 정도로 충실한 경제적 동물이다. 다만 자신들처럼 가난하고 힘겨운 존재에 대한 한 움큼의 연민만큼은 놓지 않았을 뿐. 그래서 그들은 인간적이다. 

    오히려 비정한 쪽은 그들을 범죄자와 부랑아로 단정 짓고 손가락질하기 바쁜 주류 사회다. 경찰과 언론은 서로의 잘못을 덮어주려는 그들의 진심을 짓밟고, 마지막까지 감추고 싶던 비밀까지 들춰내 눈물겨운 수치심을 안긴다. 

    고레에다 감독은 아무런 영화적 MSG 없이 이를 담담히 담아낸다. 분노도 없고, 눈물도 없다. 하지만 조용히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되묻게 만든다. 정말 가난이 죄라고 생각하느냐고. 정녕 그들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있겠느냐고. 

    누군가 말했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화두를 천착한 작품이라고 말이다. 기자 생각은 다르다. 젊었을 땐 그랬는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화두가 ‘이 비루한 인생을 어떻게 견뎌내고 어떻게 살 것인가’로 전환됐다고. ‘어느 가족’에서 할머니 하츠에가 전자를 대변한다면 손자 쇼타는 후자를 대변한다. 하츠에의 죽음을 목도한 이후 쇼타는 어른이 된다. 

    고레에다 영화에서 그런 전환점이 된 작품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어떤 죽음도 나오지 않는 동시에 아이를 통해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마침 이 영화의 원작 시나리오가 번역돼 동명의 제목으로 출간(블루엘리펀트)됐다. 

    고레에다가 작가 사노 아키라와 공동집필한 이 시나리오는 영화 주인공을 맡은 후쿠야마 마사하루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이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후쿠야마는 영화에서 지극히 출세지향적인 인물로 등장하는데, 초등학교를 갓 입학한 외동아들 게이타가 병원에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게이타를 버리고 핏줄을 택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진짜 아버지로 성장한다. 키 크고 잘생겼지만 세속적 출세를 위해 가족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철들기 전 후쿠야마’를 보면 어른이 되다 만 어떤 정치인이 떠오르지 않는가. 참고로 아베 총리에겐 자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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