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8

2006.08.15

열악한 환경이 범죄 부른다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6-08-09 1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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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악한 환경이 범죄 부른다

    어두운 주택가 골목길은 범죄에 취약할 수 있다.

    서울의 한 대학가와 이웃한 N동에서 옷수선집을 하는 현미자(48) 씨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가게 벽에 인근 지구대의 전화번호를 크게 써두었다. “무서워서 그래요. 누가 갑자기 들이닥칠까봐 늘 걱정되거든요. 돈만 내놓으라고 하면 다행이게요? 사람까지 다치면 큰일이잖아요.”

    N동은 다세대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서민동네로,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특히 현 씨가 살고 있는 쭛쭛번지 일대는 가파른 언덕길에 위치하고 있어서 불미스러운 일들이 더욱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비좁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집들이 늘어서 있어 순찰차를 타고 다니는 경찰이 자주 들여다볼 수 없는 데다 마을 앞뒤로 큰 도로가 나 있어 범죄자가 도망가기 쉽기 때문이다.

    어둡고 어수선하고, 드나들기 쉬운 곳 ‘범죄 표적’

    N동에서 10년을 살았다는 김모 씨는 “소매치기가 아줌마들의 지갑을 낚아챈 뒤 큰 도로 쪽으로 냅다 내달리면 도저히 쫓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늦은 밤에는 술 취한 사람들끼리의 폭행 시비도 잦다고 한다. “도둑도 많아요. 얼마 전에는 혼자 사는 남학생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훔쳐갈 게 없으니까 속옷을 가위로 잘게 잘라놓고 갔다더라고요.” 현 씨의 귀띔이다. 그리고 “도둑 들었다고 신고해봐야 귀찮아지기만 해서 다들 그냥 넘어간다”라고 덧붙였다. 현 씨는 비교적 이른 시간인 저녁 8시에 가게 문을 닫는다. 한 푼 더 버는 것보다 가족의 안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시 다세대주택이 밀집해 있는 J동 쭛쭛번지의 주민들도 “우리 동네는 범죄에 취약하다”고 말한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골목길이 비좁은 데다가 보안등도 충분히 설치돼 있지 않아 밤에는 골목길이 매우 어둑하기 때문이다. 3년 전 이 마을로 이사 왔다는 주부 김모(53) 씨는 “새벽 1~2시에 ‘도둑이야!’라고 외치는 소리가 가끔씩 들려와 잠을 설치곤 한다”면서 “밤에 골목길을 걷다 보면 서너 걸음 떨어진 사람 얼굴도 잘 안 보일 정도다. 혹시나 나쁜 사람이 아닐까 싶어 무섭다”라고 말했다.



    이 동네 인근의 도로변 인도에서는 술 취한 사람들이 길가에 주차된 차량을 파손시키거나 서로 멱살잡이를 하는 등 불미스런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 가로등이 별로 없는 데다 가로수가 우거져 있어 어둑하기 때문이다. 이 마을을 관할하는 지구대 경찰은 “최근 새로 가로등을 설치하고 자주 순찰을 도는 등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소득수준이 낮은 지역에서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법이지만, 비슷한 소득수준이더라도 환경이 좀더 열악한 지역에서 범죄가 더 많이 발생하는 편이다. 박현호 교수(경찰대)는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장소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했다. 즉 상대적으로 범죄가 드문 지역보다 드나들기 쉽고, 어두컴컴하며, 어수선하고, 잘 관리되거나 통제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며, 정리정돈이 안 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열악한 환경이 범죄 부른다

    범죄 피해를 우려해 지구대 전화번호를 크게 적어놓은 주민(위)<br>좁고 가파른 서울의 한 대학가 인근 동네(아래)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단지보다 주택단지에서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실제로 아파트단지와 주택단지의 범죄율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수원 남부경찰서 생활안전과장으로 재직했던 권기섭 경정(경기지방경찰청)이 영통지구의 아파트단지와 주택단지의 범죄율을 비교·분석한 결과는 그 차이를 실감하게 한다.

    영통지구에 위치한 한 다세대주택 밀집지역과 두 곳의 아파트단지에 사는 주민들은 연령대와 소득수준이 비슷하다. 주택단지 3500여 가구의 평균연령은 38세이고 아파트단지 4600여 가구의 평균연령은 39세, 임차가구의 비율은 각각 79%와 49%다.

    그러나 이 두 지역의 범죄율은 큰 차이가 난다. 2004년 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강도 사건은 주택단지가 12건이었지만 아파트단지는 0건이었다. 절도 사건도 87건 대 17건으로 크게 차이가 났다. 차량절도는 21건 대 0건, 성범죄 또한 6건 대 2건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아파트단지라도 정비 덜된 곳은 상대적으로 범죄 많아

    권 경정은 “이는 사회적 환경의 차이보다는 물리적 환경의 차이로 인한 결과”라고 말했다. 아파트단지는 외곽에 울타리가 있어 외부인에게 ‘구별되어 있는 공간’이라는 영역감을 주지만, 주택단지는 전혀 그렇지 않다. 또 아파트단지는 출입구가 4개밖에 되지 않지만 주택단지는 골목길 어느 곳으로든 진입이 가능했다. 권 경정은 “게다가 주택단지는 사통팔달로 도로가 연결되어 범죄자들이 도주로를 쉽게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로등도 거의 없다시피 해 밤에는 무척 어두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아파트단지라고 해서 모두 안전한 것은 아니다. 권 경정은 “정비가 덜된 아파트에서 상대적으로 범죄가 많이 일어난다”고 충고했다.

    한 전자업체 공장단지와 인접한 A단지는 인근 아파트단지들보다 범죄율이 높다. 공장단지를 드나드는 유동인구가 많을 뿐더러 아파트 뒤쪽으로 야산이 있어 도주로를 쉽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단지 자체에도 환경적으로 취약한 요인이 숨어 있었다. 담장 바로 옆에 나무가 울창하게 심어져 있어서 남의 눈에 띄지 않은 채 숨을 수 있었다. 또 아파트 동 앞마당에 키 큰 나무가 심어져 있어 나무를 타고 1층 베란다를 통해 진입하기 쉬웠다. 이 아파트단지를 관할하는 한 경찰은 “울창한 나무 사이에 숨어 있다가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가 1층 베란다를 통해 침입하는 것이 이 지역 절도범들의 주요 수법”이라고 전했다. 차량 차단기가 설치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차단기가 있으면 드나드는 차량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어 차량을 이용한 절도범들의 접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상업지구와 바로 붙어 있어 외부인에게 쉽게 노출되거나 지하주차장이 너무 어두운 아파트단지 등도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 경찰은 공원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화장실이나 공연시설물 등 폐쇄적인 공간이 있는 경우 범죄가 쉽게 발생한다고 본다. 건축자재가 장기간 방치된 곳, 불법주차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곳, 공용주차장이지만 이용 주민이 적은 곳 등도 ‘범죄발생 요주의 지역’으로 꼽힌다.

    집이 털리는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강도와 마주칠까봐 집에 들어가기가 무섭다”고 호소한다. 권 경정은 “인구 100만 명이 사는 수원의 강·절도 범죄 피해자는 연간 6000명에 이른다. 이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라며 “정부는 공공장소를 정비해야 하며, 주민 스스로도 주거지역을 가꾸는 일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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