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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광주 ‘화려한 휴가’ 나온 까닭

  • 노만수 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도서출판 일빛 편집장

5월 광주 ‘화려한 휴가’ 나온 까닭

5월 광주  ‘화려한 휴가’ 나온 까닭

영화 ‘화려한 휴가’.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형 진태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동생 진석을 아꼈듯,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영화 ‘화려한 휴가’(김지훈 감독)에서는 민우가 어릴 적 부모를 여읜 뒤 동생 진우를 보살핀다. 민우는 동생과 같은 성당에 다니는 간호사 신애를 마음에 두고 순애보도 펼친다. 그러던 어느 날 지옥불처럼 삶을 송두리째 태워버리는 일이 벌어진다. 시위대 진압군(공수부대)이 무고한 시민을 총칼로 짓이겨버린 것이다. 억울한 희생자였던 민우는 퇴역장교인 흥수를 중심으로 시민군을 결성해 전남도청을 근거지 삼아 열흘간 사투를 벌인다.

최근 개봉을 앞둔 ‘화려한 휴가’는 실존 인물을 다뤄 화제다. 또 1996년 나온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영화 ‘꽃잎’이 ‘18세 관람가’였던 반면 ‘화려한 휴가’는 ‘12세 관람가’다. 즉 본격적인 ‘5·18 대중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가 2007년 시점에 어떤 점을 시사하는 걸까.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실미도’가 그랬듯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금기를 다룬 영화는 대부분 성공한다는 흥행공식에 기댄 것일까.

실존 인물 다룬 본격적인 5·18 대중영화

‘화려한 휴가’는 1980년 5월 광주를 진압한 공수부대의 작전명이다. 이들의 화려한 휴가는 아직도 논쟁의 중심에 있는 어느 대통령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습니다.”



1979년 10월26일. 유신정권 18년 장기독재의 종말을 알리는 어느 고등학교 선생님의 이 말은 김인숙의 장편소설 ‘79~80 겨울에서 봄 사이’(1987)의 첫 문장이기도 하다. 80년대를 예감케 하는 간단한 진술 속에 내용의 착잡함이 묻어난다.

80년대는 ‘미친’ 현대사였다. 영화 ‘꽃잎’의 원작인 소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최윤, 문학과지성사)에서 당시 의문사한 오빠를 둔 열다섯 소녀는 정말로 실성하고 만다. 5·18 당시 광주 도심에서 공수부대의 총에 맞은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친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녀는 오빠를 닮은 낯선 남자를 무작정 따라나서고 묘지 주변을 귀신처럼 떠돈다. 열다섯 ‘꽃잎’이 실성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 양성우 시인은 아예 청산을 떠나고 만다.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대답하라./ 기나긴 죽음의 시절/ 꿈도 없이 누웠다가/ 이 새벽안개 속에/ 떠났다고 대답하라.”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1981

요즘 젊은 세대에게 80년 5월 광주는 역사책에 피가 아닌 잉크로 기록된 오래된 과거일 것이다. 하지만 소설가 공선옥에게 80년 봄은 한국 현대사의 원죄이자 그것을 치유하고자 하는 갈망으로 목이 쩍쩍 갈라지는 ‘목마른 계절’(소설)이었다. 5월의 광주학살은 죽어간 사람 수와 파괴된 재물의 양과는 무관하게 심리적·사회적 파장이 6·25전쟁에 버금갔다.

아우슈비츠 학살 이후 서정시를 쓴다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물은 어느 독일 망명철학자의 어법을 빌려, 살아남은 자들은 “광주학살 이후 서정시를 쓴다는 게 가능한가”라고 물었다. 그래서 김남주 시인은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라’ 하고, 황지우 시인은 ‘새들도 한 세상 떼어 메고 뜨는구나’라고 탄식했다. 망명화가 고암 이응노는 파리에서 ‘군상(群像)’을 그렸고, 망명음악가 윤이상은 독일에서 ‘아, 광주여’를 작곡했다.

지금이야 12·12 쿠데타로 실권을 잡은 전두환의 하나회가 권력을 지속하기 위해 반공주의와 지역주의라는 망령을 이용해 희생양을 광주에서 찾은 사실쯤은 ‘네이버 지식iN’에 부지기수 떠도는 상식 수준이지만, 당시에는 ‘광주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라는 말은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유언비어였다.

“어미를 따라 잡힌/ 어린 게 한 마리/ …옆으로 옆으로 아스팔트를 기어간다/ …눈을 세워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달려오는 군용트럭에 깔려/ 길바닥에 터져 죽는다/ 먼지 속에 썩어가는 어린 게의 시체/ 아무도 보지 않는 찬란한 빛” -김광규 ‘어린 게의 죽음’, 1978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이 ‘폭력’을 예감했다고 한 어느 평론가의 평은 확대해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가 아름다운 까닭은 현실을 살아 있음이 아니라 죽음으로 해명해야 할 만큼 절박한 때가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80년 광주 시민이 바로 ‘먼지 속에 썩어가는 어린 게의 시체’들을 곁에 두고 ‘아무도 보지 않는 찬란한 빛’을 찾아, ‘어미를 따라 잡힌 어린 게’들이었다. 오직 죽음을 선택할 자유만 주어진 현실의 하늘은 ‘군용트럭’과 다름없었다.

민주주의 염원 ‘광주의 정신’ 되새기는 계기 삼아야

군용트럭에 깔려 죽은 ‘어린 게’들을 진혼(鎭魂)한 최초의 작품은 황석영의 르포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1985)였다. ‘광주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급전을 전할 수 있는 기동성엔 르포가 제일이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1985년에야 나올 수 있었다. 그만큼 암울한 제5공화국이었다. 학살자들과 그들의 언론은 “그해 5월은 단지 광주의 문제일 뿐”이라며 ‘빨갱이’들의 준동으로 치부했다. 또 지역주의는 그것을 진실인 양 호도했다. 그러나 모두 권력자의 권력놀음일 뿐이었다. ‘유신 잔당 뿌리뽑고 김일성도 격퇴하자’는 당시 ‘투사의 노래’가 이를 웅변한다.

이제 광주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지다. 하지만 당시는 불만세력의 암약지였다. 광주는 하나의 터부였다. 때문에 황석영은 광주항쟁을 이끈 윤상원을 장길산으로, 황지우 시인은 전남 화순 운주사 천불천탑의 미륵세상을 ‘화엄광주’로 은유했다.

정말로 임철우가 소설 ‘사산하는 여름’에서 그린 대로 ‘성교 중에 영영 유착되어버린 남녀가 향민의원에 입원해 있다’는 유언비어에 지나지 않았다. 유언비어가 가면을 벗지 않자 사람들은 ‘자학’하면서 역설적으로 희망을 찾았다. 정찬은 폭력에 대항하지 못하고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을 소설 ‘완전한 영혼’에서, 윤정모는 80년 5월 광주에서 탈출한 두 사람(김 신부와 요섭)을 등장시켜 ‘광주에 대한 기억’이 희망임을 보여줬다.

그 희망은 과연 누구의 손으로 빚어지는지에 대한 탐구가 바로 홍희담의 소설 ‘깃발’(1988)이다. 도청에서 끝까지 싸우던 사람들 대부분이 지식인 계층이 아니라 형자처럼 못 배운 사람들이었고 그들 기층민중은 동요하는 지식인들을 껴안고, 역사 속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노동자들의 펄럭이는 깃발’은 역사를 민중이 이끌 것이라는 걸 상징했다.

그리고 10여 년 뒤 후일담이나 우화적 기법을 탈피해 광주의 본질을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준 임철우의 ‘봄날’(1998)이 나온다. 1980년 5월16일부터 27일까지 광주의 전모를 드러낸 이 소설을 두고 누구는 “학살과 항쟁, 음모와 희생, 잔혹과 순수가 어우러진 복합적인 사건으로서 광주의 총체성”을 드러낸 최초의 소설이며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광주’를 대신해 타전한 다섯 권짜리 긴급 조난신호”라고 했다. 누가 광주에서 타전한 SOS에 응답해 가해자를 처벌할 것인가.

하지만 잔인한 역사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는 선을 분명하게 긋지 않는다. 본의 아니게 가해자가 구조적 위계에 의해 저지른 비극이나 당시 광주를 고립화한 타 지역도 어떤 의미에서는 가해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역사는 실존주의이기도 했다. 공수부대원들의 수기 모음집인 ‘작전명령-화려한 휴가’나 정도상의 소설 ‘십오방 이야기’가 그렇다. 80년 당시 공수부대원이던 김만복의 ‘십오방 이야기’를 보자.

만복의 동생 만수는 금남로의 중국집 배달원이었는데 광주시민군으로 나서 전일빌딩을 경비하다 형 부대의 소대장에게 사살된다. 만복은 제대 후 5년 동안 타향을 전전하며 동생의 복수를 꿈꾼다. 결국 소대장인지 그를 닮은 사람인지를 살해하고 감옥에 간다. 대학생 출신 정치범들은 만복이 공수부대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적개심을 품고, 만복 또한 잘난 대학생들을 사갈시한다. 그러나 만복은 이들의 진정성에 감동해 징벌방에 갇힌 대학생 원태의 똥 묻은 빨래를 자청한다. 독재체제 아래 억눌린 이들의 계급적 연대를 보여준 5월 문학의 탁월한 성과였다. 물론 아직도 발포명령자는 공개되지 않고, 희생자들의 정확한 수는 미지수다. 또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마지못한 결단으로 구속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8년 12월 특사로 풀려났다.

비극은 예술의 못자리이고 문학은 종족의 기억을 보존하는 콘텐츠다. 하지만 전쟁이나 광주의 시민학살 같은 역사적 비극은 단순히 문화의 소재 차원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러기엔 사안이 너무 심각하다. 때가 되면 하는 무당의 제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광주의 염원은 민주주의였다. 당시 그것을 죽인 것은 ‘우리 안의 레드 콤플렉스’를 교묘하게 악용한 ‘지역주의 망국병’이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가 5월도 아닌 휴가철 7월에 ‘화려한 휴가’(개봉)를 맞이한 까닭이 순전히 ‘5월 광주’의 뜻을 살리기 위해서이길 바란다.



주간동아 594호 (p90~91)

노만수 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도서출판 일빛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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