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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보수당 ‘집안 보수’가 필요해

스미스 불신임 총선전 첫 퇴장 충격 … 신임 하워드 당수 분열 수습·정책 개발 ‘발등의 불’

  • 런던=안병억 통신원 anpye@hanmail.net

英 보수당 ‘집안 보수’가 필요해

최근 영국에서는 야당인 보수당의 이언 덩컨 스미스 당수(49)가 불신임되는 보기 드문 일이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보수당 당수가 총선도 치르지 못한 채 당원들에게 불신임당해 물러나는 일은 처음이다. 이어 11월6일 마이클 하워드 의원이 신임 보수당 당수로 취임했다. 의회민주주의의 본고장으로 통하는 영국에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보수당이 이처럼 극도로 분열돼 혼란에 빠져 있다. 왜 이언 덩컨 스미스 전임 당수는 불신임되는 불명예를 떠안았는가? 또 과연 제1야당인 보수당은 이라크 침략전쟁으로 지지도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노동당 토니 블레어 총리를 대적할 만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제1야당 역할 실종 지지도 ‘바닥’

이언 덩컨 스미스 당수는 2001년 9월 보수당 당수로 취임했다. 그해 6월에 열린 총선에서 당시 윌리엄 헤이그 당수가 이끄는 보수당이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에 참패했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의 승리가 예상되는 상황이었지만 1997년 총선과 비교, 보수당은 추가로 의석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따라서 총선에서 패배한 책임을 지고 당수가 물러났다. 당시 덩컨 스미스 의원은 유망한 총재 후보자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92년 의원이 된 3선 의원에 불과했기 때문. 당시 그는 육사를 졸업하고 군장교로 복무하다 예편,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는 것과 90년대 중반 보수당의 존 메이저 총리 시절, 유럽 통합에 반대해 당 규율을 어기고 유럽연합조약에 반대표를 던졌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유망한 후보로 거론된 사람은 존 메이저 총리 시절 재무부 장관을 지낸 케네스 클락 의원이었다. 영국에서는 후보자가 과반수를 얻을 때까지 선거를 계속하기 때문에 당시 보수당 총재 선거는 3개월 동안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놀랍게도 무명의 이언 덩컨 스미스 의원이 당수가 됐다. 쟁쟁한 경력을 갖고 있던 케네스 클락 의원이 유럽 통합에 너무 적극적이었던 반면, 덩컨 스미스 후보는 단일화폐 유로화 가입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보수당 의원의 과반수가 유로화 가입에 반대하고 있는 점을 적절히 이용, 보수당 총재로 등극한 것.

그러나 당수가 된 지 1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총재를 갈아치워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덩컨 스미스 당수가 신뢰성 있는 정책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인사에서 전횡을 일삼는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79년부터 97년까지 장장 18년간 야당생활을 했던 노동당이 97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보수당의 정책을 상당부분 수용, ‘반(半)보수당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덩컨 스미스 당수는 동성애자 부부나 동거 부부들의 자녀 양육을 허용하는 법안에 반대한 것은 물론, 중앙당 사무국 내 주요 보직에 유로화 가입에 반대하는 인물을 앉혔다.

올 초 잠잠한 듯했던 보수당 총재 교체 요구는 지난달 초 다시 공론화됐다.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라크 침략전쟁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집권 6년 중 최저의 지지도를 기록하고 있는데도 보수당 지지도는 바닥을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라크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정보를 과장했다는 BBC의 보도를 두고 정부와 BBC가 서로 옳다고 주장하며 싸우는 와중에 BBC의 정보원으로 지목된 저명한 과학자 데이비드 켈리 박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켈리 박사의 사인을 조사하는 ‘허튼위원회’ 활동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자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90%가 “정부는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에 관해 국민을 기만했다”고 대답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여당의 지지도가 바닥에 떨어졌지만, 제1야당은 제대로 된 정책대안 하나 제시하지 못한 실정이었다.



결국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정부내각과 동일하게 구성된 제1야당의 내각)에 속하지 않은 보수당 평의원인 백벤처(back bencher)들이 당수 교체를 요구했다. 지역구 당원들의 여론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백벤처들은 1922년 위원회(백벤처들의 당내 모임) 위원장에게 당수 교체를 요구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불신임당할 것이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덩컨 스미스 총재 지지자들은 치욕을 당하느니 용퇴하라고 종용했지만 그는 불신임 투표까지 갔다. 그리고 지난달 10월29일 실시된 투표에서, 165명의 의원 가운데 90명이 그를 불신임했고 신임 표를 던진 의원은 75명에 불과했다. 기존 당 규약에 따르면 해마다 전당대회를 연다. 그리고 당원의 15%가 총재 교체를 요구하면 선거를 치를 수 있게 돼 있다.

이처럼 거의 한 달 동안 보수당은 당수 교체 문제로 시끄러웠다. 더욱이 보수당 지지자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들도 보수당의 분열상에 식상했다. 그 때문에 보수당은 또 한 번의 내란을 치르지 않고 그림자 내각에서 재무장관으로 활동한 마이클 하워드 의원(62)을 신임 당수로 추대했다. 주요 후보로 거론되던 사람들이 출마하지 않고 하워드 의원의 총재 추대를 적극 지지했기 때문이다.

하워드 신임 당수는 유대인이다. 19세기 말 총리를 역임한 윌리엄 글래드스톤도 유대인이다. 글래드스톤에 이어 보수당 총재 가운데 두 번째로 유대인 당수가 나왔다. 그는 지난 83년 영국 남부 켄트시 인근의 폴크스톤·하이드 선거구에서 당선된 이후 내리 5선된 기록을 갖고 있다. 케임브리지대 피터하우스 컬리지에서 법학을 공부, 변호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90년대 중반 존 메이저 총리 시절에는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범죄에 강력히 대처해 당시 범죄 발생률을 15% 정도 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유럽 통합에 관해서는 많은 당원들과 마찬가지로 유로화 가입에 반대한다.

신임 하워드 당수는 “당의 분열을 수습하고 믿을 만한 정책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일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국민은 의료보험 서비스 개선과 공교육에 대한 투자를 희망하고 있다. 영국에서 의료 서비스는 전액 무료다. 그 대신 수술받기 위해 6개월 이상 기다리고 있는 사람만 20만명이 넘는다. 하지만 이라크 침략전쟁에 동참, 돈을 빌려와 30억 파운드(6조원)를 투자한 영국 정부가 한정된 예산 때문에 의료보험 서비스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라크에서 언제 철수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유일한 대안은 세금인상인데, 이는 최악의 정책수단으로 거론되고 있다.

여당인 노동당은 ‘이라크’라는 수렁에 빠져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또 토니 블레어 총리와 고든 브라운 재무부 장관이 벌써부터 권력투쟁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05년 상반기에 총선이 예정된 상황에서 블레어 총리가 브라운 재무부 장관과의 당초 약속을 어기고 총리직, 즉 3선에 도전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 노동당의 지지도가 바닥을 헤매고 있다. 그러나 야당인 보수당은 이런 절호의 기회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사분오열돼 바람직한 정책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래저래 국민의 정치불신만 초래하고 있는 보수당의 고민은 더 깊어질 전망이다.



주간동아 2003.11.20 410호 (p58~59)

런던=안병억 통신원 anp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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