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이 서울 강남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7월 18일 서울 서초구 반포로 센트럴시티에 5층 규모로 문을 연 신세계면세점 강남점이 호평을 받으며 순항하고 있는 것. 지금까지 강남권에서는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과 코엑스점, 갤러리아면세점63 등이 운영됐는데 신세계면세점 강남점이 가세하면서 면세점 강남대전이 펼쳐지는 형국이다. 후발주자지만 성적은 나쁘지 않다. 신세계면세점 강남점은 오픈 일주일 만에 매출 약 56억 원을 기록했으며, 실제 구매한 고객 수는 총 5000여 명으로 집계됐다.

럭셔리 면세점으로 ‘강남맘’ 사로잡아

강남·서초구 거주민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반포동에 사는 전문직 여성 최모(39) 씨는 “8월 말 휴가를 앞두고 마침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면세점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어 지난 주말에 다녀왔다. 면세점 내부 인테리어가 해외 명품 부티크 매장을 연상케 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 럭셔리 명품 브랜드가 없어 아쉬웠지만 국내 면세점에서 볼 수 없던 ‘마놀로블라닉’ ‘올세인츠’ 등이 입점해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롯데백화점 본점 내 면세점을 주로 이용했는데, 색다른 럭셔리 브랜드가 더 들어온다면 신세계면세점 강남점도 자주 찾게 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오픈 2주 뒤인 7월 31일 신세계면세점 강남점을 찾았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본관과 신관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1층 센트럴시티 쪽으로 들어가 호남선 매표소 앞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에스컬레이터 뒤편으로 면세점 입구가 나왔다. 매장은 연미색 벽면과 간접조명, 단순한 형태의 표지판 등이 어우러져 세련된 느낌을 자아냈다. 

면세점 입구는 지하 광장, 파미에스테이션 쪽으로도 열려 있었다. 지하 광장 쪽 입구는 면세점이라는 느낌보다 백화점 입구처럼 평이했다. 반면 파미에스테이션에서 연결되는 출입구는 어두운 배경에 화려한 조명을 활용한 ‘스튜디오S’가 있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화제가 된 곳으로 인기 유튜브 크리에이터, 블로거 등이 소개하고 업체들도 제품 홍보 촬영을 진행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1, 2층에는 면세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화장품 매장이 집결해 있었는데 해외 브랜드보다 설화수, 더히스토리오브후, 비디비치, VT 등 국내 브랜드들이 더 눈에 띄었다. 매장 중앙 부분에는 에스컬레이터를 중심으로 높이 7m 천장에 3차원(3D) 비디오 파사드가 설치돼 눈길을 끌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형형색색의 영상이 물 흐르듯 펼쳐져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2, 3층에는 국내외 패션 및 슈즈 브랜드와 더불어 액세서리와 시계 품목이 모여 있었다. 특히 세계 면세점업계 최초로 단독 입점한 영국 디자이너 슈즈 브랜드 ‘마놀로블라닉’과 이탈리아 슈즈 브랜드 ‘세르조 로시’가 단연 돋보였다. 최근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핸드백 브랜드 ‘파인드카푸어’, 선글라스 브랜드 ‘베디베로’ 등을 유치한 것도 기존 면세점과는 다른 느낌을 줬다. 

오픈 첫날에는 중국인 개별 관광객과 내국인 쇼핑객이 대거 몰려 번잡했다. 그러나 취재 당일은 7월 말 휴가철인 데다 평일 오전인 관계로 손님이 거의 없어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었다. 이날 면세점을 찾은 40대 주부는 “날이 더워 백화점을 찾았다 면세점이 있기에 들어와 봤다. 다른 면세점은 중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여 물건을 제대로 보기가 어려운데 여기는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어 마음에 든다. 이제는 여행 가기 전 이쪽으로 오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면세점 예상 매출 3조 원

신세계면세점 측은 럭셔리 명품 브랜드는 없지만 국내외 패션 브랜드로 입지를 다져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주연 신세계면세점 홍보팀장은 “강남은 패션에 민감한 곳이다 보니 면세점에서 보기 힘든 의류와 슈즈 브랜드를 유치하려고 신경 썼다. 일각에서는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등이 없어 고객 유치에 한계가 있으리라고 하지만 원래 명품 브랜드는 면세점 오픈과 동시에 입점하지 않는다. 시장 조사를 상당 기간 하는 데다, 입점을 결정해도 인테리어에만 1년 넘게 소요되는 등 시간이 필요하다. 또 입점하지 않더라도 지금 충분히 강점이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신세계면세점 측은 올해 면세점 사업에서만 매출 3조 원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 신세계면세점은 부산점, 명동점, 인천국제공항 제1, 제2터미널점, 강남점을 운영하는 가운데 7월 말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 추가로 개점했다. 또 6월에는 롯데면세점이 운영하던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DF1구역(동편·탑승동)과 DF5구역(중앙) 사업권을 따내기도 했다. 

신세계가 면세점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12년 부산 파라다이스면세점을 인수하면서부터다. 인수 당시 매출은 1400억 원대에 불과했는데 5년 만인 지난해에는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업계에서는 신세계면세점의 이 같은 성장에 정유경 총괄사장의 역할이 컸다고 평가한다. 정 총괄사장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호남선 고속터미널이 결합된 센트럴시티를 일찌감치 면세점 대지로 낙점해뒀다는 것. 실제로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연말부터 신관 쪽 센트럴시티 1, 2층에 자리한 카페와 음식점을 순차적으로 매입해 공간을 확보했고, 이후 6개월 공사 기간을 거쳐 7월 중순 면세점을 공식 오픈했다. 

강남·서초 권역에서 신세계의 위치는 가히 독보적이다. 신세계는 하루 평균 100만 명의 유동인구가 이용하는 센트럴시티에서 해외 럭셔리 브랜드가 포진한 백화점을 일찌감치 운영해왔다. 여기에 2014년 11월 1만4880여㎡ 땅에 10개국 30여 개의 식음료 브랜드 51개를 모은 파미에스테이션과 젊은 층을 공략한 영패션 브랜드 위주의 파미에스트리트를 오픈해 종합쇼핑센터로서 이미지 제고에 성공했다. 이후 2016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신관 5개 층 증축 공사를 완료하고 브랜드 다양화를 이끌어 고객을 더 많이 끌어들였다. 

올해 1월에는 서울 홍대 앞, 상수동, 연남동, 이태원동 등에서 20, 30대의 선호도가 높은 식음료업체를 대거 입점시켜 젊은 층 공략에도 나섰다. 하프커피, 아이엠어버거, 소이연남, 면주방, 멜던, 무월식탁 등 11개 매장은 멀리까지 가 힘들게 줄 서지 않아도 핫트렌드 음식을 맛볼 수 있어 젊은 층뿐 아니라 30, 40대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신세계백화점 측은 파미에스테이션이 생긴 뒤로 유동인구가 10~15%p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강남점에 맛집 유치해 젊은 층 모객

인근 주민들의 평가도 대체로 우호적이다. 서초구 잠원동에 거주하는 주부 박모(48) 씨는 “20년 넘게 살았지만 식사하러 굳이 센트럴시티 쪽으로 간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 올해 초 딸과 함께 파미에스테이션에 새로 생긴 쌀국숫집을 가게 됐는데 값이 저렴하고 맛도 수준이 있어 매우 만족했고, 이후 자주 가고 있다. 볼거리가 별로 없던 센트럴시티에 파미에스테이션이 생겨 만족한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측은 온라인 및 모바일 구매가 늘어나 유통업계에 위기가 닥친 시점에 고객을 이끄는 전략으로 파미에스테이션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최예슬 신세계백화점 홍보팀 대리는 “고객이 백화점을 찾고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있도록 체험형 콘텐츠를 발굴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고속터미널 인근에 이렇다 할 맛집이 없다는 데 주목하고 젊은 층의 지지도가 높은 홍대 앞과 연남동, 이태원동 등에서 괜찮은 MD를 발굴해 접촉했다. 파미에스테이션 오픈 이후 새로운 맛집 클러스터가 생겼다는 평가를 받는 데다, 이것이 백화점과 지하 입점 매장의 매출 상승 효과도 가져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본관만 있던 상태에서 지난 3년 동안 신관 증축, 파미에스테이션과 파미에스트리트 신축, 센트럴시티 정비, 면세점 오픈 등을 순차적으로 진행하면서 강남권에 종합쇼핑타운을 조성했다. 업계에서는 정유경 총괄사장의 향후 행보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유통뿐 아니라 면세점과 화장품 사업을 양대 성장동력으로 두고 더욱 적극적인 경영을 펼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 총괄사장은 2012년부터 화장품 사업에 본격적으로 손을 댔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을 통해 화장품 브랜드 ‘비디비치’의 지분 70%를 60억 원에 인수했다. 비디비치는 2005년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경민이 노하우를 종합해 탄생시킨 색조 전문 화장품 브랜드다. 이후 정 총괄사장은 2015년 이탈리아 유명 화장품 제조사 인터코스와 50 대 50 지분으로 합작법인 신세계인터코스코리아를 설립했다. 2년 뒤에는 경기 오산시에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공장을 갖췄다. 연간 화장품 5000만 개, 1500t 정도의 제품 생산이 가능한 규모다. 

정 총괄사장은 2016년 12월 ‘한국판 세포라’를 꿈꾸는 화장품 전문 편집매장 ‘시코르’를 신세계백화점 대구점에 열어 유통 채널의 변화도 모색했다. 시코르는 신세계백화점이 만든 첫 뷰티 편집숍으로, 유명 해외 화장품 브랜드와 국내 신진 화장품 브랜드 등이 다양하게 입점해 있다. 나아가 자유롭게 시용해볼 수 있는 메이크업 존을 구성해 ‘화장품 덕후’ 사이에서는 성지로 꼽힌다. 시코르는 1년 반 만에 강남점, 센텀시티점, 스타필드 고양점, 스타필드 코엑스몰점, 플래그십 강남역점 등 전국에 13개 지점을 오픈했고 연말까지 7개 매장을 추가로 열 계획이다.

경영권 분리에 따른 프리미엄 전략 주효

유통을 다잡고 화장품과 면세 사업에 사활을 거는 정 총괄사장의 전략은 지금까지 순조롭게 먹혀들고 있는 모습이다. 2015년 부사장 꼬리표를 떼고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으로 승진한 지 3년 만에 이름값을 해내고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기업 경영 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의 박주근 대표는 “정 총괄사장이 독자경영을 시작한 지 3년 가까이 됐는데 그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다. 사실 2015년까지 유통업이 전체적으로 피크였지만 이후 정체되거나 꺾이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신세계백화점을 확장하고 면세점과 화장품 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등 규모를 늘려가 미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다”고 분석했다. 

신세계그룹이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의 역할 분담을 확실히 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 부회장이 이마트와 스타필드로 구분되는 노멀 마켓을 주도하고, 정 총괄사장이 백화점과 면세점 등 프리미엄 마켓을 공략해 이미지 제고에 기여했다는 것. 박 대표는 “유통업계에서는 신세계와 롯데가 비교되는데, 현재 롯데는 백화점과 마트, 면세점 등 성격이 나뉜 부문을 총수 1명이 지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소비층이 구별되지 않아 이미지가 프리미엄도, 노멀도 아니게 돼버렸다. 반면 신세계는 남매에게 경영권을 분리해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소비층을 나눠 갖게 됐고, 정 총괄사장의 프리미엄 전략도 잘 먹혀들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