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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손길승 입 열다

‘한날 같은 돈’ 짜고 준 후원금?

노무현 후보 우세 12월 초 집중 지원 … 재계, 재벌기업 간 사전조율설 다 아는 비밀(?)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한날 같은 돈’ 짜고 준 후원금?

‘한날 같은 돈’ 짜고 준 후원금?

지난 5월29일 청와대 국정과제와 노사정전체회의에서 위촉장을 받고 기념촬영한 후 노무현 대통령 뒤로 걸어가는 손길승 회장(왼쪽).

민주당이 지난해 대선 때 기업으로부터 모금한 후원금의 구체적 내역이 드러났다. 11월10일 한국일보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 캠프측 대선자금 내역’이라는 문건을 입수해 공개했다. 검찰도 이 문서를 수사 단서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노후보 진영 대선자금은 물론, 대선자금 전체 규모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일보는 전체 자료를 공개할 경우 후원자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우려가 있다며 이번 보도에서 1억원 미만의 자금을 제공한 기업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공개된 후원자 명단을 들여다보다 보면 자연스레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삼성그룹의 후원금 규모. 삼성의 경우 삼성벤처투자와 삼성전자 계열사인 블루텍, 그리고 삼성인력개발원에서 분사한 크레듀에서 각각 2억원씩의 후원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토로스물류에서 1억원을 냈고 삼성 계열사 전·현직 사장 3명이 각각 1억원씩의 후원금을 내 도합 10억원의 후원금을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계는 물론 재계에서도 삼성의 후원금 규모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번 자료에서는 SK그룹이 25억원을, LG그룹이 20억원을 후원금으로 낸 것으로 나타났는데 기업의 규모나 재력으로 볼 때 삼성이 10억원만 내고 말았다는 건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는 지적이다.

삼성그룹 10억, 현대차그룹 10억 이해 안 돼



삼성이 낸 후원금 가운데 특히 전·현직 사장 명의로 제공한 3억원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많다. SK가 임원 명의로 제공한 자금이 그룹 비자금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밝혀지면서 삼성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는 의혹이 일고 있기 때문.

그러나 삼성측은 SK와는 달리 비자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 계열사 중에서 후원금을 낼 수 있는 계열사가 30개 안팎인데, 이들 기업의 한도가 모두 차서 전·현직 사장에게 요청했고 이들이 흔쾌히 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회사 입장에서야 당연히 개인돈으로 각각 1억원씩을 제공한 전직 사장 2명에게 보상해줄 생각이었겠지만 ‘다행히’ 그 전에 대선자금 문제가 터졌기 때문에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덧붙였다.

삼성의 또 다른 관계자도 “기업의 기부금 한도액이 다 차 이들 전·현직 임원에게 부탁했고 후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상해주려 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만약 이들 관계자의 얘기가 사실이라면 개인 명의로 노후보 캠프에 전달한 3억원은 일단은 회삿돈이 아니라 순수한 개인돈이라는 얘기가 되는데, 이는 곧 제대로 된 계열사는 모두 한나라당 지원에 동원됐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그룹)의 경우도 삼성과 비슷한 문제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이 민주당 대선캠프에 전달한 후원금은 모두 10억원. 그 가운데 현대차(6000만원) 현대모비스(6000만원) INI스틸(7000만원) 등 6개 계열사 명의로 전달된 3억4000만원을 제외한 6억6000만원의 후원금이 19명의 계열사 임직원 명의로 전달됐다. 유난히 계열사 임직원들의 명의로 기부된 액수가 많은데, 개인돈인지 회삿돈이지 여부에 따라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어서 수사결과가 주목된다.

‘한날 같은 돈’ 짜고 준 후원금?

5대 그룹이 낸 대선 후원금이 본격적으로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고 있다.

포스코건설을 통해 1억원을 낸 포스코의 경우 기업의 규모나 최고경영진의 노대통령과의 사적 인연에 비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박득표 포스코건설 회장이 노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인 데다 노대통령이 2000년 4월 총선 당시 부산에서 출마할 결심을 하는 과정에서 박회장의 사무실을 찾아가 상의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 여기에 유상부 포스코 회장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박태준 전 명예회장이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면서 포스코로서는 노후보의 당선을 원할 수밖에 없었던 게 당시 상황이다.

재계 순위 높은 한진·한화 1억원 이하 ‘갸우뚱’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당시 포스코 본사는 후원금 한도액이 거의 찬 상황이었기 때문에 포스코건설을 동원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민주당(새천년민주당)에 1억원의 후원금을 제공한 것을 비롯해 한나라당과 자민련(자유민주연합)에 각각 7000만원과 3000만원을 이미 건넨 상황이었다는 것. 이에 따라 남아 있는 5000만원으로는 생색을 내기도 어려었던 만큼 포스코건설을 동원해 1억원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

이번 후원금 납부 리스트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1억원 미만 후원기업 가운데도 기업의 재력에 비추어 그 액수가 지나치게 적다는 평을 듣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계열사 후원금을 포함해 1억원 이상의 후원금을 낸 기업 명단에는 재계 순위가 높은 한진그룹이나 한화그룹이 보이지 않는다.

국내 굴지의 통신기업집단을 이끌고 있는 KT 같은 기업의 이름도 1억원 이상 후원자 명단에는 없다. 실제로 KT의 경우 3000만원의 후원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KT의 한 임원은 “KT는 비자금을 만들 수 있는 회사도 아니고 만들 필요도 없는 회사다. 과거부터 그래 왔다. 공식적인 절차에 따르면 3000만원 정도가 KT로서는 적절한 액수였다고 본다. DJ(김대중 전 대통령) 정부 때 개인 명의로 수천만원을 후원한 게 문제가 된 적이 한 번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 KT가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걸 본 적이 있나”고 반문했다. 라면업계 1위 업체인 농심이 낸 후원금은 ‘고작’ 100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하나 이번 자료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5대 재벌을 포함해 고액 후원자들이 대선 후원금을 낸 시기다. 대부분 기업들이 12월 초 이후, 즉 노후보의 우세가 확실해진 무렵에 집중적으로 자금을 지원했다는 점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12월5일 계열사와 임직원 명의의 후원금 10억원을 노후보 캠프에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그룹도 같은 날 민주당측에 후원금을 전달했다. SK그룹도 계열사 명의의 후원금 15억원을 이날 전달했고 임직원 명의 10억원은 투표 직전인 12월17일 날 전달했다. 동양그룹은 12월4일 계열사 명의의 후원금 5억원을 민주당측에 제공했다.

LG그룹의 경우 이보다 조금 늦은 12월6일에 후원금을 전달했다. 삼양사 계열사들이 후원금 3억원을 낸 날도 12월6일이다. 그러니까 2002년 12월4일과 6일이 노후보 캠프에서는 ‘모처럼’ 돈이 넘쳐난 시기였던 셈이다.

이처럼 11월 말에 후원금을 전달한 현대차그룹을 제외한 대부분의 그룹이 후원금을 전달한 날짜가 비슷한 시기에 몰리면서 재계에는 ‘재벌기업 간 후원금 사전조율설’이 설득력 있게 퍼지고 있다.

실제로 10월 말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을 긴장관계에 몰아넣었던 ‘이중장부설’ 파문 당시 김경재 민주당 의원은 “대선 때 이상수 의원이 ‘5대 그룹 이상이 약속이나 한 듯 같은 액수의 돈을 가져왔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폭로의 당사자인 김의원에 대해 열린우리당측은 “법정소송도 불사하겠다”며 맞섰지만 상위권 재벌들간에 노후보 진영에 대한 후원금 지원 시기와 규모를 두고 사전조율을 거친 듯한 흔적이 나타남으로써 이 역시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대선 당시 노후보 캠프에 대한 기업들의 후원금 규모와 제공시기 등은 구체적 자료와 함께 떠도는 반면, 한나라당과 관련된 자료와 소문은 일절 없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에 대해 한 검찰 출입기자는 “민주당의 경우 최근 분당사태를 겪으면서 내부제보와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대선 당시 당 재정을 두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간의 논쟁이 격화되면서 중요 자료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의 경우 그런 내분이 없어서인지 구체적인 자료가 나오지 않고 있는데 이런 정당들이 처한 현실이 검찰 수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대선자금 전모를 밝힐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위한 검찰의 움직임이 유난히 주목받는 요즘이다.



주간동아 2003.11.20 410호 (p24~26)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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