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2

2006.11.28

정치 덫에서 KBS를 풀어주자

  • 이창근 광운대 교수·언론학

    입력2006-11-27 10: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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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덫에서 KBS를 풀어주자
    KBS 사장 선임을 둘러싼 논란이 2막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주 KBS 이사회는 일부 이사들의 사퇴와 KBS 노조의 반대에도 대통령에게 전임 사장인 정연주 씨를 사장으로 임명 제청하기로 결정했다. 대통령이 곧 도장을 찍겠지만, 논란이 금세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다. KBS 노조가 임명금지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함에 따라 출근 저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시끄러운 것일까? 그 이유는, 여당 측은 노 대통령의 정치 노선을 지지해온 정씨가 내년 대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으며, 야당 측은 이를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정씨의 사장 재임 문제가 내년 대선과 직결돼 있긴 하지만, 논란의 의미는 그보다 훨씬 더 깊고 넓다. 우리 국민의 정서상 쉽지 않은 일임에도 필자가 특정인의 재임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이유는 이번 사태로 우리나라의 공영방송이 중대한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KBS 같은 공영방송의 제1 덕목은 정치적 독립성이다. 공영방송은 정당의 영향력을 배제한 채 주권자인 국민 복리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20세기 초에 설립된 제도다. 1973년 KBS가 국영방송에서 공영방송으로 전환되긴 했지만, 80년대에 KBS가 이른바 ‘땡전 뉴스’를 내보냄으로써 누구의 이익에 봉사했는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이야기다.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면서 KBS는 정치적 독립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안타깝게도 스스로 놓은 정치 덫에 걸려들고 말았다. 정치적 독립성을 지켜야 할 사장과 그에 의기투합한 일부 기자, PD들은 개혁 전도사 역할을 자처했다. 물론 이들의 행동이 자발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은 과거와 다르다. 하지만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집권세력에 협조하고, 또 이들을 위해 선전자 구실을 했다는 점에서는 권위주의 시대의 KBS와 차이가 없다.



    KBS를 정치화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가 사회정의를 위한 것이라며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은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데서 나온 소치다. 방송이 사회정의 실현에 기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공영방송의 철학은 이러한 공헌도 공영방송답게 할 것을 요구한다. 즉, 공영방송은 사회주의나 후진국에서처럼 정부 노선 또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선전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다양한 의견이 공론의 장에서 활발히 개진되도록 하고 여론을 수렴해 국회나 정부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주요 임무인 것이다. 특히 대통령 탄핵이나 선거 같은 중대 사안의 경우 공영방송은 공정하게 여론을 수렴하고,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

    국민 복리 증진 ‘공론의 장’이 공영방송 책무

    정치에 오염된 공영방송은 정치인들에게도 불리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맛에 맞는 인물을 사장에 앉히다 보면 결국 손해보는 쪽은 정치인들 자신이다. 어느 정당도 영구 집권은 할 수 없으며, 여당이든 야당이든 자신들의 주장이 KBS에 의해 왜곡되지 않고 국민에게 제대로 공정하게 전달되어야만 모두에게 득이 되기 때문이다.

    영국 정치인들은 공영방송 BBC를 ‘장악’하기보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도록 내버려둔다. 그들은 오늘의 집권당이 내일 야당이 된다고 해도 편파방송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바로 이 점이 기를 쓰고 KBS를 장악하려고 애쓰는 한국의 후진적 정치와 다른 점이다.

    정씨의 연임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정략적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만 보거나 이를 둘러싼 논란을 ‘소모적 논쟁’으로 치부하는 일은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소치다. 그 자체가 정치적 의도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이제 지식인과 시민사회는 진보 대 보수로 나뉘어 대립하기보다는, 정치에 오염된 KBS를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하기 위해 국민과 함께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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