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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vs 민족주의 미술에서 한판 붙다

두 전시 ‘Somewhere in Time’과 ‘2006 아시아의 지금’ 비슷한 코드, 다른 결말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세계화 vs 민족주의 미술에서 한판 붙다

세계화 vs 민족주의 미술에서 한판 붙다

1.주재환의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의 화해 ‘몬드리안 호텔’.
2. 선진국 ‘힘의 음료’ 우유를 소재로 한 베트남 작가 후이 누엔 후, ‘스테이트먼트’.
3. 리시이, ‘타투 퍼포먼스’.
4. 요나스 달버그, 텅 빈 도시를 돌아다니는 비디오 작업. 그러나 도시는 존재하지 않는 모형이다.

세계화 vs 민족주의 미술에서 한판 붙다

설총식, ‘자리만들기’. 복지부동형 샐러리맨을 풍자했다.

“에이 나쁜 놈들 진보라는 미명하에 / 먹고 살게 만든 이 조국 결국은 못살게 만드는 것밖에 더 되는 것 아니냐 / 나눠 먹고 사는 식으로 만들어가지고 말이야 / (중략) / 첫째 국부인 이승만 박사가 나라를 세웠고 / 박정희 대통령의 그 과감하고 용단성 있는 / 국민을 어떻게 해서던 잘살아보겠다는 기치 아래 / 혁명의 기치를 높이 들어가지고 그야말로 참 / 피눈물나는 노력을 다했지….” (임민욱, ‘잘못된 질문-어느 택시 운전기사의 나라 걱정’ 중 일부, 비디오설치)

택시기사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으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 광부를 만나 눈물을 터뜨린 이야기 등을 9분 38초에 걸쳐 이야기한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Somewhere in Time’ (2007년 4월1일까지)의 전시작 중 하나인 ‘잘못된 질문’이다.

또 다른 전시 ‘2006 아시아의 지금’(12월17일까지, 대안공간 루프, 쌈지스페이스, 갤러리 숲)에서는 신주쿠 노숙자 프로젝트 그룹이라는 작가들이 실제 일본 노숙자들이 종이박스로 만드는 집의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세계화 시대에 아시아의 진실된 모습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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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박찬경이 ‘세계 미술의 공평무사한 집대성일 뿐인 한국적 세계화’로 비판한 광주비엔날레(위).
월드컵의 붉은 응원 물결은 ‘시각문화에서의 내셔널리즘을 넘어서’ 심포지엄 기획의 한 계기가 됐다.

세계화는 엄청난 힘으로 지구의 모든 영역을 바꿔놓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그늘 속에 있고, 경제대국이라는 일본의 공원에서는 노숙자들이 기이한 집들을 ‘건설’ 중이다.



따라서 두 전시의 질문은 동일하다. 세계화 시대에 아시아-서구가 뭉뚱그려 만든 허구의 개념-의 ‘진실된’ 모습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진실 앞에서 미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두 전시의 기획자는 똑같이 한국인은 너무 많은 것을 망각했다고 말한다.

두 전시는 모두 세계화와 민족주의, 또는 세계화와 지역성이라는‘담론’을 위해 기획됐다. ‘Somewhere in Time’은 국제학술심포지엄 ‘시각문화에서의 내셔널리즘을 넘어서’를 위한 전시이며, ‘2006 아시아의 지금’전에서는 ‘세계화와 지역성’이라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와 별도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12월8일 ‘세계화 시대의 미술가’라는 포럼을 열었다. 3개의 패널 토론자들은 현재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인 평자들이다. 이것만 봐도 세계화 혹은 내셔널리즘이 올해와 내년 한국 문화계의 화두로 떠올랐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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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욱, ‘잘못된 질문’. 이승만과 박정희를 찬양하는 실제 택시 운전기사를 한 달 전 촬영한 비디오 작품.

이는 문학에서 먼저 시작된 세계화와 내셔널리즘의 논쟁이 미술로 옮겨온 것이며, 한·중·일 등 과거사로 얽힌 3국에서 불고 있는 민족주의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세계화와 이에 대항하는 전략으로서의 지역주의가 동시에 세계 미술의 트렌드가 됐음을 알 수 있다. 광주를 비롯해 상하이, 싱가포르, 타이베이, 이스탄불 등에서 붐을 이루고 있는 비엔날레들이 이를 입증한다. 뉴욕의 뉴뮤지엄과 함께 ‘허브로서의 미술관(museum as hub)’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인사미술공간 큐레이터 백지숙 씨는 “9·11과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내셔널리즘은 세계 미술계의 이슈가 됐다”고 말한다. ‘Somewhere in Time’의 기획자인 김선정 씨는 “월드컵의 ‘붉은 악마’ 열기가 전시를 기획한 동기 중 하나”라고 했다.

전시회와 별도로 포럼 통해서도 활발한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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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지역성 양쪽으로 달리는 리후이, ‘리뉴잉 지프’.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미술 혹은 예술과 사회 문제가 주요 ‘트렌드’가 되고 활발한 담론이 생산되기는 1980~90년대 민중미술이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제도’에 들어간 90년대 중반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같은 질문에서 연유한 만큼 두 개의 전시는 비슷한 코드로 시작한다. 첫째, 한국 민족주의에 대한 집단적 기억으로서 한국 민중미술의 대표 작가들이 양 전시에 참여했다. 모더니즘적인 민중미술 운동가 주재환은 양쪽 모두에 작품을 냈다. 또 세계화를 주도하는 미국에 대한 신랄한 비판들, 능청스레 빈 라덴인 체하는 아이다 마코토의 작업, 제3세계 영토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보여주는 김은우의 ‘구글어스’(이상 ‘Somewhere in Time’전) 등과 미국 소비문화를 기호화한 이부록의 ‘홍익인간’, 사토 토시오의 ‘U.S.A 일본주 통치자 고이즈미 준이치로’(이상 ‘2006 아시아의 지금’전) 등은 세계화에 대한 작가들의 우려를 보여준다. 그것은 세계화와 아시아라는 언명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문화제국주의의 위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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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마오홍, ‘선데이’.

그러나 이 지점에서 두 전시는 서로 다른 결론을 향해 달려간다. ‘Somewhere in Time’은 민족주의가 전체주의나 파시즘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특정 정치적 상황하에서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미술(예를 들면 ‘민족민중미술’)이 개인의 기억과 일상을 억압하는 것을 우려한다. 이 전시의 토론회 ‘내셔널리즘을 넘어서’의 발제자 중 한 사람은 ‘대중독재론’으로 유명한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였다.

이에 비해 ‘2006 아시아의 지금’은 ‘특정한 지역성을 드러내는 예술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전략을 선택함으로써 식민지 경험을 가진 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저항적 민족주의’를 인정한다.

따라서 ‘Somewhere in Time’은 개인이 집단 및 사회와 맞서는 긴장감을 미술적인 언어로 소통하고자 하고, ‘2006 아시아의 지금’은 미술이 세계화의 ‘마켓’에서 상품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항하면서 지역적 교류 등을 통해 미술이 공공영역에서 소통되는 새로운 방식을 찾고자 한다.

세계화 vs 민족주의 미술에서 한판 붙다

1.신주쿠 노숙자 프로젝트 그룹, ‘보드지 하우스 픽처 워크숍’. ‘2006 아시아의 지금’전.
2.이주요, ‘Songs in The Jumping Skirt’. ‘뛰어내리고 싶을 때’ 보호하는 스커트를 만든 이주요는 1980년대 연대했던 ‘오빠들’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는 벽화작업도 했다.
3. 배영환, ‘나의 20년’. 민중성과 언더그라운드 정신, 통속성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다.
4. 남화연, ‘교각침공 I-P-16과 P-17을 위한 디자인’.
2,3,4는 'Somewhere in Time'전

세계화 vs 민족주의 미술에서 한판 붙다

이부록, 'X man…홍익인간' '2006 아시아의 지금 전.

‘Somewhere in Time’이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대형 미술관의 기획이고, ‘2006 아시아의 지금’이 ㈜민족미술인협회와 대안공간들의 전시라는 점에서 이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결론이기는 하다.

실제로 ‘Somewhere in Time’의 ‘내셔널리즘을 넘어서’ 토론회에서 ‘이견’을 발표한 작가이자 기획자인 백기영 씨는 “다양한 지역성을 기반으로 한 미술 프로젝트를 민족주의로 몰아가려는 시니컬한 입장에 반대한다. 하지만 광주 비엔날레가 붙들고 있는 시대착오적 민족중심주의, 고구려 등 과거 역사에 대한 환상을 키우는 우리 사회의 파시즘도 한탄스럽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Somewhere in Time’은 80~90년대를 생략하고 ‘글로벌화’에 도달한 듯 보이고, ‘2006 아시아의 지금’은 80년대에서 그 무거운 발걸음을 멈춘 듯한 아쉬움이 있다.

이는 ‘한국이 외부세계로부터 받았던 제국주의적 힘을 행사’(박찬경·비평가)하고 있는 현실, ‘세계화 시대의 미술가’ 포럼에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발제를 포함시키는 한국 미술계의 혼란과도 관련이 있다. 박찬경 씨는 “세계화는 부정하지 못할 흐름”이라면서도 “제3세계 작가들의 전략, 목표, 방식에서 분명히 끌어낼 것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여전히 미국, 유럽은 이런데 우리는 왜 이러냐는 자학성 질문에 익숙하다. 그러나 ‘미술계’ 자체가 고도로 발달한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대도시에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어려운 상황에 칭얼대지 않고 제3세계 작가들이 보여준 독자적인 미술적·사회적 실천을 공유하는 일은 그들에게나 우리에게나 똑같이 힘이 될 것이다.”



주간동아 2006.12.26 566호 (p58~60)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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