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4

2007.07.17

“평양도 한나라당과 ‘찐하게’ 대화하고 싶어한다”

대북전문가 권오홍 씨 “北, 노무현에게 4년 동안 당했다고 생각”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7-07-11 13: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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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도 한나라당과 ‘찐하게’ 대화하고 싶어한다”
    올4월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씨의 대북 비밀접촉과 비선 라인을 통한 남북정상회담을 기획한 주인공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북한전문가 권오홍(47·사진) 씨가 그간의 침묵을 깨고 자신의 비망록을 단행본으로 펴냈다.

    그는 7월 초 출간된 ‘나는 통일 정치쇼의 들러리였다’(동아일보사 펴냄)를 통해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노무현 정권에 몸담은 권력 실세들의 대북 접촉 과정에서 벌어진 비화를 낱낱이 공개했다.

    또 남북간에 이뤄진 공개·비공개 협상을 주도해온 국가정보원을 향해서도 ‘분탕질’ ‘화장질’이라는 격한 단어를 쏟아내며 그간의 일을 정리했다. 그는 “공식 라인이 대통령을 기만한 측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공식 라인이 대통령 잘못 이끌어”

    그는 이 책에서 여권 인사들의 잇따른 대북 접촉을 분단을 먹고사는 통일 장사꾼들의 정치이벤트로 깎아내리면서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북풍(北風), 즉 여권 출신 대통령 후보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남북관계가 뒤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책을 낸 것은 분노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화장질로 분탕질한 DJ 정부의 햇볕정책이나 남북관계를 선거에 이용하려는 참여정부 모두 진정한 남북화해, 상생의 정신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한 오류를 지적해 반면교사로 삼고자 하는 게 내가 책을 쓴 이유다.”

    신북풍(新北風)의 수혜자가 될 사람으로는 친노그룹 대선주자인 이해찬 전 총리가 먼저 꼽힌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따르면 평양의 분위기가 다소 바뀌었다고 한다. 그는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남북의 정치적 거래가 권력의 의도대로 흘러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평양은 이 전 총리를 대선 국면에서 용도 있게 써보려고 했지만 역량이 기대에 못 미치자 용도 폐기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평양에서 그에 대한 중요도가 뚝 떨어지는 추세다. 이 전 총리를 미는 쪽이 당황하는 표정이다. 이해찬 손학규 김혁규 등 남측 정치인을 불러 돈 써가면서 대접했으나 실익이 없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 전 총리는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최승철 부위원장과 핫라인을 뚫었다. 이 전 총리는 5월14일 워싱턴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를 만나 미국의 입장을 최 부위원장에게 전하겠다고 말했으며, 북미 수교와 관련한 DJ의 메시지를 존 네그로폰테 국무부 부장관에게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권씨의 책에 따르면 DJ를 바라보는 평양의 시각은 과거와는 다른 것 같다. 평양은 일관되게 DJ의 방북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다고 밝혀왔다고 한다. 2006년 초부터 DJ를 ‘영양가 없는 훈수꾼’으로 여기는 분위기라는 것.

    그는 “DJ는 여전히 방북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과의 해후를 통해 2000년 6·15 선언의 정당성을 재입증하는 것만이 그가 자신의 결점을 감추고, 나아가 남북한 문제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자리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덤으로 연말 대선에 개입할 수 있는 정치적 입지도 확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권씨는 또 ‘노무현에게 4년 동안 당했다’는 게 북한 핵심부의 의견이라고 이 책을 통해 주장했다. 남북관계를 제대로 하자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하지 않는 사람’(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을 앉히는 등 서울의 태도에 평양이 당황스러워했다는 것.

    “‘노무현은 지능적인 거짓말쟁이’라는 말에서부터 ‘노무현이 미국 싫어한다고 하더니 이젠 미국 앞에서 긴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 결국 노 대통령은 문제를 던지기만 하지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게 북측 판단이다.”

    “이종석은 너무 무능한 학자”

    이종석 전 장관에 대한 그의 평가는 특히 신랄하다. 책의 한 대목이다.

    “한때 통일 외교 국방을 오로지하는 위치에 있었던 그는 너무나 무능했고, 책상물림이었다. 평양에서조차 ‘그는 학자(아마추어)’라는 말로 평가된다. 교과서적 접근의 대표적인 실패자라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과 권력 핵심부는 ‘이종석 로드맵’을 한 번이라도 의심해볼 깜냥도 없었다.”

    그는 또 평양은 한나라당과도 ‘찐하게’ 대화하고 싶어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도 정형근 의원 주도로 7월4일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 경제협력 활성화, 남북 자유왕래, 북한 방송·신문 전면 수용, 북한 극빈층에 대한 쌀 무상지원 등을 골자로 한 새 대북정책 ‘한반도 평화비전’을 발표했다. 한나라당의 대북정책도 포용 쪽으로 초점이 맞춰진 셈.

    “한나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한나라당에 대한 그들의 태도도 변화하고 있다.”

    권씨는 1989년부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 일하다가 94년 홍콩 근무를 마지막으로 퇴직한 뒤 중국투자, 무역, 기술협력 등 경제분야 컨설팅 일을 맡아 4000여 건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현재는 영국계 기업인 KIC런던의 기술고문직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 비즈니스 37계’ ‘북한 비즈니스 35계’ 등이 있다.

    권오홍 씨가 책을 낸 이유는

    “北風과 정치 서커스 되풀이해서는 절대 안 돼”


    “평양도 한나라당과 ‘찐하게’ 대화하고 싶어한다”
    -왜 책을 냈나?

    “이 책은 서울 평양 모두에 쓴소리를 하고 있다. 한반도의 격변은 필연이다. 분단은 지속되기 어렵다. 이 책은 노무현 정권 핵심부의 아마추어리즘과 남북정상회담 추진 뒷얘기를 다룬 것으로 읽혀서는 안 된다. 한반도의 올바른 장래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교과서로 읽혀야 마땅하다.”

    이 책으로 북측 인사들과의 관계가 불편해질 것 같다.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 내가 억지로 ‘이뻐해주세요’ 할 마음은 애당초 없다. 나는, 내가 지난 17년간 체득한 해법을 북측에 계속 제시할 것이다. 필요하지 않다면 나와 대화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들도 바뀌어야 한다고 쓴소리를 한 것이다. 서로가 바른 정책을 만들어낼 진정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남북한 문제는 해법이 없다.”

    -북핵 문제가 해결 국면에 들어갔다. 현 정부의 성과가 아닌가.

    “지난해를 잊었는가. 참여정부 대북정책의 핵심 코드를 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7월 미사일 발사 이후 인도적 지원마저 끊어버렸다. 그리고 10월9일 북핵실험이 강행된 이후 상황은 어땠나? 정부가 있기는 했나?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현 정부가 주도한 게 거의 없다. 냉혹하게 말하면 미국이 가는 길에 그냥 한 발 걸치고 가는 것뿐이다.”

    -남북 관계와 관련해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반면 신북풍 조짐도 있다.

    “국민도 이젠 정치적 술수를 눈치챘을 것이다. 일부이긴 하지만 평양에서 ‘정상회담이든 뭐든 할 수 있다. 남측 정세에 도움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해보자’는 말을 듣고 온 서울의 정파적 이익 세력이 있다. 북핵 문제가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북풍’의 개념으로 활용된다면 그건 아주 우스운 일이다. 북측에서도 그런 방향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정치 서커스’가 한반도 미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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