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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에서 투자로’ … 금융 빅뱅 가속도

자본시장 통합법 2009년 본격 시행 … 소비자도 투자 생활화 체질 개선 필요

  • 정경진 아시아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저축에서 투자로’ … 금융 빅뱅 가속도

‘저축에서 투자로’ … 금융 빅뱅 가속도

여의도 증권가.

머지않아 우리나라에도 미국의 골드먼삭스나 메릴린치 같은 대형 금융투자회사(IB)가 생기게 된다. 또한 소비자들이 은행에 가지 않고 증권사에서 지급결제할 수 있는 날이 온다. 재테크 유형도 저축에서 투자로 빠르게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일이 가능한 이유는 7월3일 국회를 통과한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 때문이다. 자통법은 앞으로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2009년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자통법의 핵심은 △ 파생상품 등 금융상품에 대한 규제를 대부분 없애 상품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게 하고 △ 증권사에 선물업과 자산운용업, 신탁업 등의 겸업을 허용하며 △ 은행만이 해왔던 지급결제 기능을 증권사에도 허용한다는 것.

즉 그동안 증권, 선물, 자산운용 등으로 나뉘었던 증권업계의 칸막이가 없어져 대형 IB가 출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는 것을 뜻한다.

투자 분위기에 기름 붓는 구실



그러나 자통법이 주목받는 더 큰 이유는 이 법이 소비자들의 금융이용 패턴을 바꾸는 기폭제 구실을 할 것이라는 점 때문.

최근 1~2년 사이 국내 금융시장에는 그야말로 ‘펀드 열풍’이 불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3년 말 9조4000억원이던 주식형 펀드 잔액이 지난해 말 46조5000억원으로 394.7%나 급증했다. 2004년 말 179조원이던 전체 펀드 투자규모는 2005년 204조원으로 25조원 늘었고, 지난해에도 30조원 늘어난 234조원으로 집계됐다. 올 들어서도 6월까지 20조원 이상의 신규 자금이 펀드에 유입됐다.

반면 2003년 말 255조원이던 은행의 정기예금은 지난해 말 260조원으로 1.9%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은행의 전체 수신은 575조원에서 648조원으로 73조원(12.7%) 늘었지만, 그동안의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줄어든 셈이다.

이 같은 수치는 이미 국내 금융시장에 중요한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뜻한다. 한국증권업협회 이정수 이사는 “금융 소비자들이 안정적이지만 수익률이 낮은 은행의 저축성 예금보다는 원금을 손해 볼 수도 있는 고위험 고수익 투자상품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통법은 바로 이런 분위기에 기름을 붓는 구실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전문가들은 지금까지는 은행계좌 없이는 한국에서 금융생활이 불가능했지만, 앞으로 증권사에도 금융전문가들은 지금까지는 소액결제가 허용되면 고객들의 선택 폭이 넓어져 은행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으므로 “자통법의 가장 큰 수혜자는 소비자”라고 설명했다.

은행을 통해 지급결제를 대행하던 증권사는 그동안 은행에 납부하던 수수료와 예치금 부담으로 고객들에게 비싼 수수료를 받아왔다. 그러나 자통법 시행으로 이러한 부담이 줄어들어 은행과의 수수료 차이도 좁혀질 전망이다.

한국증권연구원 김형태 부원장은 “은행과 증권사 간 수수료 경쟁이 벌어져 소비자는 수수료가 싼 곳을 골라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은행의 보통예금은 연 0.3% 수준의 이자를 주는 반면, 현재 지급결제 기능이 없는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는 연 4.3% 이상의 이자를 주고 있어 시중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구실을 했다.

CMA 잔액은 4월 말 현재 16조2649억원으로 지난해 말 8조5482억에 비해 2배나 늘었다. 반면 은행 보통예금은 1월 79조7000억원을 정점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 증권연구원은 지난해 연구보고서에서 증권사에 자금이체 업무를 허용하면 2005년 말 기준으로 100조원에 이르는 은행의 보통예금 가운데 20조원가량이 CMA 등 증권계좌로 빠져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자통법의 또 다른 혜택은 금융상품이 다양해져 소비자들의 선택 폭이 넓어졌다는 점이다. 금융상품 규제 방식이 포지티브(법에 열거된 상품만 허용)에서 네거티브(금지항목을 제외한 모든 상품 허용)로 바뀌면서 실업률, 이산화탄소 배출권, 일조량, 날씨, 범죄율, 자연재해 규모에 이르기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품 개발이 가능해졌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품 개발 가능

예를 들면 날씨를 이용한 파생생품의 경우 특정일의 강설량에 따른 손실을 보전할 수 있게 설계돼 투자자의 사업상 불가피한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경비회사는 범죄발생률 지표와 연계한 파생상품으로 범죄율 증가에 따른 위험을 피할 수 있다. 배추나 무 등으로 파생상품을 만들 수도 있다. 농민이 이 상품을 이용하면 농산물 가격 폭락에 대비할 수 있다.

또한 화재, 지진 등의 재난과 관련된 ‘재난채권’을 발행할 수 있고 전세권이나 상속권, 특허권 등을 유가증권으로 유통시킬 수도 있다.

증권사에서도 보험사가 취급해온 상품들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게 돼 사실상 업종간 장벽도 무의미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정수 이사는 “자통법은 저축보다 위험하지만 수익이 높은 투자상품으로 소비자를 유도하려는 것”이라며 “소비자는 교육을 통해 투자를 생활화하는 쪽으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투자자 보호대책 미흡 지적은

투자자 권리만 보호 … 기금 조성 등 실질 대책 세워야


‘저축에서 투자로’ … 금융 빅뱅 가속도

자통법 시행으로 투자자들의 권리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상품 설명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투자회사에는 배상책임도 물을 수 있다. 2003년 2월 감자가 결정된 하이닉스반도체 주주총회 모습.

자통법의 혜택을 강조하는 증권업계 주장과 달리, 투자자 보호수단이 미흡하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자통법은 투자자 보호대책으로 상품에 대한 설명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자 손해가 생기면 금융투자회사에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게 했다. 또한 투자 권유에 앞서 고객의 투자 목적, 재산상태, 투자 경험 등을 파악하고 투자자 특성에 맞게 투자를 권유했는지를 따지는 ‘적합성 원칙’도 도입했다.

이에 대해 한국금융연구원 김동환 연구위원은 “자통법의 투자자 보호수단은 투자자의 재산을 보호한다기보다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며 “투자상품의 위험이나 금융투자회사 성격에 대한 투자자들의 분별력이 낮은 현실을 감안할 때, 법적 분쟁이 생길 경우 투자자 보호기능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투자자에 대한 증권사의 설명 의무는 간단한 요식행위로 끝날 수 있어 현실적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 경우는 드물 것”이라며 “‘투자자 보호기금’ 같은 것을 만들어 일정 부분 투자자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도 “법은 영국 등의 선진국 제도를 도입하면서 이를 집행하기 위한 시장 시스템과 사법제도는 정비돼 있지 않다”며 “실질적인 보호장치를 만들지 않으면 시스템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고객이 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법원에서 어떤 원칙을 갖고 있느냐는 점”이라며 “법 위반 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2003년 증권업계에 집단소송제가 도입됐지만 현재까지 단 한 건도 소송이 제기되지 않았다”며 “미국에서도 대형 투자은행의 조사분석 왜곡이나 부정사례가 빈발해 엄격한 시장규제 제도로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배제도 등을 도입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594호 (p30~31)

정경진 아시아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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