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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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사마’ 인기 태풍, 야구 한류 열풍

한일 통산 400홈런 등 연일 영양만점 대포쇼…日 진출 3년 만에 전국구 스타로 ‘우뚝’

  • 도쿄=이헌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uni@donga.com

    입력2006-08-09 17: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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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엽(30·요미우리)이 지바 롯데에 입단해 처음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것이 2004년의 일이다. 시즌 중반쯤에 이르렀을 때, 일본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가수 보아가 한 음악 토크쇼에 출연했다. 보아 역시 한국인이기 때문에 대화 도중 자연스럽게 이승엽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때 사회자는 보아 앞에서 이승엽을 흉내냈다. 씩씩하게 타석에 들어섰지만 방망이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하고 삼진을 당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거참, 이상하네’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을 흉내내자 방청석에 있던 일본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보아 역시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해 이승엽은 고전 끝에 14홈런, 타율 0.240으로 시즌을 마쳤다.

    실력과 겸손함으로 팬 사랑 한 몸에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일본에서 야구를 잘하는 선수와 못하는 선수의 대접은 천지 차이다. 1998년부터 3년 6개월간 일본의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뛰며 영광과 굴욕을 모두 맛본 이종범(현 KIA 타이거즈 소속)은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서 야구를 잘하면 가미사마(신·神樣)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야구를 못하는 순간 발가락의 때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

    입단 당시 ‘56발남(한 시즌 아시아 홈런 신기록인 56홈런을 기록했다는 의미)’으로 불렸던 이승엽이지만 일본 언론의 반응은 냉담했다. 팬들의 뇌리에서도 이승엽은 잊혀져가는 존재였다.

    이듬해의 이승엽은 첫해에 비해선 한결 나아졌다. 이승엽은 김성근 전 LG 감독(현 일본 지바롯데 코치)의 지도 아래 ‘지옥훈련’을 했고, 시즌이 진행될수록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손바닥이 벗겨지고 그 위에 굳은살이 잡히기를 여러 차례.



    보비 밸런타인 감독의 플래툰시스템 때문에 왼손 투수가 나올 때면 종종 라인업에서 제외되는 악조건 속에서도 이승엽은 30개의 홈런을 치며 재기에 성공했다. 당시 팀 내 최다 홈런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이승엽은 ‘롯데의 이승엽’일 뿐이었다.

    지바 롯데에서의 두 시즌이 끝나고 이승엽은 돌연 요미우리 자이언츠행을 선언했다. 롯데에서 받던 연봉(2억 엔)보다 적은 1억6000만 엔을 받고 요미우리로 옮기겠다고 한 것이다.

    찬성보다는 반대가 훨씬 많았다. “요미우리가 속해 있는 센트럴리그 투수들이 훨씬 뛰어난 데다 일본 최고 명문을 자부하는 요미우리에는 외국인 선수에 대한 보이지 않는 텃세가 심하다”는 게 이유였다. 김성근 코치마저 요미우리행을 반대했을 정도다.

    그러나 2006시즌의 반을 넘긴 현재 이승엽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일본 국민의 반은 요미우리 팬’이라고 할 정도로 요미우리의 인기는 대단하다. 그 가운데서도 ‘4번 타자’는 더욱 특별하다. 요미우리 측은 한 번이라도 4번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일일이 체크한다. 이승엽은 ‘교진군(巨人軍·요미우리의 애칭)’의 70번째 4번 타자다.

    외국인 선수, 그것도 한국인 선수가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요미우리에서 4번 타자를 맡았다는 것이 일본 야구 팬들의 입장에서는 썩 내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승엽은 실력으로, 그리고 한결같이 겸손한 태도로 모든 편견과 선입견을 걷어냈다.

    3월31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개막전 홈런을 시작으로 펑펑 홈런포를 쏘아올리자 요미우리 팬들은 진심으로 이승엽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6월 이후 팀이 하위권으로 추락하는 와중에도 이승엽만이 고군분투하자, 이승엽은 없어서는 안 될 ‘영웅’이 됐다.

    요미우리 팬들은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서면 나팔 반주에 맞춰 ‘이승엽 응원가’를 부른다. 응원가의 마지막 후렴구에서 팬들은 똑부러지는 한국어 발음으로 “이승엽, 이겨라”를 연호한다. 또 이승엽의 등번호 33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하는 팬들도 있다.

    홈런 1위를 질주하면서 이승엽이 요미우리를 넘어 ‘일본 야구의 스타’로 떠올랐다. 7월21일 올스타 1차전이 열린 진구 구장. 센트럴리그의 올스타로 출전한 이승엽이 등장하자 여지없이 한국어 응원이 펼쳐졌다. 유독 열심히 이승엽을 응원하는 팬들이 있기에 무심코 요미우리 팬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니 요미우리의 최대 라이벌인 한신 유니폼을 입은 한신 팬들이었다. 요미우리가 아닌 다른 팀의 팬들조차 “이승엽, 이겨라”를 입을 모아 외쳤다.

    이승엽은 “롯데에 있을 때는 택시를 타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요미우리는 역시 다르다. 어디를 가도 팬들이 먼저 알아보고 아는 척을 한다. 더욱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8월1일. 이승엽이 한신 타이거즈의 에이스 투수 이가와 게이를 상대로 한일 통산 400호 홈런과 9회말 끝내기가 된 401호 홈런을 터뜨리자 일본은 아예 이승엽의 독무대가 돼버렸다.

    ‘니칸스포츠’ ‘스포츠호치’ ‘산케이 스포츠’ 등 일본의 모든 스포츠 전문지들이 이승엽을 1면 톱기사로 내세웠다. 일본 방송들은 이승엽의 홈런을 분석하느라 바빴고, 이승엽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이승엽이 삼성 라이온즈에 몸담고 있던 2003년, 일본의 오사다하루 감독(소프트뱅크)이 보유하고 있던 한 시즌 아시아 홈런 기록(55개)을 경신할 때만 해도 일본 측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수준 낮은 리그에서 세운 기록이 뭐 그리 대단하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승엽이 세계에서 30세 이전에 400홈런을 기록한 세 번째 선수가 되자 일본 내의 분위기도 완전히 바뀌었다. 이승엽 이전에는 오사다하루 감독과 메이저리그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만이 30세 이전에 400홈런 고지에 올랐다.

    요즘 일본 팬들은 이승엽을 통해 한국 야구를 새롭게 바라보고 있다. 한때 애칭 ‘승짱’으로 불렸던 이승엽은 요즘 극존칭인 ‘사마(樣)’가 붙어 ‘승사마’로 불린다. 한 언론은 사마를 한 번 더 사용해 ‘승사마사마’라고까지 했다. 겨울연가의 ‘욘사마’ 배용준이 드라마를 통해 일본에 한류를 불러일으켰듯이 요미우리의 ‘승사마’ 이승엽은 홈런으로 ‘야구 한류’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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