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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시네마천국|미녀는 괴로워

외모 지상주의 꼬집나, 부추기나

외모 지상주의 꼬집나, 부추기나

외모 지상주의 꼬집나, 부추기나
올해 세 번째다. 성형과 관련된 영화를 보는 것이. ‘신데렐라’, ‘시간’ 그리고 ‘미녀는 괴로워’. 살로 만든 명함인 얼굴을 찢고 뜯는 이 작업이, 무심한 기표의 변환이 스크린상에서 너무 쉽게, 초현실주의적으로 이루어져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보이는 현상도…. 성형이란 마술봉은 판도라 상자에 고이 담긴 환희와 두려움, 복수, 죄책감 같은 원초적 감정들을 여자들의 뜯긴 얼굴과 함께 뒤섞는다.

전신성형 후 180도 달라진 세상의 눈

외모 지상주의 꼬집나, 부추기나
한 케이블 방송에서 예전에 ‘미운 오리 백조 되기’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성형외과 의사, 패션 디자이너, 미용 재건 치과의사, 트레이너, 심지어 심리학자까지 모여 지금까지 미운 오리로 살아온 한 여성의 영혼과 육체를 완전히 개조해 극적인 결과를 이끌어낸다. 애가 둘 딸린 미혼모든, 오천평도 울고 갈 ‘내겐 너무 가벼운(?) 당신’이든 결과는 항상 똑같았다. 지독한 다이어트 끝에 플라스틱 바비인형이 된 그녀들이 거울 속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목 놓아 운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그러한 백조 되기의 연장선상에서 여성 관객들의 욕망과 로맨틱 코미디의 내러티브를 봉합한다. 그것은 풍자인 동시에 유혹의 이중주로, 여성 관객의 성형 체감지수를 후끈 달아오르게 한다.

낮에는 유명 가수의 립싱크, 밤에는 폰섹스 도우미로 일하는 여주인공 한나는 성형 후 양귀비 뺨치는 백조가 된다. 립싱크든 폰섹스든 자신을 숨겨야 하는 그녀가 외모라는 후광효과를 얻자 차 사고를 내도, 주책맞은 실수를 해도 남자들은 그저 비실비실 웃기만 한다.



그렇다. 이 로맨틱 코미디야말로 육체라는 가죽부대가 우리 사회의 새로운 신분 장벽, 불멸의 신분증, 운명의 껍질이 돼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봉만대 감독의 ‘신데렐라’는 이러한 시대의 욕망을 차가운 메스를 들이대는 공포로 되갚았지만, 그것으로 다스리기에 지금 여기 성형에 대한 욕망이 너무 끈적했을까. 오히려 ‘너도 아중 언니처럼 될 수 있다’는 은근한 부추김은 더욱 성형의 유혹, 그 홀림의 최면을 엑스터시로 이끈다. 게다가 한나는 영원불멸의 면죄부, 바로 내면, 내면이 있는 걸!

외모 지상주의 꼬집나, 부추기나

‘미녀는 괴로워’

우리는 이 지점에서 스즈키 유미코의 원작 만화 ‘미녀는 괴로워’가 왜 그토록 우리들 마음을 사로잡아 밤낮을 낄낄거리게 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녀는 괴로워’에서 칸나 혹은 칸나균이라 불렸던 주인공은 초특급 성형미인이 되고서도 갈비를 살지 장미를 살지 헷갈려하고 카페 창가 자리가 주어지는 것에도, 누구나 다 받는 푸딩을 서비스 받는 것에도, 슈퍼마켓에서 비닐 대신 종이봉투를 들게 된 것에도 감격해서 눈물을 줄줄 흘린다. 말끝마다 수백만 엔을 들였다며 미인 대접받으며 살아가길 바라지만, 정작 ‘사과하지 않고 돈 내지 않고 남의 말 듣지 않는’ 미녀 수칙 중 하나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며 좌충우돌을 거듭한다. 이에 김이 붙어도 미인이니 괜찮다는 착각 수준의 판타지를 갖는 칸나를 통해, 미인이라는 허상에 대한 내면 파열을 통해 이 일본 만화는 다시 한 번 지구상의 외모지상주의를 통렬히 희화하는 심리적 쾌감을 전달한다. 게다가 칸나가 수백만 엔을 들여서라도 갖고 싶었던 남자 고스케가 사실은 성격 좋고 마음 착한 푸짐한 여자 애인을 두었다는 설정이나, 못생겨도 마음 당당 보무 당당한 또 다른 뚱녀의 출현은 플라스틱 미인에 대한 가차없는 일발 장진을 숨기고 있다.

김아중 특수분장한 거구의 몸매도 주요 볼거리

그러나 한국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특수분장을 통해 거구의 몸매로 바뀐 김아중의 놀라운 변신, 즉 성형 변신이라는 무한 변신에 대한 시각적 쾌락으로 원작에 맞대응한다. 즉 영화는 원작 만화의 전복적인 웃음보다는, 마틴 로렌스가 거구의 흑인 할머니 분장으로 승부수를 던졌던 ‘빅마마 하우스’류의 엎치락뒤치락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영화 속 한나 역시 정체성 혼란에 따른 분열감을 겪고 있기는 하다. 그녀는 ‘넌 가짜’라는 라이벌 가수의 폭로에 대항하고, 요양소의 아버지를 저버린 죄책감에 맞서 싸우면서 가수로 성공하기를 바란다. 문제는 이러한 정체성 혼란이 ‘미인 되기’라는 이 사회의 정신적 코르셋에 대한 어떤 자성도 희화도 없이, 마지막 한판 감동으로 치닫는 극적인 내러티브에 철저히 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목과 딴판인 내용 … 미녀는 안 괴로워!

결국 ‘미스터 로빈 꼬시기’나 ‘미녀는 괴로워’는 잘빠진 기획영화로, 이 땅의 여성들이 바라는 판타지와 생래적 결핍감이 어디서 도래하는지 정확히 짚는다. 그러나 대니얼 헤니나 김아중의 얼굴 스펙터클 같은 상업적 폭발력에도 이 로맨틱 코미디들이 여성 관객들을 더 지독한 공허의 늪으로 이끌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들은 거울 속에 비친 나를, 5개 국어 구사에 하버드 MBA 졸업장을 딴 외국인 애인도 없고, 기천만원 들여 성형수술 할 돈도 의지도 없는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백조에서 미운 오리로 만드는 것이다. 기실 섹시하면서 순정까지 갖춘 그녀들은 맥 라이언보다 미워하기 쉽지 않고, 니콜 키드먼보다 한 뼘 더 고상한 인간미까지 갖추었다.

그러므로 ‘미녀는 괴로워’에 미녀라서 괴로운 것은 없는 셈이다. 사탕처럼 달콤한 세상, 언제든 뜯고 째고 삽입 가능한 보철물의 세상. 피와 고름과 상처 없이 깨끗하게 봉합된 쭉쭉빵빵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우리들을 맞이한다. 자, 그러니 세 번 뒤축을 부딪혀보라, 대한민국의 도로시들이여. 노란 벽돌길을 따라 영원히 과거의 자신을 사라지게 하는 피리쟁이의 유혹처럼 ‘미녀는 괴로워’는 우리 귀에 속삭인다. 미인이 되고 싶어. 미인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어. 성형하고 고백하면 더 동정표야. 나는 오늘밤 오즈의 나라로 떠나, 용기 없는 사자에게 심장을 주고 머리 없는 허수아비에게 두뇌를 주는 것보다 더 시급하게 마술사 오즈에게, 도로시에게도 강아지 토토 말고 한미모하는 육체를 꼭 달라고 할 작정이다.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는 외모 지상주의 세상의 첫 단추로 ‘미녀는 괴로워’를 보는 것은 결코 괴롭지 않다.



주간동아 2006.12.26 566호 (p8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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