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2

2006.04.25

“지방선거 후 중도세력 통합 나설 것”

고건 전 총리 “참여정부, 21세기형 리더십 구축 미흡 … 국민과의 의사소통도 부족”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6-04-19 1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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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선거 후 중도세력 통합 나설 것”

    <b>고건 전 총리 약력</b><br>。1938년, 서울 생<br>。경기고ㆍ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br>。전남지사 <br>。12대 국회의원 <br>。교통ㆍ농수산ㆍ내무부 장관 <br>。서울시장(22, 31대) <br>。국무총리(30, 35대) <br>。대통령 권한대행

    지방선거를 둘러싼 여야의 경쟁이 치열하다. 1차 합종연횡을 끝낸 여야는 이제 짝짓기를 위한 마지막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그럼에도 영입 1순위로 꼽히는 고건 전 총리는 한가롭다. 이명박 시장에게 빼앗겼던 지지율 1위 자리를 되찾았음에도 ‘정중동(靜中動)’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정당에 속하지 않은 정치인이 단기필마로 지지율 1위를 기록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더구나 이 정도 대중적 기반을 확보한 정치인이 정치적 빅 이벤트(지방선거)에 손을 놓고 있는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장외 우량주’인 고 전 총리는 이번 선거를 과연 지켜보기만 하는 것일까.

    4월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여전도회관 건물 10층에 있는 고 전 총리 사무실. 5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만난 고 전 총리는 “지방선거 후 있을 정계개편 정국에서 중도개혁세력의 대연합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지방선거에서는 손을 떼겠다는 발언이다.

    또한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 지나치게 부각되는 이미지 정치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했다. “콘텐츠 없는 이미지로는 곤란하다”는 것이 두 차례 시장직을 역임한 그의 진단. 그러나 정치적으로 예민한 화두에 대해 말문을 닫거나 다른 방향으로 화제를 돌리는 노련함은 여전했다.

    -지지율 1위를 탈환했는데….



    “국민들의 지지가 고맙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국민들이 지지와 기대를 보내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이벤트성 인기는 아닌 것 같고…. 일종의 신뢰 표현이 아닐까 추측한다. 사심 없이 국정을 수행했던 자세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국민의 기대감이 고 전 총리에게 몰리고 있음에도 고 전 총리는 지나치게 소극적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실질적 역할에 대한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 요즘도 각 분야의 지인과 만나 나라의 미래와 나의 역할에 대해 의견을 나누곤 한다.”

    -총리직을 그만둔 지 2년이 지났다. 언제쯤이면 구상이 끝나는가.

    “참여정부 초대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서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곧바로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았다. 2년여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해달라. 적당한 시점이 되면 구상을 밝힐 예정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전후해 정치적 활동을 하겠다는 말인가.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역 일꾼을 뽑는 자치 선거로서의 기능이 강조돼야 한다. 중앙정치권이 지방선거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 분위기에 편승해 움직일 생각은 없다.”

    -민주당 등 일부 정치세력들이 고 전 총리의 지원을 거론한다.

    “지방선거 후 중도세력 통합 나설 것”

    4월10일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서 학생들과 호프 미팅을 하고 있는 고건 전 총리.

    “이번 지방선거에는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다만 지방선거를 전후하여 정당과 정파를 초월해 중도실용주의 개혁세력을 연대·통합하는 작업은 강화해나갈 예정이다. 이는 선거 차원의 활동이 아니라 함께 모여 민생경제 등과 관련한 국가 어젠더를 연구하자는 취지로 보면 된다.”

    정치권 진입 및 본격적인 정치활동 시기를 지방선거 이후로 설정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고 전 총리 측은 그동안 정치권 진입 시기를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 한때 열린우리당 입당과 신당 창당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고 전 총리 측은 이 모든 유혹을 뿌리쳤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그를 지방선거의 득표 수단으로만 활용하려 했을 뿐 ‘대선후보 고건’에 대한 예우에는 인색했기 때문이다. 결국 고건 캠프는 “지방선거 후 정계개편이 불가피하고 그때 큰판을 꾸리는 게 명분이나 실리 면에서 낫다”는 판단에 따라 정치적 활동을 6월 이후로 미룬 셈이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정치권은 정계개편 국면으로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중도개혁세력 연대 및 통합 작업도 이 흐름에 편승해 추진할 것인가.

    “가능성이 있다. 연대와 협력이 특정 정당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 지형의 변화 속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본다. 정치 지형이 변화하면 중도개혁세력의 연대 및 통합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계획이다.”

    -서울시장 선거를 둘러싼 여야 후보의 경쟁이 한창이다. 서울시장이 갖춰야 할 자질과 덕목은?

    “수도 서울의 수장으로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라는 것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 서울시장은 1000만 서울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생활행정 서비스를 펼쳐야 한다. 집단 간 갈등을 완화하고 중재하는 일도 수행해야 한다. 10~20년 후를 내다보고 이에 걸맞은 비전을 제시하고 디자인하는 것도 서울시장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이를 수행하려면 어떤 자질과 능력이 필요하겠는가.”

    -서울시장 예비 후보들이 이미지 선거에 집중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대 정치에서 이미지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콘텐츠 없는 이미지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지와 콘텐츠가 부합해야 한다.”

    -집권 4년차로 접어든 참여정부를 평가한다면.

    “참여정부는 지난 3년 동안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지방 분권화를 촉진했다. 이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아쉬운 부분도 있다. 21세기 한국을 끌고 갈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하는 데는 미흡했다. 국가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과 의사소통을 하고 협력을 얻는 노력도 부족했다.”

    -남은 임기 동안 참여정부가 역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한국은 현재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경제적으로는 ‘비용의 중국, 기술의 일본’ 사이에 끼여 협공을 당하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대응 전략이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 내적으로는 서민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지고 청년 실업도 심화되고 있다. 경제 동력이 떨어지는 것도 큰 문제다. 앞으로 10년이 아주 중요한 시기다. 통계를 볼 때 2015년이면 경제활동인구가 비경제활동인구보다 적어진다. 그때까지 선진국에 진입해야 한다. 이를 위한 장기 전략과 비전을 수립해 국민 에너지를 결집해나가야 한다.”

    -각종 난제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정치 리더십 부재에서 오는 현상이라고 본다. 이런 시대적인 과제는 ‘정치’가 해결해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 정치는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한국을 위협하는 대내외 여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면 기존 정치 리더십으로는 안 된다. 경제전략과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 에너지를 결집해나가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현재의 정치 리더십은 이런 역사적 역할을 방기한 지 오래지만 정치 지도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새로운 리더십에 대해 설명해달라.

    “정치 지도자들이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실사구시 관점에서 민생을 돌보고 경제 회생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자면 창조적 실용주의에 입각한 리더십으로 무장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창조적 리더십으로의 전환이 필요한가.

    “…대립과 분열을 넘어 포용·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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