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호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요즘 회자되는 말이다. 우리 일상은 두어 달 사이 크게 달라졌다. 이번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끝나면 사람들은 다시 마스크 없이 만원 지하철에 오르고, 공연장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쳐가며 열광할 수 있을까.
우리의 일상이 전과 같을 수 없으리라 어렴풋이 짐작하는 사이, 데이터에 기반해 코로나19 이후 대중의 일상을 예측하는 스타트업이 있다. 전국 18만 패널을 대상으로 그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모바일 리서치 기업 ‘오픈서베이’다. 5년째 이 회사를 이끌고 있는 황희영(43) 대표는 “코로나19로 우리 생활이 압축적으로 빠르게 변했고, 이 변화는 코로나19 후에도 잔존할 것”이라며 “잊힌 것의 재발견, 그러니까 ‘집밥’과 동네 소비 시대가 다시 열리리라 예측한다”고 말했다.
찌개와 반찬보다 고기 굽기
선 전국 패널의 일상을 관찰하는 방법에 대해 소개해달라.
“스마트폰에 오픈서베이 설문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한 사람이 전국 18만 명이다. 고객사 요청이나 자체적인 필요에 따라 월 40만 건의 설문조사를 진행한다. 패널 5만여 명으로부터 카드 결제 또는 위치 등 ‘행태데이터’를 수집하고도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설문조사 양이 늘었다. 기업들도 코로나19에 따른 변화에 관심과 고민이 많기 때문이다.”
생활습관 가운데 가장 보수적으로 꼽히는 것이 ‘입맛’이다. 식습관 변화는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일어나는 법. 오픈서베이에 따르면 각 가정의 식단에서 간편식 비중은 코로나19 이전 4년간(2016년 7월~2019년 12월) 약 3%p 상승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고 두 달 사이(2020년 1~3월) 간편식 비중이 5%p가량 늘어났다. 최근 한두 달 사이 소비자 식습관이 지난 4년간보다 더 크게 변화한 것이다.
코로나19가 우리 식습관을 ‘뒤흔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간편식 비중 증대는 유의미한 변화가 맞지만, 눈여겨봐야 할 게 또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뒤 간편식 증가세는 잦아들고, 그 대신 집에서 직접 요리해 먹는 집밥 횟수가 늘었다. 코로나19 사태가 금방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을 때는 끼니를 간편식으로 간단하게 때우다, 장기전에 돌입한 후로는 ‘제대로 먹자’는 욕구가 강해진 것이다. 이러한 집밥 수요는 코로나19 전부터 있었던 건강식 트렌드와 맞물려 코로나19가 잦아든 후에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집에서 주로 뭘 해 먹나.
“정육, 채소, 과일 소비량은 늘고 국·탕·찌개 소비량은 줄었다. 다시 말해 국이나 찌개, 반찬 여러 개를 놓고 먹기보다, ‘메인 디시’ 하나로 간단하게 집밥을 해 먹기 시작한 거다. 이러한 집밥은 고기만 구우면 다른 건 요리할 필요가 없어 1인 가구나 맞벌이 가정에서 즐겨했는데, 코로나19를 계기로 일반 가정 전반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코로나19로 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좋은 걸 먹겠다는 욕구가 줄지 않을까.
“지난해 말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 형태 변화를 조사했다. 소비자들은 앞으로 소득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해도 식료품 지출은 늘리겠다고 응답했다. 오락·문화·여행 관련 지출도 줄일 생각이 없었다. 과거 비필수재로 여기던 오락·문화·여행이 이제는 필수재가 된 것이다. 식료품은 품목별로 소비 지향이 달랐다. 정육과 과일은 비싸고 좋은 것, 생수나 라면처럼 제품별 품질 차이가 크지 않은 것은 100원이라도 저렴한 것을 선호했다. 감염병 대유행과 경기침체가 겹치면서 ‘잘 먹고, 시간을 잘 보내겠다’는 대중 욕구는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배달음식 성장세가 가파르다.
“4월 초 조사에서 외식 빈도는 전년 동기 대비 9.2% 감소한 반면, 배달음식 이용 빈도는 7.5% 증가했다. 앞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빈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상황도 ‘야식이 먹고 싶을 때’보다 ‘집에서 먹는 일상적 식사’인 경우가 더 많아졌다. 최근 배달 중개앱 수수료 논란이 큰데, 사회적 합의점을 찾는 게 시급해 보인다. 소비자들은 배달비 추가, 수수료 논란 뉴스에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네 정육점 경쟁 상대는 ‘마켓컬리’
미국, 유럽처럼 이동제한령이 내려지진 않았어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한국인의 구매 형태도 많이 달라졌다. 최근에는 온라인 구매 비중이 처음으로 60%를 넘어섰다는 한 소비자조사 전문기관의 발표도 있었다. 온라인 쇼핑이 증가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오픈서베이가 주목하는 것은 ‘온라인은 집중화, 오프라인은 파편화’하는 이중현상이다. 황 대표는 “소비자가 선호하는 온라인 구매처는 구색, 가격, 서비스 등을 다 갖춘 한두 업체로 집중화되는 한편, 오프라인 구매처는 대형마트 외에도 동네 슈퍼마켓, 편의점, 반찬가게, 정육점 등으로 파편화하는 흐름이 포착된다”고 말했다.코로나19가 로컬리제이션(Localization), 즉 동네 상권 활성화를 가져온다?
“실제 데이터를 보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동네 슈퍼마켓 매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동네 반찬가게 이용 빈도도 반등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생활 반경이 좁아지면서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지역 상권 중심의 소비가 국내에서도 자리 잡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본다. 나만 해도 집 근처 괜찮은 정육점과 야채가게 사이에 맛있는 빵집이 생겨 ‘장 보러 나간 김에’ 두루 들르는 일이 잦아졌다.”
동네 소비가 증가하리라는 전망은 요즘 더욱 어려워진 자영업자들에겐 희소식이다.
“하지만 경쟁 상대가 이웃 가게가 아니라, e커머스와 대형마트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고객이 동네 가게의 상품 구색, 가격,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면 언제든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육점이라면 ‘마켓컬리’보다 더 좋은 고기를 더 좋은 가격에 팔아야 한다. 반찬가게, 야채가게, 빵집, 식당 등이 연합군을 형성해 밀집해 있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산지 직송’ 온라인 주문이 늘어났다고.
“과거엔 익숙했지만 그간 잊고 지내던 것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집밥과 동네 소비가 그에 해당한다. 또 하나가 산지 직송 소비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단골 농가의 전화번호를 수첩에 적어놨다 가을엔 어리굴젓, 겨울엔 제주 귤을 전화로 주문했다. 이제는 온라인 쇼핑몰이 소비자와 농가를 연결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식료품 대량 구매가 늘면서 소비자들도 좀 더 적극적으로 농산품을 상자 단위로 주문하는 산지 직송 서비스를 애용하게 됐다.”
황 대표는 “젊은 세대만 온라인 장보기에 익숙하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할 때가 됐다”고도 덧붙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모처럼 온 가족이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50대 부모가 20대 자녀의 소개로 ‘네이버 쇼핑’을 경험하는 등 온라인 소비에서도 세대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나도 이번에 팔순 시어머니에게 식료품을 새벽배송 받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매우 편리해하신다”며 웃었다.
‘맛집 투어’는 먼 동네보다 우리 동네에서
이제 오락·문화·여행이 필수재라고 했지만, 여행 가기가 꺼려지는 요즘이다.
“5월 연휴 때 나타나는 여행 패턴을 지켜봐야겠지만, 대중이 여행을 영원히 포기하진 않을 거다.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이후 국내여행 수요는 완전히 회복되는 한편, 해외여행 수요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 대신 해외여행에서 누리던 것을 국내에서 찾으려는 트렌드가 나타나리라 예측한다. 동남아 풀빌라 리조트 대신 국내에서 풀빌라형 숙박시설을 찾는 식으로.”
재택근무, 원격교육은 어떻게 전망하는가.
“코로나19 사태가 없었더라도 더 성장할 시장인데, 변화 속도가 빨라졌다. ‘재택근무를 해보니 괜찮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 같다. 오픈서베이는 8명 남짓한 소비자를 초대해 좌담회를 연다. 이번에 처음으로 원격 좌담회를 열었다. 처음에는 잘 될까 걱정이 컸는데, 화상회의를 하는 2시간 동안 심층적인 대화를 충분히 나눴다. 그간 오프라인 좌담회를 서울과 부산에서만 열었는데, 원격 좌담회에서는 대구, 제주 등 평소엔 만나기 어려웠던 소비자를 초대할 수 있었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나도 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둔 학부모다. 원격교육의 질에 대해 고민이 많은데, 발전적인 방향을 찾았으면 좋겠다.”
코로나19 이후 뜨는 시장, 지는 시장을 예측한다면.
“먹는 것, 그리고 머무는 곳과 시간에 대한 투자가 늘어날 전망이다. 인테리어 앱 ‘오늘의 집’의 거래액이 어마어마하게 늘고 있는 것에서 보듯, 우리가 머무는 공간에 대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리라 본다. 집 안에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콘텐츠에 대한 전망도 밝다. 하지만 청소서비스 등 O2O(online to offline) 시장은 위축될 것 같다. 앞으로는 대중이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으로부터 서비스를 받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행위가 사라지진 않겠지만, 먼 동네의 비싼 식당보다 나만 아는 우리 동네의 작은 식당을 더 선호할 것이라 예상한다.”
황 대표는 포항공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같은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마친 ‘공대 언니’다. 하지만 이후 모니터그룹, 한국피자헛, 맥킨지앤컴퍼니를 거치며 마케팅 전문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미래를 예측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의 변화를 빨리 감지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현상을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하는데, 변화 총량이 커지면 감지하기 쉽고, 과거엔 이유를 찾기 어려웠던 것도 답이 보이기 때문에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변화를 흥미롭게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 예측은 흥미롭고 유용
미래 예측은 기업이 비즈니스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미래 예측이 개인에게는 어떤 효용이 있을까.“우리 생활과 사회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예측해보는 것은 효용을 떠나 흥미롭고, 때론 개개인이 미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사업에 관심 있는 주변 지인들은 늘 ‘앞으론 이런 게 잘되지 않을까’라는 얘기를 하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가족 내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하는 데 정보를 활용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내내 재택근무를 하면서 전보다 집안일을 많이 하게 됐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다. 코로나19 이후 우리 가족 내 관계는 전과 같지 않을 것 같다.(웃음)”
스타트업 대표가 된 지 5년이 됐다. 소감은.
“스타트업 대표를 하려면 세 가지 역량이 필요하다. 지력과 체력, 그리고 심력(心力). 이 중 가장 힘든 게 심력이더라.(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