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갓 입사한 KTX 승무원들의 모습. [동아DB]
KTX 해직 승무원(KTX 승무원)들이 12년 만에 정규직 일자리로 돌아가게 됐다. 하지만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의 댓글에는 응원보다 비난이 많았다. 비난의 논거는 결국 공정경쟁이다. 이들은 그렇잖아도 힘든 취업시장에서 누군가는 평생을 걸고 준비해 어렵게 입사하지만, KTX 승무원들은 비정규직으로 들어왔다 12년간 시위와 법정싸움으로 정규직이 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KTX 승무원들은 처음 취업할 때부터 전원 정규직 전환을 사측으로부터 약속받았다고 주장한다. 1심에선 승무원 측이 이겼으나 2심에선 판결이 엇갈렸다 대법원에선 승무원이 패소했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의 ‘재판 거래’ 의혹이 불거지면서 대법원 판결의 정당성 역시 의심받고 있다.
정규직 하려면 부실 자회사로 가라?
KTX 승무원은 2004년 채용 당시만 해도 지상의 스튜어디스로 불렸다. KTX 승무원 입사 경쟁률은 14 대 1로 꽤 높았다. 당시 삼성그룹 신입사원 입사 경쟁률이 11 대 1이었다. 계약직(비정규직)임에도 이렇게 높은 경쟁률을 자랑한 이유는 2년 뒤 정규직 전환이라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르면 2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 근무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 무기계약직은 임금과 복지 부문에서는 정규직보다 못한 대우를 받지만 고용 안정성은 보장된다. 하지만 당시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은 이들에게 2년 뒤 철도청 정규직 채용을 약속했다.
일단 승무원들은 과거 철도청의 퇴직 직원 재단법인인 홍익회의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홍익회 소속 승무원들이 코레일에 파견돼 일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홍익회가 코레일 자회사인 철도유통(현 코레일유통)으로 바뀌자 승무원들도 철도유통 소속이 됐다. 이렇게 복잡한 방식을 거쳐 채용한 것은 코레일 측의 경영 실적 개선을 위해서였다.
애초 코레일은 철도의 만성 적자를 줄이려고 등장한 공기업이었다. 전신인 철도청이 수조 원 적자를 기록하자 2004년 운영은 코레일, 시설관리는 철도관리시설공단으로 분리하는 공사화가 이뤄졌다.
KTX 승무원들은 입사 1년 만에 불만을 터뜨렸다. 급여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당시 코레일에서는 이들에게 월 248만5000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들의 실수령액은 150만 원 남짓이었다. 이렇게 100만 원 가까이 차이가 난 까닭은 철도유통에 있었다. 관리운영비 등의 명목으로 코레일에서 지급한 금액의 일부를 챙겼던 것.
2006년에는 코레일유통이 노무관리가 어렵다며 승무원 위탁관리를 코레일에 반납했다. 그러자 코레일은 2007년부터 KTX 승무원 위탁업체에 열차 내 물품 판매 사업권도 위탁해 승무원들이 물품 판매와 승객 서비스를 동시에 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승무원들은 2006년 2월 사복을 입고 근무하는 사복투쟁을 시작했다. 그러자 코레일유통은 사복 차림의 승무원을 열차에 태우지 않았다. 사실상 파업이 시작된 것. 코레일은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와 협상을 시작했다. 철도노조는 코레일이 2년 전 약속대로 승무원들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코레일 측은 부채와 경영난 문제로 약속을 지킬 수 없다고 맞섰다. 그 대신 코레일은 승무원들을 ‘KTX관광레저’라는 자회사로 인계하고, 추후 해당 회사 정규직으로 고용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승무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KTX관광레저가 문제가 있는 자회사라고 봤기 때문. 2005년 감사원은 코레일에게 17개 자회사 중 10개를 구조조정하라고 했다. 감사원이 이미 부실기업으로 선정한 KTX관광레저 역시 구조조정 대상 가운데 하나였다.
철도노조는 2006년 3월 1일 파업을 시작했고, 그들의 요구 중에는 KTX 승무원의 코레일 정규직화도 들어 있었다.
해고된 데다 돈도 내라고?
KTX 해고 승무원들이 7월 21일 서울역 앞 천막농성장에서 서로를 안아주고 있다. [동아DB]
2008년 11월 승무원 34명이 코레일을 상대로 부당해고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2010년 8월 법원은 KTX 승무원의 손을 들어줬다. 2011년 8월 항소심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각 재판부의 판결문 내용도 대동소이했다. 자회사 소속이라지만 정작 이들이 일한 곳은 코레일이었으니 직접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됐다고 본 것. 이에 뒤늦게 다른 KTX 승무원 118명도 재판에 나섰다. 2011년 8월 말 1심에서는 승소했다.
하지만 2012년 118명 재판의 2심에선 KTX 승무원이 패소했다. 2심 재판부는 자회사가 코레일에 사업상 종속돼 있었고 승무원들이 코레일의 지시·감독을 받았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자회사 역시 사업 독립성을 갖췄으며 독자적으로 승무원들에게 지시를 내린 적이 있다는 점에 비춰 위장도급이나 불법파견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2015년 2월 대법원도 “코레일과 승무원 사이에 직접 근로관계가 성립한다고 단정할 수 없고, 근로자 파견계약 관계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며 코레일 측 손을 들어줬다.
1, 2심 결과 복직된 것으로 간주됐던 KTX 승무원들은 코레일로부터 받아온 급여 및 소송비용을 돌려줘야 했다. 이 금액이 인당 총 8640만 원이었다. 같은 해 3월에는 법원의 갑작스러운 선고 번복에 상심한 승무원이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올해 5월 25일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대법원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동의를 얻으려고 일부 사건 판결을 맞바꾸려 했다는 내용의 문건을 공개했다. 그중 한 사례가 KTX 승무원 최종 판결이었다.
대법원 판결의 정당성이 의심받는 분위기에서 코레일과 철도노조는 7월 22일 복직을 요구해온 KTX 승무원을 특별채용하는 데 합의했다.
해직 승무원 가운데 180명이 먼저 특별채용 대상이 됐다. 코레일은 2019년까지 인력 운용상황을 고려해 결원 범위에서 단계적으로 채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들은 더는 승무 업무를 맡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6급 사무영업직으로 채용될 것이기 때문. 현재 고속철도 승무원 업무는 여전히 ‘코레일관광개발’이라는 자회사로 분리돼 있다.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 관계자는 “현재 노사 협의를 통해 어떤 업무를 맡게 될지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을과 을 싸움은 아니다
5월 30일 김승하 전국철도노동조합 KTX열차승무지부장(왼쪽에서 세 번째) 등이 대법원장 비서실장과 면담해 KTX 해고 승무원 판결에 대한 직권 재심 등을 촉구했다는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동아DB]
일각에서는 이들이 6급으로 특별채용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6급이면 고위직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공무원의 직급체계와 공기업의 직급체계는 다르다. 6급이면 공기업에서는 대졸 신입사원급이다.
KTX 승무원 복직에 대한 반대 여론이 많은 것은 일자리 때문이다. 일단 이들 180명이 추가 채용되면 그만큼 신입사원의 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코레일 측은 “특별채용인 만큼 정규직 채용 규모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은 “우리가 왜 싸우게 됐는지, 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봐줬으면 좋겠다”며 “180명이 특별채용됐다고는 하지만, 원래 지켜져야 했던 약속이 12년 만에 지켜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