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영화보다 더 생생하게, 아니 현기증이 날 만큼 강렬하게 바다 냄새를 담아낸 사진집이 있다. 사진작가 전화식씨의 ‘태평양에서의 참치와의 전쟁’(War Of Tuna)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남태평양의 깊고 푸른 바다와 하늘, 불타는 석양을 그대로 전한다. 검푸른 색의 바다 위 한쪽에 부글부글 흰 거품이 끓어오르는 스쿨 피시 현상이나, 그물의 노란 ‘부이’가 바다를 가르며 기하학적 도형을 그려내는 것은 참치잡이가 아니라 한 폭의 그림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다 선단을 보유한 참치 생산국인데도 지금까지 참치 선망선의 어업활동이나 선원들의 바다생활을 제대로 소개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부끄러울 뿐이다.
전화식씨는 94년과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약 60일간 참치잡이 선망선에 승선했다. 뱃사람들이 벌이는 참치와의 사투를 필름에 담기 위해서였다. 운이 좋으면 하루 만에도 어창을 채우고, 운이 나쁘면 열흘이 넘어도 참치 구경 한 번 못하고 시간만 죽이기 일쑤지만 이들은 느긋하다. 언제쯤 항구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물음에 간단히 “그건 고기 마음이죠”라고 대답하면서. 그러나 선장의 “레츠 고” 신호가 떨어지면 배의 분위기는 어느새 전투함처럼 긴장감이 흐르고 숨가쁜 참치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사진의 기록적 가치에서 황헌만씨의 ‘도산서원’과 ‘한국의 세시풍속’ 역시 귀중한 자료다. 그래서인지 카메라 앵글의 왜곡이나 연출 등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황헌만씨는 10년 전부터 전국의 서원과 사찰 등 역사 유적을 테마로 사진을 찍어왔다. 지난 3년 동안 집중적으로 도산서원을 취재했는데, 이번에 평소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 장서각 동광명실, 서광명실, 외부인과 여성은 참여할 수 없는 향례의 전 과정 등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의 세시풍속’은 1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한국인의 삶을 추적한 결과다. 정월의 설날 떡국 차례와 세배, 2월의 볏가릿대 허물기, 3월의 장 담그기, 5월의 초파일, 5월 단오제, 6월 천렵, 7월의 김매기, 8월 한가위, 9월 중양절, 11월 동지 등 언뜻 보아도 우리의 세시풍속은 농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사진들은 1976년부터 2000년까지 대표적인 세시풍속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찍은 것이다. 사라지기 전에 담아야 한다는 사진작가의 의지가 만들어낸 현장기록이다.
퇴계 선생 탄생 50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도산서원’은 황헌만씨의 사진과 함께 이우성, 윤사순, 두웨이밍, 도모에다 류타로, 장 리원, 금장태, 정순우, 이동환, 송재소, 임형택, 이상해 등의 연구논문을 엮었다. 여기에 꼼꼼한 사진 설명과 이것을 다시 영문으로 옮긴 설명(유만근 성균관대 영문과 교수) 등 세심함이 돋보인다. ‘한국의 세시풍속’ 역시 정승모씨가 넉넉한 사진설명과 함께 세시풍속 연구의 역사와 연구방법 등을 소개한 글이 실려 있다. 한 장의 사진이 좋은 글과 만났을 때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세 권의 책을 골라 보았다.
태평양에서의 참치와의 전쟁/ 전화식 글·사진/ 김영사 펴냄/ 184쪽/ 3만5000원
도산서원/ 이우성 외 지음/ 황헌만 사진/ 한길사 펴냄/ 352쪽/ 5만 원
한국의 세시풍속/ 황헌만 사진/ 정승모 지음/ 학고재 펴냄/ 304쪽/ 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