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2

2006.04.25

교보생명 ‘양보다 질’로 신바람

조직 줄이고 효율적 경영 전력투구 … 2540억원 적자에서 3000억대 흑자로 ‘2위 탈환 눈앞’

  • 이임광 자유기고가 LLKHKB@yahoo.co.kr

    입력2006-04-19 1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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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보생명 ‘양보다 질’로 신바람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왼쪽)은 질경영으로 도약의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교보생명이 업계 2위 탈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생명보험협회 2006년 1월 실적 집계에 따르면, 교보생명이 12월에 1조3998억원, 1월에 8776억원의 수입보험료를 거둬들여 두 달 연속 2위에 올라섰다. 1월 현재까지 누계 수입보험료도 교보생명은 8조1426억원으로 전년 대비 10.6%의 고성장을 기록한 반면, 대한생명은 8조2884억원으로 3.6% 소폭 상승에 그쳤다. 양사의 수입보험료 차이는 지난해 6000억원대에서 현재 1450억원 수준으로 급격히 좁혀졌다. 이런 교보생명의 급성장은 2000년부터 추진한 질(質·Quality)경영이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당시 교보생명은 ‘얼마나 많이 파는냐’만을 중시하던 영업문화를 ‘얼마나 제대로 파느냐’로 바꾸는 데 주력하겠다며 과감한 혁신안을 내놓았다. 업계의 오랜 관행이던 매출 위주의 볼륨(Volume) 경쟁에서 벗어나 고객만족·이익·효율 중심의 밸류(Value) 경쟁으로 전환한 것이다.

    실제로 5년 사이 얼마나 효율이 높아졌는지 보자. 교보생명은 재무설계사(FP) 수를 2000년 말 5만8000여 명에서 현재 2만명 남짓으로 반 이상 줄였다. 점포 수도 1455개에서 690개로 축소했다. 그런데도 재무설계사 1명이 체결하는 보험계약의 월납 초회보험료(1인당 생산성)는 2000년 38만원에서 현재 60만원 이상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고객 만족도를 가늠하는 지표인 ‘13회차(2년차) 유지율’에서도 교보생명은 적잖은 성과를 냈다. 2000년 60% 수준이던 것이 현재 83%를 넘어섰다. 올해 13회차 유지율 목표를 업계 최고 수준인 85% 이상까지 잡고 25회차(3년차) 유지율까지 높일 참이다.

    고객 1년 이상 유지율 60%서 83%로 훌쩍



    당연히 실적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2000년 2540억원 적자에서 현재 3000억원대의 순익을 내고 있다.

    보험사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지급여력비율도 지난해 말 현재 170%대다. 이 비율이 100%를 넘으면 재무건전성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동시에 안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한국기업평가㈜로부터 보험금지급능력평가에서 2003, 2004년 2년 연속 AA+(안정적) 신용등급을 받았다.

    지난해 4월, 모나코에서 열린 ‘세계보험경영인회의’에서 신창재(53) 교보생명 회장은 아시아 보험사 CEO로서는 유일하게 강단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이 자리에서 신 회장은 약 1시간 동안 영어로 교보생명의 변화혁신과 비전경영의 사례를 설명해,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금융·보험사 CEO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신 회장이 교보생명 회장으로 취임한 2000년 당시에는 IMF 구제금융 여파로 기업도산에 따른 부실채권과 주식시장 붕괴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보험·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이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신 회장은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가장 먼저 경영 전반에 걸쳐 변화와 혁신을 선포하고 나섰다. 퀄리티(質)와 혁신을 통한 고객중심, 이익 중심 경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업계 관행이었던 매출 중심의 덩치 키우기 경쟁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장기 목표인 비전을 세워 고객 중심으로 모든 시스템을 재정립했다.

    교보생명 ‘양보다 질’로 신바람

    교보생명의 `교보다솜이 간병봉사단 발대식.

    재무설계사 수를 절반 이상 줄이고, 점포도 통폐합하는 것을 비롯해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계약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단기 저축성보험 판매에서 생명보험 고유의 특성을 살린 중·장기 보장성보험 위주로 판매전략을 180도 전환했다.

    무수익 자산도 훌훌 털어냈다. ‘떡은 떡집에 맡겨야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다’는 소신에 따라 유가증권 자산운용을 외부 전문투자회사에 통째로 맡겼다. 이는 자산운용 이익률을 업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교보생명은 2002년 이후 6~7%대의 높은 자산운용 이익률을 실현하고 있다. 경쟁사보다 0.5~1%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이익이 나지 않는 기업대출도 대폭 축소했다. 그러자 교보생명의 강점이었던 기업 대상 보험료 수입이 절반 가까이 뚝 떨어졌다. 2000년 3월 당시 4조6000억원에서 2년 뒤에 2조7200억원으로 감소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보생명은 외형(볼륨)에서 업계 3위로 내려앉았고,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 회장은 변화혁신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다. 보험계약 유지율, 생산성 등 각종 효율이 눈에 띄게 좋아지더니 이제는 외형으로도 업계 2위 자리를 되찾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런 경험을 축적한 신 회장은 이제 변화혁신에 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전문가로 통한다. 정부기관을 비롯해 병원, 학교, 협회, 일반 기업 등에서 신 회장의 비전경영과 변화혁신에 대한 강의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성과주의를 도입한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친인척은 회사 경영에 일절 발도 못 들여놓는다.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인사 원칙이다. 임·사원 인사에도 동일하게 적용한다. 능력에 따라 배치하고 성과에 따라 보상한다는 교보생명 인사원칙 속에 신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그대로 녹아 있다.

    신 회장은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보이는 솔선수범형 경영자로 회사 안팎에 정평이 나 있다. 한 번 말한 것은 반드시 실천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는 최고경영자로서 조직이 나아갈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함께 뛴다.

    변화혁신의 첫 단추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 신 회장의 지론이다. 수백 번 회의를 하고 전국 지점을 수십 번씩 방문한 것은 변화혁신을 조직문화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다.

    신 회장이 지난 5년간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면서 입에 달고 다닌 말이 있다. “변화와 혁신은 나부터, 쉬운 것부터, 윗사람부터”.

    신 회장은 2010년까지 교보생명을 ‘동북아시아에서 고객이 가장 선호하는 회사’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세워놓았다. 그는 “교보생명의 비전은 회장보다 높은 왕회장(Big Boss)”이라고 말한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혁신의 성과는 임직원의 변화라고 강조한다. 재무제표가 과거의 성과를 나타낸다면 임직원의 변화는 회사의 미래 성과를 보여준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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