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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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파 ‘기호 2번’ 사수 “돌격 앞으로”

총선 4당구도 유력 ‘세 규합’ 총력전 … 정치개혁 내세워 창당 ‘흥행몰이’ 계획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3-09-18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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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당파 ‘기호 2번’ 사수 “돌격 앞으로”

    회의 도중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노무현 대통령.

    신당 창당작업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정국은 한나라당, 민주당, 신당, 자민련 등 ‘신 4당구도’로의 재편이 불가피해졌다. 1988년 13대 국회 이후 처음으로 펼쳐질 4당구도는 향후 총선 정국에 회오리를 몰고 올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때문에 신당은 일단 ‘세’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느냐에 따라 당의 운명과 진로가 달라진다. 한국 정치에 있어 의원 머릿수가 정치적 명분의 근거가 된 경우가 허다했다. 세와 실리는 비례한다. 민주당 잔류파와 신당파 지휘부가 “기호 2번을 사수하라”며 소속 의원들을 독려하는 것은 이런 명분과 실리를 선점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기호 2번’은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과의 양자대결 구도의 한 축을 점하려는 양 진영의 1차 승부처로 볼 수 있다. 정통 민주세력의 코드라는 상징성은 민주당 지지성향의 유권자들의 손길을 묶을 수 있는 최대 자산이다. 현재 민주당 의석은 101석. 신당이 기호 2번 정당이 되기 위한 분기점은 지역구 51명(전국구는 탈당하면 의원직 상실)이다.

    명분과 실리 선점 물러설 수 없는 승부처

    신당파가 의원 5명의 통합연대 및 2명의 개혁당과 합친다는 가정 하에 기호 2번 정당에 필요한 최소 지역구 의원은 44명. 신당파는 14일 현재 43명(전국구 7명 포함)이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라고 주장한다. 앞으로 신당창당주비위원회(이하 신당주비위)에 지역구 12~15명 이상이 가세할 것이란 장담도 빼놓지 않는다. 그러나 추석 민심을 접한 일부 인사들이 발길을 되돌리는 흔적들도 감지되고 있어 신당파를 긴장시키고 있다. 관건은 30여명에 달하는 중도파의 향배.

    연휴 마지막날인 9월14일 오전, 신당주비위는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김원기 창당주비위원장 주재로 분과위원장단 회의를 열었다. 탈당과 교섭단체 구성, 원내총무 선임 등의 일정을 논의한 이날 모임의 또 다른 주제는 중도파 영입 전략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신당파 한 인사는 “관망파 가운데 정대철 대표 등 10여명은 결국 신당행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안다”며 “가급적 교섭단체 등록 때 이들과 전국구를 포함한 신당 의원수가 60명 가까이 될 수 있도록 각개격파식 세 규합 작업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의 말처럼 1차 기 싸움에서 신당이 우위를 점하는 분위기다. 그 분기점은 김근태 의원이 만들었다. 9월5일 그가 분당에 항의하며 단식농성을 벌일 때 신·구주류 및 중도파 의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김원기 위원장과 이상수 이재정 임종석 의원 등이 이날 오전 그를 방문, 신당에 합류할 것을 설득한 데 이어 한화갑 조순형 김상현 김명섭 김영환 의원 등 중도 성향 의원들도 대거 김의원을 찾아 명분 있는 선택을 호소했다. 이 자리에서 신당파 한 인사는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의 일화 등을 거론하며 김의원의 마음을 잡으려 했다. 중도 입장에서 고민하던 김의원은 신당 합류를 선언, 1차 승부를 갈랐다. 김의원은 신당의 첫 교섭단체 대표인 원내총무로 거명된다.



    신당파 ‘기호 2번’ 사수 “돌격 앞으로”

    9월15일 여의도 한 호텔에서 회의중인 당 잔류파 의원들(위). 민주당 당 잔류파와 신당파가 설전을 벌인 8월28일 당무회의 모습.

    가진 것 없는 신당파의 흥행몰이 밑천은 정치개혁이다. 9월8일 김원기 위원장은 “변화의 속도와 방법에 대해 이견이 있다면 타협할 수 있지만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세력과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 여망을 외면할 수 없다는 신당의 원칙에 대한 재확인이다. 때문에 신당파의 창당 로드맵에는 정치개혁을 지향하는 갖가지 정치실험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정치자금과 관련해서는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투명성을 강조한다. 김위원장은 “창당에 필요한 초기 비용을 주비위에 참여하는 의원들의 특별회비로 충당하겠다”고 말했다. 정치자금 투명화에 대한 의지의 표현으로 의원 1인당 2000만원 안팎을 부담해야 할 것이라는 게 신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주비위에 합류한 40여명의 의원이 창당에 나설 경우 4·4분기 정당보조금은 13억여원으로 추산된다. 아쉬운 대로 이 정도로 창당에 필요한 기본 경비를 충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당 재정의 수입·지출을 공개하고 분기별 외부 감사기관의 회계감사를 받는 것도 계획중이다.

    신당파의 창당 로드맵에는 독일의 나우만 재단 같은 연구재단을 설립, 정책 개발에 나서겠다는 계획도 숨어 있다. 정부 부처 감시, 감독과 장기적 정책을 개발할 연구재단이다. 정쟁이 아닌, 말 그대로 정책에 승부를 걸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신당파가 정치개혁에 목을 매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개혁이라는 명분을 선점, 민주당 잔류파의 목줄을 죄는 한편 국민들의 개혁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주겠다는 복선이다. 구정치와 신정치의 대립각을 부각시켜 내년 총선에서 바람몰이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 밖에 신당파 의원들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이념과 노선을 적절히 차용, 승부를 걸겠다는 계산도 하고 있다. 한마디로 ‘생각은 DJ, 행동은 노대통령’으로, 이념 정책은 대체로 김대중 정부를 계승하되 정치행태와 정당운용은 노대통령의 방식을 따른다는 얘기다. 호남표를 비롯한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과 영남권 및 20, 30대의 ‘개혁심리’를 자극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겨냥하겠다는 전략이다.

    잔류파의 발걸음도 분주하다. 잔류파 역시 세 확산에 주력한다. 추석 민심을 접한 후 당 잔류 쪽으로 기운 호남 중도파와 수도권 일부 인사들이 타깃. 한화갑 전 대표와 조순형 추미애 의원 등 중도파 13명은 통합모임을 만들고 정범구 의원을 대변인으로 선임했다. 이들은 분당 사태에 대한 노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며 신당 앞길에 ‘고춧가루’를 뿌리기도 했다. 잔류파는 탈(脫)호남, 민주당 정통성 계승, 정치개혁을 앞세운다. 신당파의 명분을 빼앗자는 전략이다. 조순형 추미애 의원을 얼굴로 내세우자는 논의가 탄력을 받고 있다. 잔류파는 중도파를 상대로 초기 탈당 동조 움직임만 막으면 신당파의 세 확산을 쉽게 저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도파에는 탈당시 의원직을 상실하는 전국구의원과 지역구 내 전통 민주당 지지 유권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호남 및 수도권 의원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 전 대표는 추석연휴를 전후해 관망파는 물론 지역구에 호남표가 많은 신당파 의원들과도 광범위하게 접촉, 신당주비위측을 긴장시켰다. 한 측근은 “몇몇 인사들이 신당의 불투명한 진로에 회의를 품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신당파와 잔류파 양측은 추석 민심에 대해 서로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며 승리를 자신한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잔류 쪽으로 기운 인사들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이낙연 의원의 경우 “추석 민심을 확인해본 결과 신당에 가지 말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며 “대표비서실장이지만 꼭 정대표를 따라가야 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신당 창당의 길목에는 몇 가지 변수가 도사린다. 이 변수에 따라 신당파의 입지와 세 형성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여론의 향배가 중요하다. 9월8일 한 일간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신당 창당에 대한 공감도가 30.3%에 불과했다. 경우에 따라 분당 책임론에 휘말릴 수 있는 아슬아슬한 수치다. 이런 수치가 내년 총선까지 이어진다면 신당의 전도는 매우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신당은 ‘구정치’와의 단절을 주장한다. 구정치는 ‘3김정치’를 의미하며 DJ도 청산의 대상이다. 이런 흐름에 대해 호남의 민심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노무현 정권 탄생에 지대한 역할을 했지만, 참여정부 출범 이후 호남을 휘감는 코드는 ‘소외론’으로 압축된다. 호남 민심이 신당에 호의적일 수 없는 이유다. 호남 표심이 신당을 외면할 경우 3000표 안팎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서울과 수도권의 총선 승부에서 신당이 밀릴 수밖에 없다. 노대통령의 당적이탈 문제도 이슈다. 한나라당은 당적이 없는 상태에서 초당적인 국정운영을 할 것을 주문한다. 민주당은 신당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신당은 지지도가 낮은 노대통령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30%대에 머물고 있는 노대통령의 지지율 추이는 민주당 중도파의 신당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신당파의 장기 플랜은 부산지역 신당추진연대회의, 한나라당 탈당파인 통합연대, 정치권에 진출하려는 시민단체 등과 함께 연말쯤 ‘범개혁 신당’을 출범시킨다는 쪽이다. 이 경우 선거구도는 진보 대 보수, 노무현 대 비노무현이라는 이슈가 다시 선거판을 휘감을 공산이 크다. 이런 선거지도를 그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당의 울타리 안에 많은 인재들이 모여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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