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한국침례회총회 소속 임춘남(65·경남 거제시 남부면) 목사는 1월2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미군정 57호의 발효로 인한 피해의 진상을 파헤쳐달라는 신청서를 접수했다.
미군정 57호는 광복 직후 3년간 남한을 통치한 미 군정청이 1946년 공포한 법령. 1946년 3월2일부터
7일까지 조선식산은행 등 미 군정청이 지정한 7개 금융기관에 남조선 내 자연인과 법인이 소유 또는 점유한 1000원권 이상의 일본은행권을 예입해야 하며, 예입한 뒤엔 어떤 경우라도 해당 화폐의 수출, 수입, 영수, 지불, 고의적 소유 혹은 점유, 교부 등 거래행위를 전면 금지한 것이 그 내용이다.
그러나 법령 어디에도 예입금을 상환해준다는 조항은 없다. 도리어 이 법령을 위반할 경우 군정재판소 결정에 따라 처벌한다는 벌칙까지 둬 사실상 당시 조선인이 소지한 모든 일본은행권의 예입을 강제했다.
미 군정청이 강제 예입을 명한 일본은행권은 광복을 전후해 귀국한 재일(在日) 귀향민들이 일본 현지에서 벌어들인 사유재산. 그럼에도 강제예입 이후 30년이 다 된 1975~77년에야 받을 수 있었던 보상금은 예입금에 대한 은행이자는커녕 물가상승분에 비해서도 터무니없는 소액이었다. 명목 또한 박정희 정권이 한일협정의 결과물로 일본으로부터 받아낸 ‘대일 청구권 자금’의 일부였다. 미군정 57호의 발효에 따른 피해자는 전국적으로 1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사연은 ‘신동아’(2005년 5월호)의 단독보도로 알려진 바 있다. 보도 이후 전국 각지의 피해자들은 2005년 9월 ‘미군정 57호 피해자협회’(이하 협회)를 창립하고, 임 목사를 회장으로 추대했다. 임 목사는 “박정희 정권이 대일 청구권 자금에 의한 민간인 보상과정에서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청구권 자금의 5%만 피해자들에게 지급하고, 나머지는 포항제철 건립,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경제개발 목적으로 전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 않느냐”며 “미군정 57호에 의한 재산피해도 그와 같이 비틀린 과거사를 재조명하고 청산하는 차원에서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임 목사의 경우, 광복 이전 일본에서 사업을 하다 광복과 함께 귀국한 그의 부친 임상봉 씨와 모친 박갑수 씨가 군정법령 57호에 따라 소지하고 있던 6만5200엔을 경남 진해시의 한 은행에 예치했으나 이를 돌려받지 못하자 모친이 화병을 얻어 임 목사가 6세 되던 1946년 6월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임 목사가 양친이 예치한 엔화를 원화로 돌려받은 때는 1975년으로 한화 195만6000원(1엔당 30원으로 산정)에 그쳤다.
협회 측이 진실 규명을 원하는 부분은 미군정 57호에 의한 강제예입금의 총액과 전체 예금주의 명세, 미 군정청이 한국인 보유 일본은행권을 강제예입케 한 동기, 예입금을 일본으로부터 받아낸 청구권 자금으로 상환한 경위, 보상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의 예입금 행방 등이다.
협회는 곧 자체 홈페이지를 개설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홍보활동에 나서 신규 회원을 늘려갈 계획이다.
청와대와 관계부처, 심지어 미국 정부에까지 수십 차례 청원과 탄원을 해도 이렇다 할 답변을 얻지 못한 미군정 57호 피해자들. 은폐된 진실의 규명을 기치로 탄생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제대로 화답할지가 관심거리다. 미군정 57호 피해자협회 문의 055-632-8558, 017-542-8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