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4

2007.07.17

‘돈먹는 블랙홀’ 북핵 기가 막혀

폐쇄·봉인·불능화 단계마다 지원 요구 … 주변국 돈 걱정, 한국 또 독박 우려

  • 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a.com

    입력2007-07-11 1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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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먹는 블랙홀’  북핵 기가 막혀

    <b>고리원전 원자로 단면도 모형</b><br> 맨 위에 ‘제어봉 구동장치’가 있고 아래에 핵연료를 뜻하는 ‘원전연료 집합체’가 있다. IAEA는 북한 영변 원자로의 제어봉을 깊이 박아 넣어 원자로를 멈춰 세우고 제어봉 구동장치를 손대지 못하게 봉인함으로써 폐쇄한다. 그리고 원자로 안에 있는 핵연료를 꺼내고 시멘트 반죽을 부어 불능화할 것으로 보인다.

    6월 말 국제원자력기구(IAEA) 실무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옴으로써 북한 핵시설의 ‘폐쇄’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이에 따라 언론에서는 폐쇄와 함께 ‘봉인’ ‘불능화’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폐쇄, 봉인, 불능화는 무엇이고 어떻게 다른 것일까.

    폐쇄 대상으로 꼽히는 북한의 핵시설은 3개인데, 가장 중요한 것이 북핵 위기 때마다 단골로 사진이 등장하는 영변의 5MW(5000kW)급 실험용 원자로다. 둘째는 이 원자로에 들어가는 핵연료를 만드는 공장이고, 셋째는 5MW 실험용 원자로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재처리 시설인데, 북한은 이를 방사화학실험실이라고 부른다.

    자동차를 운전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시동(始動) 키를 뽑는 것이다. 원자로 운전에서 이와 비슷한 것이 바로 폐쇄(shut down)다. 자동차는 키를 꽂고 돌려야 시동이 걸리지만, 반대로 원자로는 ‘제어봉’을 위로 올려야 가동된다. 반대로 제어봉을 끝까지 박아 넣으면 원자로는 멈춰 선다.

    폐쇄 대상 북한 핵시설은 3개

    IAEA의 폐쇄 조치는 제어봉을 끝까지 박아 넣어 5MW 원자로의 가동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음주운전자의 차를 멈춰 세운 경찰은 운전자가 차를 몰고 도주하지 못하도록 키를 뽑은 뒤 필요한 조사를 한다. 그러나 IAEA는 이런 식으로 조사할 수 없다. 자동차 키는 뽑을 수 있지만, 제어봉은 뽑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무리한 힘’을 가한다면 제어봉을 뽑을 순 있다. 그런데 제어봉이 뽑히면 원자로는 ‘너무 세게’ 가동한다. 즉, 뽑아버린 제어봉은 도로 박아 넣을 수 없기 때문에 원자로가 과열(過熱)되면서 녹아버리는 용융(熔融) 사고가 일어나게 된다.

    제어봉은 시동 키이자 브레이크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가 내리막길에서 질주하다 사고를 내는 것처럼, 제어봉이 없는 원자로는 용융 사고를 일으킨다.

    1986년 구(舊)소련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사고가 바로 제어봉이 압력을 받아 뽑혀 날아감으로써 걷잡을 수 없는 과열로 용융이 일어난 경우다. 이로 인해 ‘노심(爐心)’이라고 하는 원자로 내부가 녹아버려 원자로 안에 있던 방사성물질이 유출되었다. 그래서 IAEA 사찰관이 영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어봉을 깊이 박아 넣어 5MW 원자로의 가동을 멈추게 하는 것뿐이다.

    그러다 보니 북한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제어봉을 들어올려 원자로를 재가동할 수 있다. 북한이 임의로 제어봉을 올리는 것을 막기 위해 IAEA는 제어봉 구동장치에 ‘봉인(封印· sealing)’을 한다. 편지를 보낼 때 다른 사람이 열어봤는지를 알기 위해 봉투의 풀칠 부분에 도장을 찍는 것이 봉인인데, 이와 비슷하게 가동을 위해 원자로를 건드리는 순간 바로 파손되는 종이를 제어봉 구동장치에 붙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봉인을 뜯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데, 이 카메라에도 봉인 조치를 함으로써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원자로를 재가동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북한이 제어봉 구동장치와 감시카메라에 붙은 봉인을 제거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돈먹는 블랙홀’  북핵 기가 막혀

    한국의 울진원전 원자로를 감시하는 IAEA의 감시카메라. 북한이 폐쇄에 동의할 경우 IAEA는 이러한 카메라를 북한 핵시설에 설치한다.

    1994년 제네바합의에 따라 IAEA는 북한의 5MW 원자로에 이러한 봉인을 했지만, 제네바합의가 사실상 파기되고 2차 북핵 위기가 고조된 2003년 북한은 봉인을 뜯고 이 원자로를 재가동했다. 지금 IAEA의 폐쇄 조치는 2003년 재가동에 들어간 북핵 시설을 제네바합의 직후로 돌려놓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2005년 6자회담에서 타결된 9·19 공동성명의 핵심은 미국이 북한을 침공하지 않는 대신 북한은 CVID로 약칭되는 ‘완전한 핵폐기’를 약속한 것이다. CVID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를 뜻하는 영어 문장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여기서 나온 말이 ‘불능화(disablement)’다. 불능화는 영원히 가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음주운전자가 다시는 운전을 못하도록 하려면 그의 자동차를 빼앗아야 한다. 자동차 압수는 경찰관이 몰고 가면 되지만, 원자로는 갖고 갈 수가 없다. 따라서 영원히 가동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불능화다.

    자동차를 불능화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네 바퀴 또는 두 바퀴를 떼내는 것이다. 하지만 바퀴는 다른 데서 구해 끼울 수 있다. 이런 가능성까지 막는 확실한 불능화를 원한다면 엔진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시멘트 반죽을 넣어 굳히면 된다. 마찬가지로 IAEA는 영변 원자로 내부를 열어 핵연료를 꺼낸 뒤 그 안에 시멘트를 부음으로써 1차적으로 불능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불능화도 북한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복원할 수 있다. 5MW 원자로는 북한이 자체적으로 만든 것이므로 북한은 유사시 원자로를 새로 만들면 된다. 따라서 좀더 확실한 불능화를 하려면 설계기술자까지 모두 끌고 나와야 하는데, IAEA는 물론 미국도 이것까지는 할 수 없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북한은 불능화로 가는 과정에 왜 동의하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5MW 원자로는 22년 전인 1985년쯤 가동을 시작했다. 원자로의 수명은 30년 정도이므로, 이 원자로는 조만간 해체돼야 한다. 게다가 이 원자로는 조악한 기술로 만들어져 고장이 잦아 효율성이 매우 낮다고 한다.

    또한 미국이 군사위성을 동원해 철저히 감시하고 있어 북한은 이 원자로 가동에 부담을 느껴왔다. 그리고 북한은 이 원자로에서 나온 핵연료를 재처리해 얻은 플루토늄으로 만든 핵무기로 지난해 10월 실험을 감행했다. 북한으로서는 더 얻을 것이 없으므로 이 원자로를 버리는 카드를 선택한 듯하다.

    명분 주고 실리 챙기는 꽃놀이패

    완전한 불능화는 해체인데, 해체를 하려면 방사성물질을 제거하는 제염(除染) 작업 등 복잡하면서도 돈이 많이 드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북한은 6자회담에 따라 불능화에 동의하면서, 불능화나 해체 비용은 5개국이 부담하라고 요구한다.

    1994년 제네바합의 직후 북한 신포에 원자로 2기를 짓기로 했을 때 김영삼 정부는 선뜻 비용의 70%를 떠맡겠다고 제안해 성사시켰다. 그런데 이 공사가 중단됨으로써 한국은 공사비 1조5000억원을 날렸다. 이 경험 때문에 천영우 6자회담 수석대표는 “불능화까지 가는 모든 비용은 5개국이 똑같이 부담하는 방안을 주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남의 돈으로 사실상 쓸모없어진 원자로를 정리한다. 그리고 폐쇄에서 불능화에 이를 때마다 갖가지 이유를 들어 지원을 챙길 것이다. 핵연료 공장과 방사화학실험실을 폐쇄하거나 불능화할 때마다 지원을 요구할 테고, 계획만 있었던 50MW 실험용 원자로와 200MW인 태천원자력발전소 건설을 포기하는 대가로 또 지원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개발된 핵무기는 IAEA가 폐쇄하거나 불능화할 대상이 아니다. 명분을 주고 실리는 챙기는 꽃놀이패 구사가 북핵 시설 폐기의 또 다른 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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