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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뜨거운 오후’

인질과 인질범 ‘알 수 없는 연대감’

  • 이명재 자유기고가

인질과 인질범 ‘알 수 없는 연대감’

인질과 인질범 ‘알 수 없는 연대감’

‘뜨거운 오후’

동원호 선원들이 소말리아 군벌에 납치됐다 풀려나면서 주목받은 용어가 있다. 인질과 인질범 간에 생겨나는 유대감을 일컫는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말이다(실제 동원호 선원들이 이런 현상을 보인 것은 아니다). 동원호 사태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강적’이라는 영화도 덩달아 이 신드롬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인질로 붙잡힌 강력계 형사와 그를 붙잡은 탈옥범 간의 연대감이 이 신드롬으로 설명됐다.

스톡홀름 신드롬은 1973년 스톡홀름에서 일어난 은행강도 사건에서 비롯된 말이다. 당시 6일 동안 인질로 잡혔던 이들이 풀려날 때 인질범들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면서 하나의 현상으로 분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뒤, 스톡홀름 신드롬은 센세이셔널한 ‘임상 물증’ 하나를 얻으면서 용어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미국의 언론 재벌 허스트 가문의 상속녀 패티 허스트가 급진좌파 도시 게릴라에 납치됐다가 납치범에게 감화돼 납치범들의 은행 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건이 벌어졌던 것.

스톡홀름 신드롬은 인질범들이 놓여 있는 극한의 공포 상황을 생각하면 약자가 강자에게 보이는 복종 심리 비슷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인질극이 인질범들에게도 쉽지 않다. 그래서 스톡홀름 신드롬과 반대의, 인질범이 인질들에게 동화된다는 ‘리마 신드롬’이라는 것도 있다.

그러나 스톡홀름 신드롬이든 리마 신드롬이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나 결과 위주로 관찰한, 일반화하기 힘든 현상일 수 있다. 실제 모든 인질들이 인질범에게 동정을 보이지 않는다. 미국 FBI의 분석에 따르면 90% 이상은 이 증후군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인질과 인질범 간의 동화 현상은 인질 상황 자체가 아니라 서로 간에 자신들의 처지나 상황에 대한 공감대가 있느냐 여부가 중요한 듯하다. 지강헌 탈옥사건을 다룬 영화 ‘홀리데이’에서 인질들의 우호적인 태도는 지강헌의 주장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지강헌의 절규는 인질로 잡힌 많은 서민들의 생각을 대변한 것이었기에 인질들은 그를 응원하고 지지했다.

사회파 감독 시드니 루멧의 ‘뜨거운 오후’도 ‘홀리데이’처럼 실제 사건을 영화로 옮긴 작품인데, 영화에서 인질과 인질범들은 하나의 작은 공동체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가난한 노동계급 출신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으나 마땅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주인공. 총을 들긴 했지만 사회적 소수자에 불과한 그에게 여성 금전출납원들과 당뇨·협심증이 있는 노년의 지점장, 흑인 경비원인 인질들은 적대감보다는 동료의식을 느낀다.

애초에 인질들에게 겨눈 총이 사실은 사회를 향한 것임을 발견할 때, 인질과 인질범들은 한편이 된다. 그걸 스톡홀름 신드롬이라 부르든, 다른 뭐라 이름 붙이든 간에.



주간동아 2006.08.29 550호 (p75~75)

이명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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