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2

2006.04.25

“수백t 여객기도 제 말에 꼼짝 못해요”

5년 무사고 인천공항 관제사 24시 … 수많은 인명·재산 책임 “긴장의 연속이지만 보람도 커”

  • 영종도=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6-04-19 14: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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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백t 여객기도 제 말에 꼼짝 못해요”
    KAL032, 바람이 300도 방향에서 15노트로 불고 있다. 최대풍은 20노트다. 활주로 33R로 착륙을 허가한다” “AAR 571, 활주로 33L을 횡단한 뒤 B 유도로 이동하라” “ACA064, 출발관제소 125.15로 교신하라”….

    4월12일 인천국제공항의 심장부인 관제탑을 찾았다. 높이 100.4m의 관제탑 꼭대기 22층에 위치한 56평 규모의 관제소는 옥타곤(octagon) 구조로 8면이 유리로 둘러싸여 있다. 그야말로 ‘창공의 섬’. 8명의 관제사들이 쉴 새 없이 이착륙하는 항공기와 교신하고 있는 데도 분위기는 무척 차분하다. 김종연(40) 관제사는 “서로의 관제 업무에 방해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로 개항 5주년을 맞은 인천공항 관제소의 감회는 남다르다. 그동안 ‘무사고’ 관제의 쾌거를 이뤄낸 까닭이다. 인천공항의 관제는 건설교통부 산하 서울지방항공청 관제통신국이 맡고 있다. 모두 24명의 항공교통관제사들이 8명씩 3조 2교대로 24시간 ‘철통근무’를 한다.

    이곳 관제사들은 관제 업무를 ‘고도의 집중력과 판단력을 요구하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잠깐의 실수가 항공기 사고로 이어져 수백 명의 인명 피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다. 20년 ‘무사고’ 경력의 김종연 관제사조차 “관제 실수로 항공사고가 났다는 외신 뉴스를 접할 때마다 마치 우리 공항에서 일어난 일인 양 등에서 진땀이 흐른다”고 말했다.

    이착륙 몰릴 땐 한 명이 10여 대 동시 관제



    “수백t 여객기도 제 말에 꼼짝 못해요”

    인천국제공항 관제소 내부 모습.

    그러나 수백 명의 안전이 자신의 말 한마디에 달렸다는 점은 관제사라는 직업이 갖는 ‘치명적인’ 매력이기도 하다. 윤유현(31) 관제사는 “‘마의 13분’을 책임지고 있다는 점에 자부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낀다”고 말했다. ‘마의 13분’이란 항공기 이착륙이 이뤄지는 13분을 뜻하는데, 통계적으로 이 시간 동안 사고가 날 확률이 가장 높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하성희(31) 관제사는 “몰려드는 비행기를 성공적으로 이착륙시킨 뒤 계류장에 일렬로 나란히 서 있는 비행기들을 볼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며 웃었다.

    인천공항에는 하루 평균 480여 대의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이착륙 비행기가 가장 많이 몰리는 오전 10~12시, 오후 4~6시에는 한 명이 10여 대의 비행기를 동시에 관제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관제사는 안전을 위해 비행기 간격을 최소 옆으로는 4.8km, 위아래로는 300m 이상 떨어진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화장실도 못 가는 초긴장 상태가 한두 시간씩 이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오랫동안 한자리에 앉아서 근무하고 야근도 잦기 때문에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관제사들이 많다고 한다.

    “수백t 여객기도 제 말에 꼼짝 못해요”

    김일삼, 이선민, 하성희, 윤유현 관제사(왼쪽부터).

    “하늘이 넓은 것 같지만, 비행기가 다니는 항로는 매우 제한적입니다. 또 우리나라에는 군 훈련 공역이 다른 나라보다 많아서 전투기와의 안전 분리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야간에는 상대적으로 이착륙하는 비행기 수가 적지만, 대신 활주로 보수작업 등이 많아 여전히 긴장의 연속이지요.”(하성희 관제사)

    악천후와의 싸움은 관제사에게 주어지는 또 하나의 과제. 인천공항은 섬에 위치한 탓에 짙은 해무(海霧)가 골칫거리다. 4월8일 발생한 최악의 황사가 ‘귀여운 훼방꾼’ 정도의 취급을 받는다고. 시정거리가 100m인 상황에서도 착륙이 가능하게 해주는 CAT-IIIb는 인천공항의 결항률을 낮춰주는 효자이지만, 오로지 기계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은 관제사에게 극도의 긴장감을 준다.

    “시정거리가 150m밖에 나오지 않는 날이었습니다. 착륙한 비행기가 ‘앞이 안 보여서 더 이상 못 가겠다’며 갑자기 활주로 중간에 서버렸습니다. 견인차량으로 비행기를 끌어서 활주로를 벗어날 때까지 착륙 준비 중인 비행기들을 선회시켜야 했습니다. 육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어서 한참 동안 진땀을 뺐던 기억이 납니다.”(김일삼·37·관제사)

    지난 5년 동안 인명이나 재산 피해로 이어진 항공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지만, 크고 작은 ‘사건’이 여러 번 일어나 관제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런 사고들은 여객기보다는 화물기에서 많이 발생한다. 비행기가 상대적으로 노후했기 때문이다.

    “방금 이륙한 비행기가 ‘엔진이 고장 났다’고 연락해왔습니다. 하늘을 쳐다보니 그 비행기 엔진에서 불길이 확 치솟는 거예요. 혹시나 대형사고로 이어질까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죠. 공회전하면서 연료를 소진한 다음 다시 착륙하기까지 두어 시간 동안 노심초사했습니다.”(김종연 관제사)

    “외국 화물항공기가 화물을 너무 많이 싣고 이륙하다가 타이어 여러 개가 터지는 바람에 한동안 활주로 1개를 아예 쓰지 못하게 된 적이 있습니다. 타이어 조각을 수거해보니 트럭 2대의 어마어마한 분량이었어요.”(하성희 관제사)

    자격증 취득 후 8급 공무원으로 채용

    관제사라는 직업이 갖는 장점 중 하나는, 관제탑을 떠나는 순간 ‘업무 걱정’을 더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대신 업무 중에 ‘딴생각’은 금물이다. 자칫 항공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3세, 4세의 두 아이를 둔 하성희 관제사는 “근무 중에는 아예 휴대전화를 꺼둔다”고 했다.

    과거 관제사는 ‘금녀구역’이었지만, 90년대 중반부터 여성 관제사들이 하나 둘 늘어 현재는 여성 관제사가 전체의 40% 수준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이선민 관제사는 인천공항에서 근무하다 관제사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된 뒤 도전한 경우. 이 관제사는 “가끔 여성 관제사의 말을 무시하는 기장들이 있어 속상하지만, 적성만 맞다면 여성에게도 적합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부와 고립된 ‘창공의 섬’에서 일하는 까닭에 유난히 사내 커플이 많다. 인천공항에는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까지 합쳐 ‘관제사 부부’가 모두 다섯 쌍이라고 한다. 하 관제사의 남편 박경원 씨 또한 인천 공항 관제사. 관제탑 창밖으로 아름답게 펼쳐지는 석양과 일출, 그리고 첫눈이 내리는 장관을 함께 바라보며 정이 든 남녀 관제사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후문이다.

    현재 인천, 김포, 제주 등 전국적으로 300여 명의 민간관제사가 비행기의 안전한 이착륙을 관할하고 있다. 항공교통관제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관제사 모집공고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지는데, 항공 관련 학과를 졸업하거나 항공기술훈련원에서 실무 훈련을 받아야 자격증을 딸 수 있다. ‘군 출신’도 꽤 되는데, 김일삼 관제사가 그런 경우다. 공군에 입대해 관제 업무를 맡았던 김 관제사는 “‘정지하라’는 내 명령을 따라 엄청 큰 점보 항공기가 하늘에서 멈춰 섰을 때 느꼈던 짜릿함 때문에 관제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관제사들은 8급 공무원으로 채용된다. 미국 등 선진국처럼 고액 연봉자는 아닌 셈. 윤유현 관제사는 “친구들이 관제사는 기장처럼 억대 연봉자가 아니냐면서 술값을 내라고 할 때마다 난감해지지만, 항공산업의 첨단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무사히 이착륙한 기장들이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짤막한 인사를 건넬 때 관제사들은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말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는 외국인 기장은 주로 동남아 분들이었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미국인 기장들도 우리말로 인사를 해옵니다. 그럴 때는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걸 실감해서 기분이 매우 좋아요.”(하성희 관제사)

    “새해 초에는 각 나라 말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을 연습해 외국인 기장들에게 했습니다. 무전기를 통해 작은 친절에도 즐거워하고 있음을 느낄 때 힘이 납니다.”(윤유현 관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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