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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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의존형 돌봄, 남성 휴가 늘어야 코로나 극복한다 [늦맘이어도 괜찮아]

팬데믹 필수인력, 여성이 절반 이상…정상적 사회 작동 위해서라도 ‘돌봄의 뉴노멀’ 준비해야

  • 전지원 서울대 국제이주와포용사회센터 책임연구원

    입력2020-04-21 13:3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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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0일 경기도 의정부성모병원 간호사들이 방문 환자를 대상으로 발열 체크를 하고 있다. [뉴스1]

    4월 20일 경기도 의정부성모병원 간호사들이 방문 환자를 대상으로 발열 체크를 하고 있다. [뉴스1]

    며칠 전 인터넷으로 한 공연 영상을 보다 묘한 위화감에 휩싸였다. 관객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다닥다닥 붙어 앉아 즐겁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옆에 누가 있든, 기침을 하든 개의치 않고 서로 부대끼며 지내던 날들. 우리는 과연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불과 두어 달 전 일상이 퍽 어색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계속 삶을 이어나갈 것인가”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도 답답하다며 수시로 마스크를 벗어 던지던 다섯 살 아이는 이제 엄마보다 더 꼼꼼하게 마스크를 챙긴다. 조그마한 손가락으로 야무지게 줄을 귀에 걸고 코 부분을 꽉 누르는 모습을 볼 때면 대견하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아리다. 엘리베이터에서 당연한 듯 손 소독제로 손을 문지르고, 하루 한 번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30초 동안 손을 씻었느냐”고 묻는다. 

    어느 해보다 벚꽃이 탐스럽게 피었지만, 꽃구경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가는 봄이 아쉬워 아파트 단지 안 개나리 앞에서 찍은 사진 속에서 아이는 마스크를 쓰고 있다. 언젠가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이라는 역사적 시기에 유년 시절을 보냈다며 무용담처럼 추억할 날이 올까. 

    한국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겪고 있는 미국, 유럽에서는 “이제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일상)에 적응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영국 에든버러대의 건강 정책 전문가 데비 스리다르(Devi Sridhar)는 ‘더 애틀랜틱’과 인터뷰에서 “모두가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를 묻지만, 그것은 올바른 질문이 아니다. 올바른 질문은 우리가 이 사태에서 어떻게 계속 삶을 이어나갈 것인가(how do we continue)이다”라고 말했다. 서구의 많은 전문가는 최소 18~24개월간은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고 본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가 30명 아래로 떨어지면서 사회 곳곳이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지만, 이전 같은 일상을 온전히 되찾을 순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 2차, 3차 유행이 언제든 재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뉴노멀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한 예로 ‘돌봄의 뉴노멀’을 고민해본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기존 돌봄 시스템이 전혀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번에 제대로 겪었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학원이 문 닫고, 아이돌보미 같은 방문 돌봄 서비스도 이용할 수 없었다. 전염병과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일상에서 이러한 돌봄의 위기는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가족돌봄휴가, 여성이 2배 사용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대형마트에서 계산을 하고 있는 여성 점원들. [GETTYIMAGES]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대형마트에서 계산을 하고 있는 여성 점원들. [GETTYIMAGES]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드러났듯 이러한 돌봄 공백은 여전히 엄마와 할머니, 즉 여성에 의해 메꿔진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제학자 마티아스 돕커(Matthias Doepke) 등은 코로나19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최신 논문에서 “코로나19 사태로 늘어난 돌봄 부담은 대부분 여성에게 전가되며, 이는 여성의 커리어에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불이익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한국 상황도 마찬가지다. 3월 말 육아정책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42.9%가 아이를 돌보기 위해 무급휴가를 사용한 반면, 남성의 경우는 8.1%에 그쳤다. 고용노동부에 가족돌봄휴가를 신청한 비율 역시 여성이 69%로 남성(31%)과 2배 이상 격차를 보였다. 많은 엄마는 온라인 개학을 ‘엄마 개학’이라고 자조한다. 온라인 개학 준비를 위해 반차를 내는 당사자도 대부분 엄마이기 때문이다. 

    이번 위기는 어찌어찌 넘겼다. 하지만 올가을에 이 사태가 반복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는 ‘돌봄 위기’에 대해 어떤 대비책이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누가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고 없었는지, 재택근무나 돌봄휴가 사용 여부에 성별 차이가 있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돌봄휴가를 사용하는 데 ‘사회적 제약’은 없었는지, 한부모가정의 돌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세밀하고도 실용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돌봄 기관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문을 닫고 방문 돌봄 서비스가 불가능해졌을 때 보육교사, 가사도우미, 아이돌보미, 요양보호사 등 돌봄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일자리와 소득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과 원칙 마련도 필요하다. 대면서비스가 핵심인 돌봄 일자리의 특성상 이들은 전염볌 위기에 가장 취약한 계층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돌봄 위기에 대비하는 것은 단순히 여성 개인이나 맞벌이 가정을 돕기 위함이 아니다. 돌봄의 분담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회가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현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필수인력(Essential Workers)’으로 분류된 직업 종사자의 52%가 여성이다. 특히 약사의 대부분, 간호사 10명 중 9명, 식료품 점원의 3분의 2가 여성으로 집계됐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 살 아이를 둔 한 약사는 어린이집 문이 닫히자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일주일 내내 약국 문을 열었다. 마스크를 사려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그는 “남편이라도 재택근무를 했다면 상황이 훨씬 나았을 것”이라며 “육아가 연로한 친정어머니에게는 큰 부담이라 다음에 또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약국 문을 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돌봄 부담이 여성에게만 전가된다면 비상 상황에서 필수인력의 가용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돌봄 관련 기관과 돌봄 서비스를 확충하는 ‘돌봄의 사회화’는 그간 돌봄 문제에 관한 대표적인 해결 방안으로 추진됐다. 돌봄 인프라의 구축과 관리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지만, 코로나19 사태는 이것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추가해 우리는 재택근무를 비롯해 성별과 연령의 구분 없이 필요에 따라 돌봄에 참여할 수 있는 유연한 근무 환경, 돌봄 부담의 유무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전에 없던 ‘이동 제한’ 조치로 직장이 폐쇄된 몇몇 국가의 경우 남녀 모두 선택의 여지 없이 재택근무를 해 아빠의 돌봄 참여가 늘어났고 돌봄으로 인한 불이익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줄었다는 보고도 있다.

    연대 의식과 자부심의 힘으로

    3월 27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대구 계명대 동산의료원 간호사들이 근무를 하기 위해 보호구 착의실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3월 27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대구 계명대 동산의료원 간호사들이 근무를 하기 위해 보호구 착의실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코로나19 사태가 이번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뉴노멀의 전망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모두 합심해 이 위기를 침착하게 극복해내고 있다는 연대 의식과 자부심이 있다. ‘헬조선’이라고 자조했지만, 오히려 외부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는 평가를 받는 역설 뒤에는 항상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가 있다고 믿고 끊임없이 나아가는 한국 사회의 동력, 그리고 불편을 기꺼이 감내하는 공동체 정신이 자리한다. 두 달여 동안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과 집 안에 갇혀서도 콩나물을 기르고 400번 저어 ‘달고나 커피’를 만드는 유쾌함을 잃지 않는 엄마들, 평일엔 최대한 빨리 귀가하고 주말엔 서툰 솜씨로나마 요리를 시도하는 아빠들이 있는 한 한국의 새로운 일상 역시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을지 모른다. 이 긍정의 힘으로 이제는 ‘돌봄의 뉴노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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