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까지 나는 전혀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내가 그토록 원했던 커리어를 시작한 그 순간, 아이와 함께한다는 것의 매력-도시락을 싸주고, 저녁 식탁에서 농담을 주고받고, 내 어머니가 내게 불러줬던 노래를 아이에게 불러주는 등등의 일-이 내게 갑자기 새로운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중략) 내 첫째 딸이 태어났을 때 나는 39세였다. - 엘리자베스 그레고리
‘준비 : 왜 여성은 늦게 엄마 되기를 선택하는가(Ready: Why Women Are Embracing the New Later Motherhood)’의 저자 엘리자베스 그레고리는 자신이 마흔을 목전에 둔 나이에 엄마가 된 이유를 위와 같이 설명한다. 그리고 고백한다. “직업이 안정되고 결혼한 후에야 나는 비로소 준비가 됐다고 느꼈다.”
10명 중 7명이 30대 이상 산모
그는 이후 자신처럼 늦게 엄마가 된 여성들(Later Motherhood)을 연구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늦은 나이에 엄마가 되는 것이 여러모로 좋지 않다는 기존 통념과 달리, 여성은 대부분 35세 이후에 아이를 낳은 데 대해 ‘내 인생에서 가장 바람직한 결정이었다’고 여긴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왜 늦게 엄마가 된 것에 만족할까.여성의 출산연령 증가는 이미 세계적 현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대부분 여성의 평균 출산연령이 30세를 넘어섰다. 거의 모든 OECD 회원국에서 20대 출산율이 1970년대에 비해 대폭 줄어든 데 반해, 30대 출산율은 오히려 높아졌다. 호주, 덴마크, 핀란드, 독일, 뉴질랜드, 노르웨이, 영국은 30대 초반 출산율이 다른 연령대 출산율보다 높다. 한국에서도 30대 중반 혹은 후반에 엄마가 되는 것이 더는 드문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의 평균 첫아이 출산연령은 31.4세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그래프1 참조).
통계청이 발표한 최근 통계를 과거와 비교해보면 한국에서 늦은 출산이 얼마나 급격하게 증가했는지 알 수 있다. 2017년 인구동향조사 결과 첫아이 출산연령은 1997년 26.9세에서 2017년 31.6세로 빠르게 증가했다. 그 결과 1997년 전체 산모의 5%에 불과하던 30대 후반(35~39세) 산모가 2017년 25.9%로 크게 늘어났다. 당시 0.6%에 불과하던 40대 이상 산모도 3.5%로 약 6배나 증가했다. 30대 초반(30~34세) 산모까지 포함하면 30대 이상 산모가 열 중 셋(27.7%)에서 일곱(74.5%)이 됐다.(그래프2 참조)
하지만 흥미롭게도 한국에서 임신을 고려하는 30대 여성은 1990년대에나 했을 법한 우려와 마주하게 된다. 2015년 1월호 월간 ‘신동아’에서 한 결혼중매업자는 “여자 나이 서른셋 전에 결혼하라고 조언한다”며 그 이유로 ‘출산 걱정’을 들었다(‘맞선 시장에서 안 팔리는 알파걸’). 남자 쪽에서 “만약 애를 못 낳으면 책임질 거냐”고 하면 중매업체로서는 30대 중 · 후반 여성을 소개해주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37세에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나중에 아이가 학교에 가면 엄마 나이가 너무 많아서 다른 엄마들과 어울리지 못 하겠다”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산부인과 동기 모임에서 내 나이는 평균보다 약간 많은 쪽에 속하는 정도였을 뿐이다. 오히려 20대 ‘젊은 엄마’를 찾는 것이 더 어려웠다.
고령 출산, 저출산 해결책 될 수도
이 밖에도 한국 사회가 가진 고령 엄마에 대한 편견은 많다. 나이 많은 엄마가 낳은 아이는 건강이 약하다든가,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든가 등등. 이런 통념은 한국에서 임신·출산을 고민하는 30, 40대 여성에게 ‘엄마가 되기엔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는 여러 연구를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이미 밝혀졌다. 고령 엄마와 그 아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과거 영양 상태가 좋지 않거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여성이 고령 출산을 한 데이터에 기반을 둔 것으로, 현대의 고령 엄마와 그 자녀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영국과 독일의 고령 출산을 분석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2000년대 35세 이상 엄마가 낳은 아이들이 11세 때 받은 지적 능력 테스트에서 25~29세 엄마가 낳은 아이들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령 출산에 대한 한국 사회의 변치 않는 통념보다 더 놀라운 점은 급격한 출산연령의 변화에도 30대 중 · 후반에 출산한 여성 혹은 출산을 고려하는 여성에 대한 학문적 논의나 정책적 배려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해외의 경우 여성의 출산연령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늦게 엄마가 되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특성은 무엇인지, 이 같은 추세가 전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지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또한 고령 임신·출산의 리스크를 줄이고, 고령으로 인한 난임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여러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 특히 저출산 해결책과 관련해 30대 후반 여성의 출산 따라잡기(catching up) 트렌드가 현재 감소하고 있는 20대 출산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에서 저출산 문제가 가장 심각한 한국은 ‘어떻게 하면 20대 혹은 30대 초반 청년을 결혼시켜 부모가 되게 할 것인가’에만 골몰한다. 하나의 작은 예로, 고령 산모 비중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음에도 이들을 위한 인프라는 여전히 미미하다. 고령 산모는 고령 임신·출산을 잘 다룬다고 알려진 극소수의 몇몇 병원에서 엄청나게 긴 대기시간을 견뎌야 한다.
오히려 늦맘이기 때문에
한국 사회가 당면한 초저출산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해보고자 한다면 30대 후반에 엄마가 된 혹은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여성, 즉 ‘늦맘’(늦게 엄마가 된 여성의 줄임말)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오늘날 늦맘은 과거 고령 엄마에 비해 나은 건강 상태, 교육 수준, 사회경제적 자원을 갖고 있고 임신 중 건강관리나 출산 후 육아에서도 젊은 엄마보다 유리하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지만, 여전히 젊은 엄마에 비해 더 많은 도전과 어려움을 겪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30대 중반에 임신을 고려한다면 먼저 자연임신이 가능할지, 아니면 난임치료를 받아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잘 알려졌다시피 한국에서 난임치료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축복처럼 아이가 찾아온다 해도 만 35세 이상 여성은 ‘고령 산모’로 분류돼 아이를 건강하게 출산할 때까지 걱정과 불안에 시달리면서 온갖 검사를 받을 것을 권유받게 된다. 그러나 어떤 검사가 진정으로 필요한지에 대한 정보는 얻기가 매우 어렵고 판단도 쉽지 않다. 고령 산모에게는 건강하게 임신을 유지하고 순산을 준비할 수 있는 좀 더 특화된 정보가 필요한데, 이와 같은 도움도 제한적이다. 또한 무사히 임신을 유지한다 해도 ‘고령 산모는 자연분만이 어렵다’는 통념과 또 부딪히게 된다. 출산 후 회복, 육아, 그리고 직장과 가정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단지 ‘엄마’라서 갖는 어려움에 더해 늦맘이어서 겪게 되는 고충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37세에 엄마가 돼 4년째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는 ‘혹시 엄마가 되기에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고민하는 30대 중반 이상 여성이 있다면 ‘늦맘이라도 괜찮아’라고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다. 35세 무렵 영국에서 일하던 내가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옥스퍼드 하숙집 주인인 카리니 할머니는 내게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 네 커리어에 막대한 손해가 있겠지.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엄청난 일이거든. 지금까지의 너의 삶, 그러니까 마음껏 일하고, 놀고, 레스토랑에 가고, 영화관에 가고, 여행하고 등은 끝났다(Finished!)고 볼 수 있지. 아이를 키우면서 절대 이전과 같은 여유와 집중, 능률을 기대할 순 없어. 그런데 말이다, 아이란 그 무엇보다도 ‘사랑할 대상’을 갖는 일이야. 그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멋진 일이란다.”
매일 품에 안고 “사랑해” 하고 속삭일 수 있는 아이가 있는 지금, 나는 카리니 할머니의 말에 100% 동의한다. 그리고 이것은 오히려 내가 늦맘이기 때문에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구체적인 연구 결과 등을 가지고 늦맘을 응원하는 글을 쓰고자 한다. 이를 통해 늦게라도 엄마가 되는 행복한 여정을 시작했거나 시작하려는 여성과 그 가족에게 걱정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 또한 우리 사회의 통념에 변화가 생긴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겠다.
전지원은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후 동아일보 사회부 · 문화부 기자를 지내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고령화 및 시간사용 연구로 사회학 석 ·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토론토대 글로벌사회정책연구센터 연구원 및 옥스퍼드대 시간사용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