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한 아이가 백신주사를 맞으며 울고 있다(왼쪽). 중국 2위 제약업체 창성바이오테크놀로지의 백신. [VCG]
중국 식품 검사기관은 분유에서 단백질 함량을 잴 때 단백질 농도 대신 단백질 주성분인 질소의 함량을 측정해왔다. 중국 최대 유가공업체 싼루(三鹿)그룹을 비롯한 22개 업체가 이 점을 악용해 단백질 대신 값싼 백색 분말인 멜라민을 분유에 넣었다. 그 결과 가짜 분유를 먹은 영·유아 6명이 사망하고 30만여 명이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상 최악의 식품안전 사건으로 기록된 가짜 분유 파동 때문에 중국 부모들은 앞 다퉈 홍콩으로 건너가 외국산 분유를 대량 매입했고, 아기들에게 ‘모유를 먹이자’는 운동까지 벌어졌다. 지금까지도 중국 부모들은 외국산 분유를 선호한다. 가짜 분유 파동은 2008 베이징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중국을 치욕스럽게 만들었다.
중국에서 최근 ‘가짜 백신’ 사건이 발생해 민심이 들끓고 있다. 중국 2위 제약회사 창성(長生)바이오테크놀로지와 우한(武漢)생물제품연구소 등이 기준에 미달하는 품질의 DPT(디프테리아·백일해·파상풍) 백신과 광견병 백신을 대량 판매해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중국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불량 DPT 백신을 접종한 영·유아는 35만8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 살배기 아기가 사망하는 등 각종 부작용을 보인 영·유아가 대거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 가짜 백신이 수년 전부터 유통돼왔고, 이 때문에 숨진 영·유아가 어느 정도인지조차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소식을 접한 중국인들은 가짜 분유 사건 때보다 더욱 분노하고 있다. 문제의 백신을 어린 자녀에게 접종시킨 부모들은 아동병원과 지방정부 등에 몰려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 중국 누리꾼들도 가짜 백신 기사마다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 ‘이런 나라에 어떻게 애국하겠느냐’ 등 분노의 댓글을 달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가짜 분유에 이어 가짜 백신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에는 ‘백신’이라는 단어가 4억 회 이상 등장해 이번 사태에 대한 중국 국민의 충격과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베이징, 상하이, 청두, 난징, 항저우 같은 주요 도시의 아동병원 화장실에 ‘공산당을 타도하자’는 구호가 적힌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일부 부모는 아예 어린 자녀와 함께 홍콩이나 마카오로 가 백신을 접종시키고 있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 통치에 대한 반감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중국 지식인 가운데 상당수가 시진핑 국가주석의 1인 체제와 장기집권을 비판하기 시작한 것도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중국 정부는 여론이 갈수록 악화되자 7월 24일부터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백신 관련 뉴스를 모두 통제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또 관영 언론매체에 사건을 축소 보도하라는 지침까지 내렸다. 리커창 총리는 7월 22일 밤 11시 26분 가짜 백신 사건과 관련해 담화를 발표했다. 리 총리는 “이번 백신 사건은 인간 도덕의 마지노선을 넘었다”며 “누가 연루됐건 절대 관용을 베풀지 말고 엄중 처벌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아프리카를 순방하고 있던 시 주석도 다음 날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함께 책임자 엄벌을 지시했다. 중국 최고지도부가 이번 사건에 이례적으로 대응하고 나선 것은 민심 악화를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번 가짜 백신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 권력과 자본의 유착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가짜 백신이 불합격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해 10월이었으나 백신 생산 중단 및 유통 금지 조치는 9개월이나 지나서야 내려졌다. 또 창성바이오테크놀로지는 과거에도 결함이 있는 백신을 생산해 적발된 적이 있지만 벌금만 내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중국 정부의 의약품 담당 관리들이 이처럼 감독을 소홀히 해온 이유는 가오쥔팡(高某芳) 창성바이오테크놀로지 대표이사 겸 최고경영자(CEO)가 장쩌민·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장더장 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등은 물론, 현직 정치국 상무위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다. 홍콩 신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정부가 백신 국산화라는 명분으로 외국 제약사들을 쫓아냈고, 중국 제약업계는 공격적인 로비와 정부 지원금으로 부를 쌓아온 반면 백신 개발과 안전 문제에는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의 강력한 지시에 따라 중국 공안은 가오 대표이사 등 18명을 구속했지만 이들의 뒤를 봐준 권력층까지 처벌할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정경유착 비리 의혹
중국의 가짜 식품들. 골판지 소가 들어간 만두, 시멘트가 들어간 호두, 플라스틱으로 만든 쌀(왼쪽부터). [Flickr, news.163.com, Flickr]
중국 최대 주류업체 구이저우 마오타이의 장더친(張德芹) 부총경리는 3월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지금 시중에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가짜 마오타이 술병이 넘쳐나고 있다”며 “정부가 위조지폐나 음주운전을 막는 만큼의 노력을 가짜 상품 단속에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회장도 가짜 상품을 만들거나 판매하는 행위에 대해 최대 종신형까지 엄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가짜 상품을 강력하게 단속하는 조치를 내리지 않고 있다. 중국 현행법은 가짜 상품의 가치가 5만 위안(약 830만 원) 이하일 경우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외국 기업들의 지식재산권도 제대로 보호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미국으로 들어가는 모조품의 88%가 중국산(홍콩 경유 포함)이고, 미국으로 유입되는 중국 제품의 12.5%가 가짜다. 중국에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의 70%가 해적판이다. 소프트웨어는 물론이고 영화와 드라마, 게임, 음악 등 해외에 저작권이 있는 상품이 중국에서 상당수 불법으로 유통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이 수출하는 가짜 상품의 지식재산권 침해 규모가 연간 6000억 달러(약 67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아무튼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대국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고 ‘가짜 천국’이라는 오명부터 벗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