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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인구동향조사’를 보면서 문득 옛 기억이 떠올랐다. 출생·사망 통계에 따르면 이 선배가 출산한 2000년 초(初)산모 평균 연령은 27.4세(그래프1 참조). 전체 산모 중 35세 이상 ‘고령’ 산모의 비중은 6.7%에 불과했다. 20년이 흐른 현재 첫아이를 출산한 여성의 평균 나이는 32.2세, 고령 산모의 비중은 33.3%에 달한다. 올여름 출산하는 31세 산모라면 오히려 평균보다 일찍 엄마가 되는 셈이다.
고령 산모 비중, 20년 새 5배 높아져
현재는 의학적 기준에 따라 만 35세 이후 출산하는 여성을 고령 산모로 분류하지만, 이러한 추세가 더 뚜렷해진다면 적어도 사회적 관점에서는 고령 산모 혹은 ‘늦맘(Later motherhood)’ 기준이 바뀔지도 모른다. 미국이나 영국에선 ‘50, 60대에 부모가 되는 게 바람직한가’에 대한 논쟁이 종종 벌어지는데, 한국에서도 머지않아 이러한 얘기가 나올 수 있다.물론 한국은 모든 연령대에서 출산율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올해 1분기 25~29세 1000명당 출산아 수는 지난해 동기 대비 6.7명 감소했다. 같은 기간 30~34세는 11.3명, 35~39세는 3.7명, 40세 이상은 0.1명 줄었다. 또 최근 발표된 통계청의 ‘사회조사’에서 20, 30대의 40% 이상이 결혼 후 자녀를 갖지 않아도 된다고 응답했다(그래프2 참조). 뉴스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한 얘기가 넘쳐난다. 이쯤 되면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 대신 ‘왜 (굳이) 아이를 낳는가’라고 묻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실제 지난해 폴 돌런 영국 런던정치경제대 심리 및 행동과학과 교수는 비혼에 자녀가 없는 여성이 다른 인구집단보다 건강하며 행복하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미국의 생활시간조사(American Time Use Survey)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비혼-무자녀 여성의 행복도가 가장 높았다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가 맞다면 30대 후반, 40대 초반에 ‘굳이’ 엄마가 된 늦맘은 매우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그러나 이 연구에는 함정이 있다. 이 연구의 행복도는 어제 24시간 중 무작위로 선정한 세 번의 순간에 어떤 활동을 하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슬펐는지, 피곤했는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고통스러웠는지, 의미가 있었는지 정도를 바탕으로 추정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응답자가 어제 하루 동안 각 시간대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 기록하면, 오늘 컴퓨터가 ‘어제 오후 1~2시에 당신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당시의 느낌을 표시해주세요’라고 요청하는 식이다.
하루 종일 어린아이를 돌본 40대 엄마라면 하루 중 어느 때에 관해 묻더라도 ‘피곤하다’고 응답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의 하루는 요리, 설거지, 청소, 빨래 같은 각종 집안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휴식이나 취미생활 등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시간은 갖기 어렵다. 특정 시점에서 구체적인 활동에 대한 행복도를 측정한다면 당연히 행복 점수가 낮을 수밖에 없다. ‘청소를 하면서 얼마나 행복했습니까. 0~6점으로 응답해주세요’라고 할 때 6점에 체크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다. 육아의 고단함을 호소하는 사연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도 아마 이러한 시간 사용 패턴과 연관 있을 것이다.
‘필요’만 따진다면 ‘쓸데’없지만
‘삶의 행복’은 이와는 다른 문제다. 돌봄 경험을 연구하고자 엄마들을 만나면 대화의 80%는 육아 얘기, 또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에 대한 얘기로 채워진다. 이러한 엄마들의 얘기에 임신한 동료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진다. 앞날이 너무 걱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들 얘기는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수십 분에 걸쳐 육아의 고단함과 삶의 지난함을 토로하면서도 엄마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자녀를 가진 것이 ‘살면서 가장 잘한 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축복’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늦맘으로서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는 엄마들의 고백이 빈말이나 자기합리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아이가 주는 기쁨은 어떤 성취보다 강렬하다. 엄마가 들어간 화장실 문 앞에서 엉엉 우는 아기는 고난의 육아 스토리에서 빠지지 않는 에피소드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내 얼굴만 봐도 울음을 그치고 방긋 웃는 존재가 있다는 것, 누군가의 우주가 되는 것은 드문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경험을 보상으로 받기 때문에 ‘퀘스트’가 힘든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앞서 인용한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는 초저출산 현상의 지속을 예측하게 하는 수치로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하지만 ‘결혼 후 자녀가 필요하다’는 질문은 잘못 설정됐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과연 자녀가 ‘필요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필요’만 놓고 따지자면 세상 쓸데없는 게 자녀다. 어르신들은 자녀 없이 부부 둘이 오래 잘살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육아와 집안일 부담으로 부부 간 갈등이 커지는 게 보통이다. 아이 때문에 억지로 유지될 관계라면 진작 ‘쿨하게’ 헤어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부모가 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자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 모든 것을 감당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부모는 대부분 사랑하는 아이를 키우는 기쁨과 보람을 위해 가족을 부양하고 돌봄을 감내한다. 저출산 트렌드에도 꿋꿋하게 부모 되기를 선택한 고령의 엄마, 아빠는 누구보다 이 ‘진실’을 절절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건강 상태가 좋아지고 의료기술이 발달하긴 했지만 늦은 나이의 출산과 육아는 여전히 쉽지 않다. 미국 여성학자 엘리자베스 그레고리는 “35세 이후 출산에 대해 찬반 논쟁을 하기보다 왜 여성들이 점점 늦은 나이에 출산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늦은 출산의 증가를 설명하는 키워드를 ‘준비(Readiness)’에서 찾았다. 늦은 나이가 돼서야 비로소 자녀를 낳아 키울 준비가 됐다고 느끼는 여성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준비는 개인적 차원만이 아니다. 여성이 출산 및 육아와 관련해 전반적으로 얼마나 지지받을 수 있는지에 달렸다”고도 말했다. 지금처럼 육아의 신체적, 경제적 부담과 커리어 손실이 개인, 특히 여성에게 집중될 경우 더욱 늦은 나이에 이제 엄마가 될 준비가 됐다고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누구나 돌봄에 참여할 수 있고, 그것으로 인한 불이익이 없는 유연한 사회 시스템의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갖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초저출산 사회인 한국에서 엄마가 되는 것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건강에 대한 염려가 커지고 가정 내 육아 부담이 늘면서 출산은 더욱 선택하기 쉽지 않은 ‘옵션’이 됐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하고 싶다. 엄마여도 괜찮다고, 온갖 두려움 때문에 사랑할 기회를 놓치지 말자고, 그리고 늦맘이어도 정말 괜찮은 공동체를 함께 만들자고, 우리 사회에 당당히 요구하자고 손 내밀고 싶다.
※ ‘주간동아’ 연재물 ‘늦맘이어도 괜찮아’는 이번 회로 마칩니다. 그동안 성원을 보내준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