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 붙어 있는 원룸 및 자취방 홍보물. 일부 임대인은 관리비를 과다하게 받아, 월세와 보증금 등 조건만 보고 입주한 대학생들이 낭패를 보기도 한다. [동아DB]
“진작 나간 방인데 지우는 것을 깜빡했네요.”
#2 7월 27일 서울 성동구에 있는 보증금 200만 원-월세 18만 원짜리 자취방을 발견했다. 인근 시세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5만~50만 원인 것과 비교하면 저렴해도 너무 저렴했다. 역시 바로 연락을 해봤다. 부동산공인중개사 측에서는 방이 아직 안 나갔는지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전화가 오지 않았다.
부동산중개 애플리케이션 ‘다방’에서 보증금 1000만 원 이하-월세 20만 원 매물을 검색한 결과 서울 근교에서만 500개가 훌쩍 넘는 매물이 나왔다. [다방 캡처]
하지만 기자가 일일이 60여 곳을 전화로 확인한 결과 대다수 미끼 매물이었다. 저렴한 방은 이미 나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비슷한 방을 보여주며 월세를 20만~30만 원 높게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또 월세는 앱에 올라온 대로 20만 원대였지만 관리비가 월 10만 원을 넘는 곳도 허다했다.
특히 허위 매물을 미끼로 올려놓았다는 의심이 드는 곳도 종종 있었다. 시세보다 한참 저렴한 매물로 고객을 모은 뒤 그 방은 이미 계약됐다며 시세와 비슷한 매물을 판매하려는 것. 실제로 서울 관악구 한 원룸에서는 이틀 전 그 방이 나갔다며 다른 방을 권했다. 다른 방이라지만 앱에서 보던 방과 거의 유사했다. 크기도 동일했다. 다만 가격이 달랐다. 기존 시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5만 원 정도였다.
“지운다는 걸 깜빡했네요”
서울 구로구에는 월세 6만 원인 방이 올라와 있었다. 깔끔한 원룸은 아니었으나 지상층이었고, 작은 냉장고와 세탁기 등 기본 가전제품은 물론 에어컨까지 완비된 방이었다. 보증금도 10만 원. 한 달 내내 묵는 여관 ‘달방’도 30만~40만 원인 것과 비교하면 이보다 훨씬 좋은 시설에 월세와 보증금을 합쳐도 절반이 안 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이 방 역시 계약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시세에 맞는 가격의 방을 소개받았는데, 확인해보니 처음 앱에 올라왔던 방의 바로 옆방이었다. 사실상 같은 방이었지만 월세는 5배, 보증금은 10배 비쌌다.7월 하순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모 원룸 중개 앱의 캡처 사진이 떠돌았다. 평범한 원룸으로 보였으나 가격이 비범했다.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3만 원. 그런데 관리비가 수상했다. 월 100만 원이었다. 시민단체인 ‘민달팽이 유니온’의 2015년 집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 평균 원룸 관리비는 약 7만 원. 10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각 게시판에서는 이 매물을 두고 설왕설래가 벌어졌다. 일종의 탈세 수단이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현행법상 아파트 등 150가구 이상 공동주택에서는 관리비 명세서를 공개하게 돼 있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원룸 등은 이와 같은 의무가 없어 관리비를 필요 이상으로 받는 일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허위 매물일 확률도 높다고 봤다. 관리비만 봐도 입주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매물이 허위 혹은 오류였는지 이 게시물은 금방 사라졌다.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부동산 앱에 부실 매물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물론 월세가 정말 10만 원대인 방도 있었다. 서울 마포구의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10만 원인 자취방에는 ‘잠만 주무실 분’이라는 주의사항이 붙어 있었다. 반지하인 데다 화장실과 세면장이 따로 떨어져 있었다. 방 내부를 보여주는 사진에도 텅 빈 공간에 장판만 하나 깔린 모습이었다. 인터넷, 가전제품, 취사도구 등 아무것도 갖춰진 것이 없어 왜 월 10만 원인지 금방 납득할 수 있었다.
AI로 허위 매물 감별 나서
부동산공인중개 업계에서는 이런 현상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를 임대인이 여러 곳에 중개를 맡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원룸 한 개를 세놓더라도 2~3개 부동산중개사무소를 거치는 바람에 같은 매물이 여기저기 여러 번 올라온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 게다가 계약이 성사되더라도 다른 공인중개사에게 이를 알릴 의무가 없다. 그래서 중개사가 매물이 나갔는지도 모르는 일이 생긴다는 것.원룸 중개 앱 업계도 이와 같은 허위나 부실 매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특히 초기에는 허위 매물이 너무 많아 소비자의 불만이 상당했다. 지금은 업체마다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허위 매물을 많이 줄이고 있지만, 일부 중개업자가 손님을 모으려고 몇 시간 동안 솔깃한 허위 매물을 올린 뒤 삭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부동산중개 앱 ‘다방’은 허위 매물을 막고자 인공지능(AI)을 도입할 예정이다. 다방 관계자는 “올 하반기 중 부동산중개사무소가 매물 정보를 올릴 때 이 매물이 허위인지를 알고리즘 분석을 통해 구분하는 서비스를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물 정보가 올라오는 시점, 매물 사진, 주변 시세, 실거래가 등 250여 개 평가 항목을 두고 AI가 이를 분석해 매물의 진위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지속적인 매물 모니터링, 허위 매물 삼진아웃제(3번 이상 허위 매물을 올린 것이 적발되면 당분간 매물을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 등을 통해 허위 매물을 관리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물론 급매로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올라오는 매물도 일부 있다. 하지만 허위 매물이거나 앱에 매물을 올리는 과정에서 기입을 잘못했을 공산이 크다. 시세 범위에서 가장 좋은 방을 찾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강남보다 비싼 신림동 관리비
‘서울에서는 사는 곳이 좁을수록 관리비를 많이 낸다.’아파트 입주자라면 고개를 갸웃할 문구지만, 원룸이나 자취방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인다. ㎡당 관리비를 계산해보면 원룸 입주자가 아파트 입주자에 비해 훨씬 비싼 관리비를 내고 있다.
서울시의 2015년 집계에 따르면 원룸의 ㎡당 관리비는 4861원. 아파트는 871원이었다. 아파트보다 원룸의 관리비가 5배 이상 비싼 것. 굳이 통계를 살피지 않아도 이런 현상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원룸 중개 앱 검색 결과, 월세가 시세에 비해 5만~10만 원 저렴한 곳 중에서는 관리비가 10만 원을 넘는 경우도 허다했다. 여기에 전기나 수도를 과도하게 쓰면 추가 비용을 내야 하는 곳도 있었다.
5월 서울 시내 아파트 관리비 집계에 따르면 강남구 아파트의 ㎡당 관리비는 1191원으로, 85.95㎡(24평)의 경우 관리비가 평균 9만5000원 선이었다. 반면 서울 관악구 신림동 20㎡(약 6평) 단칸방 중에는 관리비가 월 10만 원이 넘는 곳도 적잖았다.
건물주들은 거주하는 사람이 적으니 공동공간에 대한 관리비를 더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서울시는 2015년 ‘오피스텔·원룸 관리비 가이드라인’을 통해 표준 관리비를 제시했다. 15㎡ 기준 관리비는 1만2960~1만5380원 선이었다. 청소비, 소독비, 정화조 소독비, 승강기 점검비, 전기안전검사 대행비 등 잡비를 모두 합한 금액이다.
임대인이 필요 이상으로 높은 관리비를 요구하는 이유는 월세 일부를 사실상 관리비로 보충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이 경우 세금을 덜 낼 수 있다. 관악구 한 부동산공인중개사는 “일부 임대인은 세금 때문에 월세를 줄이고 관리비를 올리기도 한다”고 밝혔다.
아파트나 대형 오피스텔은 월세 대신 관리비를 올리는 것이 어렵다.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르면 150가구 이상이 거주하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입주자대표회의를 거쳐 관리비를 산정해야 한다. 300가구가 넘는 경우에는 관리비에 대한 회계감사도 받아야 한다. 법상으로는 월세 일부를 관리비로 돌리는 것이 불가능한 것. 용도 외로 관리비를 사용하면 3년 이하 징역,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이 법에도 맹점이 있다. 원룸이 공동주택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규모가 작아 관리비 사용 명세를 감시할 조항이 없다. 국회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원룸 관리비를 규제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 관리비의 용도별 금액을 명시하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영세 임대인들이 구체적이고 적정한 관리비를 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현재 법안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