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비어걸’ 사이트에서 진행된 랜선 술 이벤트. 미리 배송된 3종류의 맥주를 마시는 이벤트다. [beergirl.net]
미래 혹은 가상 소설의 한 대목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를 하던 어느 기업에서 실제로 이렇게 ‘랜선 회식’을 했다고 온라인상에 전해지는 이야기다. 코로나19 사태로 외식시장이 급변했다. 기업 회식이나 각종 모임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사람은 함께 어울리길 원한다. 기업 같은 조직에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평소 생각을 표출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미국 뉴욕에서 이동제한으로 재택근무 중인 한 지인은 최근 “오후 4시 팀원들과 함께 각자 좋아하는 술 한 잔씩을 들고 온라인 화상 앱으로 ‘해피아워’ 토크를 했다”고 전했다.
편의점 와인 앱, 가정용 맥주서버 등장
세븐일레븐 애플리케이션에서 와인을 주문할 수 있다(왼쪽). 이마트가 판매 중인 가정용 맥주서버. [각 업체]
이러한 랜선 문화가 코로나19 사태로 홈술, 혼술, 그리고 회식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랜선’ ‘혼술’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수백 개의 채팅창이 보인다. 아예 랜선 술자리를 지원하는 온라인 플랫폼도 등장했다. 일본 ‘비어걸’(beergirl.net)은 여성 전용 홈술·혼술 사이트다. 온라인 화상 플랫폼 줌(ZOOM)을 통해 예정된 랜선 회식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특히 랜선 술 이벤트의 인기가 높다. 사전 신청을 하면 미리 4종의 술을 보내주고, 관련 전문가가 랜선 회식에 참여해 술에 대해 설명해준다. 소믈리에가 와인에 대해 얘기해주듯 맥주나 전통주 등을 안내한다. 해당 술을 생산한 양조장 내부와 그 주변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는 점도 흥미롭다. 앞으로는 증강현실(AR) 기술로 콘텐츠가 더 다양하게 진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랜선 홈술에는 여러 장점이 있다. 요즘처럼 전염병 감염 위험이 걱정되고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으로 모임을 갖기 꺼려질 때 집에서 온라인상으로 사람들을 만나면 감염 걱정은 덜면서 함께 어울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혼자 술 마시는 적적함을 덜 수 있고, 좀 더 폭넓게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이러한 비대면 문화는 소매점 매출을 늘렸다. 전국 4만여 개 편의점과 슈퍼마켓, 대형마트가 수혜를 입었다. 편의점 주류 매출은 쉴 새 없이 성장 중이다. 3월 1~24일 CU의 주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가량 상승했다. 2018년(9.9%), 2019년(12.3%) 상승세보다 훨씬 높다. 와인(39.2%) 판매 상승세가 가장 컸고, 위스키와 양주(26.5%), 막걸리(21.1%), 소주(17.7%), 맥주(10.4%)가 그 뒤를 이었다. 4월 들어 와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65.5%나 상승했다고도 한다.
코로나19 시대 홈술시장을 노린 마케팅도 가동됐다. 세븐일레븐은 와인 앱을 오픈, 앱에서 와인을 골라 결제하고 편의점에서 찾아가는 서비스를 개시했다. 이마트는 아예 가정용 맥주서버를 선보였다. 맥주가 가장 맛있는 4도로 유지해주는 일종의 맥주 냉장고다. 이마트가 3만3000원에 판매하는 하이네켄·에델바이스·타이거의 5ℓ 맥주통(케그)을 이 맥주 서버에 넣으면 된다. 국내 소비자들이 해외직구로 들여오던 테팔 제품을 이마트가 국내 규격에 맞게 수입했다.
‘홈 칵테일’ 알려주는 유튜브 영상도 인기
가정용 홈술시장을 겨냥해 출시된 ‘조니워커 블랙 레이블’ 200㎖. [디아지오코리아]
위스키 홈술 문화 확대에는 유튜브가 기여한 바도 적잖다. 유튜브에 집에서 즐기는 위스키나 칵테일 만들기 관련 콘텐츠가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RiniBini리니비니’ ‘남자의 취미’ 채널이 특히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홈술 문화와 랜선 회식은 ‘주류시장의 위기’를 넘기에 역부족이다. 하이트진로의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가량 증가하는 데 그쳤다. ‘테라’ ‘진로이즈백’의 히트에도 코로나19 사태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 ‘카스’로 요식업시장에서 최의 점유율을 자랑하던 오비맥주는 청주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4주간 생산을 중단하고 재고를 소진할 계획이다. 지난해 11월에 이어 5개월 만에 또 희망퇴직을 신청 받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롯데칠성의 주류 부문도 사정이 어렵다. ‘클라우드’가 아직 테라, 카스의 아성에 미치지 못하고 소맥용으로 출시한 ‘피츠’의 존재감도 약하기 때문이다. 최근 밀레니얼 세대의 취향에 맞춰 래퍼 염따와 컬래버레이션해 ‘처음처럼 플렉스’를 선보였는데, 소비자 반응이 어떨지가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