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낙원동 옛 허리우드 극장 위로 지어진 ‘낙원빌’ 꼭대기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설치미술작가 최정화(44) 씨가 2005년 일민예술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작가 최 씨를 그의 주거지로 설명하는 건, 그 거리에 아등바등 들어선 족발집과 아구찜집들, 싸구려 소쿠리를 매단 소형 트럭,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닐봉투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나는 악기상들로 이뤄진 낙원동 신들이 곧 그의 미술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87년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회화에서 재능을 보였던 그는 낙원동과 세운상가로 상징되는 한국 근대화 시기의 뒤죽박죽 문화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오리지널’ 함을 발견했다. 그는 이에 질세라 번쩍거리는 과일 모형이나, 싸구려 샹들리에와 과속 단속용 마네킹 경찰 등을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에 옮겨다 놓고 ‘이것이 한국 현대미술’이라고 주장했다. 90년대 초, 그의 ‘뻔뻔한’ 미술이 던진 충격은 대단했다.
모던에서 포스트모던으로 넘어간 한국 현대미술의 ‘오리지널’을 이야기한다면 당연히 그의 작품을 거론해야 할 것이고, 이는 일민예술상 수상의 근거가 될 것이다.
최정화 이후 수많은 ‘최정화 류’의 키치가 미술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을 휩쓸었고, 그는 한옥 리노베이션 현장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최정화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미술작품은 컬렉터 저택의 거실이나 관공서 로비와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고,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더 큰 인기를 끌었다. 2003년 문을 연 도쿄 롯폰기 중심의 54층 모리타워에 ‘해피니스’라는 그의 작품이 전시됐고, 롯폰기의 어린이공원 디렉팅 등 개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또 프랑스 리옹 비엔날레에 초대됐고, 2005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외부에 빨간색 소쿠리를 쌓아 ‘욕망장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욕망장성’은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잘 표현하면서, 난해한 한국관 건물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 셈이었다. 2005년 새로 문을 연 서울 명동 신세계 백화점 건물 밖에는 그의 아이디어로 만든 거대한 과일나무 조형물이 있으므로 누구나 감상할 수 있다.
한국 현대미술이 그에게 진 빚이 작지 않음에도, 그는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사실이다-고 생각해왔고, 그래서인지 그는 늘 미술에 대해 말할 때 ‘대략 시니컬’하게 시작한다. 물론 그 열정을 결코 숨기진 못하지만.
‘아무나 아무거나 아무렇게나’라는 미술에 대한 그의 정의에서도 외로움과 열정이 같이 느껴진다. “늘 변방에서 외롭게 작업한다고 생각해왔는데 뜻밖에 큰 상을 받았다”고 수상 소감을 밝힌 그에게 이제 한국 미술 관객들의 호의가 함께 전해지기를 바란다.
87년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회화에서 재능을 보였던 그는 낙원동과 세운상가로 상징되는 한국 근대화 시기의 뒤죽박죽 문화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오리지널’ 함을 발견했다. 그는 이에 질세라 번쩍거리는 과일 모형이나, 싸구려 샹들리에와 과속 단속용 마네킹 경찰 등을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에 옮겨다 놓고 ‘이것이 한국 현대미술’이라고 주장했다. 90년대 초, 그의 ‘뻔뻔한’ 미술이 던진 충격은 대단했다.
모던에서 포스트모던으로 넘어간 한국 현대미술의 ‘오리지널’을 이야기한다면 당연히 그의 작품을 거론해야 할 것이고, 이는 일민예술상 수상의 근거가 될 것이다.
최정화 이후 수많은 ‘최정화 류’의 키치가 미술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을 휩쓸었고, 그는 한옥 리노베이션 현장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최정화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미술작품은 컬렉터 저택의 거실이나 관공서 로비와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고,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더 큰 인기를 끌었다. 2003년 문을 연 도쿄 롯폰기 중심의 54층 모리타워에 ‘해피니스’라는 그의 작품이 전시됐고, 롯폰기의 어린이공원 디렉팅 등 개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또 프랑스 리옹 비엔날레에 초대됐고, 2005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외부에 빨간색 소쿠리를 쌓아 ‘욕망장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욕망장성’은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잘 표현하면서, 난해한 한국관 건물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 셈이었다. 2005년 새로 문을 연 서울 명동 신세계 백화점 건물 밖에는 그의 아이디어로 만든 거대한 과일나무 조형물이 있으므로 누구나 감상할 수 있다.
한국 현대미술이 그에게 진 빚이 작지 않음에도, 그는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사실이다-고 생각해왔고, 그래서인지 그는 늘 미술에 대해 말할 때 ‘대략 시니컬’하게 시작한다. 물론 그 열정을 결코 숨기진 못하지만.
‘아무나 아무거나 아무렇게나’라는 미술에 대한 그의 정의에서도 외로움과 열정이 같이 느껴진다. “늘 변방에서 외롭게 작업한다고 생각해왔는데 뜻밖에 큰 상을 받았다”고 수상 소감을 밝힌 그에게 이제 한국 미술 관객들의 호의가 함께 전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