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필드-공습’, 2006
하지만 황호석의 그림에 등장하는 유원지나 침실은 즐겁고 편안하고 안전한 곳이 아니다. 그는 우리가 그려보는 일상 탈출의 계기라든지 휴식에 대한 상상이 기만적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황호석의 그림에서는 그런 판타지마저 전쟁터다. 놀이공원과 침실은 난데없는 폭염에 휩싸여 있으며, 곳곳에서 원자폭탄과 같은 폭발이 일어나고, 탄환과 불똥들이 날아든다. 하늘은 불길한 먹구름과 천둥 번개로 가득해 지극히 불안하고 공포스런 곳으로 표현된다. 게다가 황호석은 이런 무섭고 불안한 상황을 마치 상한 음식에서 피어나는 곰팡이처럼 인공 염료에서나 볼 수 있는 분홍색, 연두색, 노란색 같은 색깔을 사용해 표현한다.
황호석은 우리의 일상과 판타지 모두가 불안에 싸여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아무리 우리 일상이 평온하기를, 좀더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더라도 혹은 우리가 고난에 찬 생활에서 벗어나면 도원경 같은 이상적인 경치가 펼쳐질 것이라고 상상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불안의 이면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 어디에서도 더 이상 판타지를 안락하게 즐길 수 없다. 일단 판타지의 세계로 한 걸음만 다가가면 그곳조차도 현실과 마찬가지로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 놀이공원과 침실이 폭염과 폭발로 얼룩진 전쟁과 테러의 장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수많은 시각 이미지 생산자들은 끊임없이 이러한 불안을 그려낸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 전쟁, 기아 등과 같은 세계사적인 사건은 물론 연쇄 살인사건이나 부동산 폭등, 빈부격차 심화 등 사회적 문제들은 언론 보도에서뿐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그 불안한 조짐을 드러낸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그 불안함의 증거들을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중요한 것은 현대인이 공통으로 처한 전쟁터와도 같은 불안의 세계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판타지를 만들어내느냐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불안한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새로운 욕망을 창조해내는 능력일 것이다. 2월4일까지, 헤이리 갤러리 터치아트, 031-949-9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