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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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참 …” 이라크 전투병 派兵 딜레마

미국 독자적 작전 가능 경보병 부대 요청 … 여론과 국익 사이 입장 정리 쉽지 않을 듯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3-09-18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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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고민에 빠졌다. 미국이 우리 정부에 이라크에서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경보병 부대를 파견해 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해온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이미 지난 3, 4월 비전투부대 이라크전 파병을 둘러싸고 나라 전체가 국론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인 전례가 있는 만큼 파병에 대한 입장 정리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처럼 고민에 빠진 것은 지난 4월과 달리 이번 전투병 파견은 내걸 만한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4월 이라크로 떠난 우리 부대는 의료지원 등 평화유지활동이 주임무다. 유엔의 지지나 결의 없이도 최소한의 명분은 있다. 그러나 전투병 파견은 국제법상 사실상 교전행위 의사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전투병 파견은 유엔의 지지나 결의가 없을 경우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경우에 따라 경제적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 전투병을 파견할 경우 범아랍권이 ‘코리아’를 적대 국가로 관계설정을 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중동지역 석유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입게 될 손실은 계산하기 어렵다. 현지 파견 전투병들의 생명 위협도 정부로서는 큰 부담이다. 한국이 알 카에다 등의 테러 대상국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대통령 ‘솔로몬 지혜’ 발휘할 수 있나

    물론 파견에 따른 과실(果實)도 간과할 수 없다. 전통적인 한미 관계 및 북한 핵, 주한미군 이전 문제, 이라크 재건 특수 등 놓칠 수 없는 전리품들이 유혹한다. 이런 점에서 먼 나라 전쟁에 대한 명분 다툼보다 안보 이익 등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파병 찬성과 반대 논리가 이처럼 첨예하게 대립하자 국론을 모아야 하는 정치권은 극도로 말을 아끼며 눈치를 보고 있다. 지난 봄 이라크 파병을 적극 지원했던 한나라당은 ‘이번에는 총대를 메지 않겠다’는 쪽이다. 미국을 방문중인 최병렬 대표는 미 정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국회 차원의 지원을 해달라”는 메시지를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표는 방미에 앞서 이 문제와 관련, ‘대통령이 파병에 대해 정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야당 대표가 먼저 입장을 밝힐 수는 없다’는 모범답안을 주머니에 넣고 갔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은 파병 문제에 대한 외교통상부의 명확한 입장을 요구했지만 외교통상부는 이를 외면했다고 최대표의 한 특보는 주장했다. 한나라당 내에서 하순봉 이상득 의원 등 중진들은 파병에 찬성하지만 남경필, 서상섭, 정병국 의원 등 소장파들은 반대론을 외친다.

    민주당의 입장도 어정쩡하다. 정대철 대표는 “유엔 이름으로 PKF(유엔평화유지군) 파견을 요청한 것이라면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3월 파병 반대를 외쳤던 김근태, 김성호 의원 등 5인은 9월12일 파병 불가를 천명한 상태. 경우에 따라 내분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야 모두 머나먼 이라크의 모래바람에 휘감겨 분화현상에 시달린다.



    선택과 결단에 대한 부담은 청와대가 가장 크다.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은 9월13일 “상당한 시간을 두고 어느 쪽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따져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섣불리 파병에 관한 입장을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문실장은 유엔의 역할을 강조한다. 유엔이 이라크에 파병할 전투병(치안유지군)을 PKF로 규정할 것인지 여부를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이라크 파견 전투병이 PKF로 규정되면 국제사회 및 국내 반대 여론도 상당부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게 문실장의 설명이다. 청와대 내에선 김희상 국방보좌관이 파병 쪽에 무게를 둔 반면 상당수 인사들은 “이미 비전투병을 파견한 만큼 추가 파병은 불필요하다”는 반대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정세와 국내 여론을 감안, 파병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지만 한미관계를 고려할 때 일방적 거부는 어렵다는 전문가들 의견이 많다고 한다. 같은 처지에 놓인 일본의 선택을 지켜보자는 제안도 나온다.

    그러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우리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극히 제한적이다. 선택 여하에 따라 진보와 보수 세력의 갈등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모든 것은 노대통령의 손에 달렸다. 노대통령은 과연 솔로몬의 지혜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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