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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초고속 8년 질주, 독단경영 급제동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 품질·글로벌화 ‘신화 창조’ … ‘제 맘대로 인사’ 결국 부메랑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초고속 8년 질주, 독단경영 급제동

초고속 8년 질주, 독단경영 급제동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 미국으로 출국한 지 엿새 만인 4월8일 오전 5시경 임직원의 호위를 받으며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1998년 3월 현대자동차 대표이사로 취임한 정몽구 회장은 임원들로부터 담당 업무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 이때 한 임원은 보고 태도가 불경스럽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짐을 싸야 했다. 그러나 이 임원은 한 달여 후 다시 출근했다. 해당 분야에서 그만한 인재가 없다는 사실이 정 회장에게 보고돼 가까스로 구제될 수 있었던 것. ‘정몽구 식 제 맘대로 인사’를 일컫는 ‘깜짝 인사’, ‘럭비공 인사’의 서막이었던 셈이다.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하고 정 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99년 7월 이후 기아차 내부에서는 정 회장에게 올라가는 모든 보고서에 영어를 되도록 쓰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가령 EURO3(유럽의 자동차 환경규제 수준) 같은 경우도 한글 발음 그대로 ‘유로 쓰리’로 적은 다음 괄호 안에 EURO3를 집어넣어야 했다.

지난해 355만 대 생산 ‘세계 7위’

당시만 해도 정 회장이 자동차 회사 경영을 맡아 잘할 수 있을까 우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 2000년 현대그룹 경영권을 놓고 형제간에 다툼을 벌인 ‘왕자의 난’ 당시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의장 쪽에서는 “정몽구 회장이 영어도 한 마디 못하는데, 현대자동차와 같은 글로벌 기업을 경영할 수 있겠느냐”며 공개적으로 정 회장을 깎아내렸다.

그러나 그동안 정 회장은 현대·기아차를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시켰다. 경영 실적, 품질혁신, 해외시장 진출 확대 등 경영 전반에서 정 회장은 놀라운 성과를 이룩했다. 해외 유력 언론도 정 회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정몽구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실적’으로만 보면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355만 대를 생산, 339만 대의 PSA(푸조시트로앵)를 제치고 세계 7위의 메이커로 올라섰다. 이런 추세라면 2010년 세계 5대 자동차 메이커로 자리매김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여세를 몰아 현대차는 내년 10월 무렵 도요타의 렉서스와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를 출시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현대차는 80년대의 ‘싸구려 차’ 이미지를 벗고 ‘고급차 브랜드’로 업그레이드된다.

그러나 신화의 이면엔 치부가 많다는 사실이 검찰의 현대차 비자금 수사에서 드러났다. 총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루아침에 회사 임원을 몰아내는 ‘럭비공 인사’, 총수 중심의 독단 경영과 편법적인 문어발식 기업 확장, 유망한 사업 기회를 빼앗아 사주 일가의 주머니를 불리는 전근대적인 기업 사유화 의식, 비자금 조성 등이 그것이다.

현대차 안팎에선 이번 검찰 수사에 대해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더욱이 “현대차 관계자의 내부 제보에 따라 이번 수사가 시작됐다”고 검찰이 인정함에 따라 정 회장의 ‘럭비공 인사’가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임원들이 정 회장 외아들 정의선 사장에 대한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 작업을 어떻게 생각했겠느냐”고 반문했다.

현대차 내부에선 이번 기회에 정 사장 주변의 ‘홍위병’에 대한 문책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말 글로비스 상장을 앞두고 회사 고위 관계자 사이에 ‘상장 연기론’이 대두됐으나 이를 무시하고 밀어붙이도록 충동질한 것이 ‘홍위병’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이들은 “속전속결로 처리해야 경영권 승계를 위한 정 사장의 기아차 주식 매집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를 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이번 검찰 수사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수사가 조기에 마무리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수사 결과 드러난 불법행위는 철저히 시정하고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더욱 투명하고 공정한 회사 운영 △사내 하도급 및 비정규직 근로자 처우 단계적 개선 △부품 협력업체와 상생협력 프로그램 지속 실천 △사회 공헌 사업 확대 등도 약속하고 있다.

‘10년 보증수리’로 미국시장서 신뢰 쌓아

초고속 8년 질주, 독단경영 급제동
현대차그룹이 이를 제대로 실천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투명·윤리경영을 강조했다. 심지어 어떠한 형태의 금품이나 향응 수수 행위를 배척한다는 내용의 현대·기아차 윤리경영 선언문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그것이 화려한 말잔치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이번 검찰 수사 결과 밝혀졌다.

정 회장이 오늘의 현대차그룹을 만든 데는 ‘운’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기아차는 인수 첫해인 99년 1357억원의 흑자를 냈다. 당시 기아차가 자체적으로 개발해놓은 카니발, 카렌스 등 레저용 차량(RV)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면서 흑자 전환에 기여했던 것. RV는 외환위기 이후 유지·관리비가 적게 들고 세금이 낮아 인기를 모았다. 정 회장이 반대를 무릅쓰고 기아차 인수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 주효했던 셈이다.

그러나 ‘운’만으로는 오늘의 정 회장을 설명할 수 없다. 무엇보다 그의 확고한 ‘품질 경영’ 철학은 ‘정몽구 신화’의 지렛대가 됐다는 평가다. 한 임원의 설명이다.

“정몽구 회장은 아침 6시30분 무렵 출근해 하루 종일 일만 하고, 외부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말도 어눌한 데다 낯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외부인사를 만나면 인사청탁과 납품업체 청탁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납품업체 청탁을 조금이라도 들어주었다간 자동차 부품, 더 나아가 완성차 품질 혁신은 절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친인척은 협력업체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

정 회장은 이런 의지를 바탕으로 현대차의 품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는 여러 평가 지표에서도 객관적으로 증명된다. 가장 객관적인 품질 관련 지표로 정평이 높은 JD 파워사의 초기품질지수(IQS)는 판매된 지 3개월 된 차량을 대상으로 불만족 사항을 조사한다. 현대차그룹은 2004년 미국 시장 진출 후 처음으로 중형차 부문에서 1등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2005년 상반기 종합평가에선 1위인 도요타에 이어 일본 혼다와 공동 2위를 차지했다. 과거 현대차의 순위는 중하위 수준이었다.





주간동아 532호 (p40~43)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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