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자는 신도 아니고 협잡꾼도 아니라고 한다. 과학의 울타리를 부숴버린 우리의 골렘 황우석 박사.
- 그는 아마 과학자가 아니었나 보다. 한동안 신이었다가 이제는 협잡꾼이 되었으니까.
- 휠체어를 탄 척수장애 아동에게 “곧 일어나 걷게 해주겠다”던 황 박사. 그에게 ‘골렘’에서 한 구절을
- 인용해주고 싶다. “과학자들은 약속을 덜 해야 한다. 그러면 약속을 더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골렘 이야기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체코의 프라하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인데, 이는 아마도 그 이야기가 랍비 레우 브라우흐라는 실존 인물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일 게다. 전설에 따르면 이 유대인 랍비는 유대인을 탄압하는 광적인 기독교인들에 맞서 골렘을 만들었으나, 어느 날 이 괴물이 말썽을 부리는 바람에 그를 다시 흙으로 돌려보낸다고 한다.
골렘 이야기도 시대마다 변천을 겪는다. 초기의 전설은 골렘이 위험에 처한 유대민족을 구하는 모티브를 강조하였으나, 20세기를 넘어서면서 골렘 이야기는 그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말썽을 부린다는 모티브에 집중하게 된다. 물론 20세기를 전 시대와 구별지어주는 과학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공포의 반영일 것이다.
골렘, 과학의 뒷골목
해리 콜린스와 트레버 핀치가 공저한 ‘골렘, 과학의 뒷골목’에서도 골렘은 과학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골렘은 (…) 진흙과 물을 섞은 뒤 마법과 주문을 가해 사람들이 만든, 인간을 닮은 자동인형이다. 골렘은 인간의 명령에 따라 위협하는 적으로부터 보호해주지만, 다루기가 힘들며 위험하다. 제대로 통제를 못하면 엄청난 힘을 마구 휘둘러 주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골렘은 전설마다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럼 “골렘을 과학에 대한 비유”로 쓰겠다는 저자들이 생각하는 골렘의 상은 무엇일까? 저자들은 동유럽에서 유래한 골렘 전설을 들어 골렘을 “잔인한 악마가 아니라 실수투성이 거인”으로 그리려 한다. 골렘이 “사악한 창조물이 아니라 약간은 얼간이 같은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 등장하는 과학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과학과 기술이 완전한 확실성을 제공한다고 추정하나, 이 책에 묘사된 과학자의 예들은 실험을 통한 검증이라는 것조차도 그렇게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예들을 통해 ‘과학 근본주의의 환상’의 저편에서 과학이 작동하는 실제의 메커니즘을 보여주려 한다.
상대성이론의 검증
그 대표적인 예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다. 물질이 에너지로 전화할 수 있다는 그의 이론은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면서 확증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이론이 진리성을 인정받아 학계에 수용된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의 일이라고 한다. 가령 상대성 이론과 관련하여 자주 듣는 말이 이 이론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관측 증거가 두 개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
한마디로 “상대성이론은 일련의 결정적 실험에 따르는 굽힐 수 없는 논리에 따라 우리에게 강제로 가해진 진리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에 대해 동의하기로 동의함에 따라 존재하게 된 진리였다.” 검증에 대한 이상적 관념, 즉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관찰자의 편견이 개입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소박한 생각과 달리, 상대성원리가 진리로 인정받는 과정은 “정치적 과정과 많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파스퇴르의 조작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예는 생명의 자연발생설을 둘러싸고 벌어진 파스퇴르와 푸셰 사이의 논쟁이다. 오늘날 우리는 외부에서 균이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살균된 플라스크 물질에서 저절로 균이 발생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푸셰를 반박한 파스퇴르는 옳았다. 하지만 저자들은 파스퇴르가 푸셰를 논박할 수 있었던 것은 실험이 아니라, ‘편견’과 ‘행운’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실험을 위해서 푸셰는 풀죽을 끓여서 사용했는데, 파스퇴르가 사용한 누룩과 달리 풀죽의 경우에는 100℃에서 끓여도 미생물이 살아남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풀죽을 끓이면 완벽한 살균이 된다고 믿고 있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실험이 제대로만 되었다면, 푸셰가 자신의 자연발생설을 멋지게 증명해 보이는 일도 가능했던 것이다.
파스퇴르는 실험에서 자연발생설을 지지하는 결과가 나오면 그 실험을 ‘실패한 실험’으로 규정해버리곤 했다. 그럼에도 당시 프랑스 한림원은 대거 파스퇴르를 지지했는데, 이는 푸셰의 자연발생설이 자칫 성서의 창조설에 대한 반박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였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파스퇴르가 옳았지만, 그의 이론의 진리성은 과학적 검증에 의해서가 아니라 종교적 편견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실험자 회귀
20세기 초에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검증원리’라는 것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검증이 안 되는 명제를 모두 ‘헛소리’로 몰아붙이는 이 원리가 너무 편벽되었다는 비판이 일자, 칼 포퍼는 대신 ‘반증원리’라는 것을 들고 나왔다. 하나의 명제가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지려면, 검증이 되거나 아니면 반증이라도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과학에는 이러한 상식과 달리 검증도, 반증도 되기 힘든 영역이 있다.
가령 1969년 메릴랜드 조지프 웨버 교수는 “우주로부터 지구로 오는 중력복사선이 많은 양으로 존재함을 보여주는 증거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 하는 데에 있었다. 가령 어떤 이들은 실험을 통해 중력복사선을 검출했다고 주장하고, 다른 이들은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누구 말이 옳은가?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
그럼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는가? 저자들은 “이러한 해결, 또는 종결로 이르게 하는 기제들은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과학적’ 활동이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1975년 이후 웨버 교수의 견해에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지만, 조지프 웨버 교수는 아직도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는 새로운 논증과 증거들을 발표하고 있다. 문제는 “과연 그것이 과학자 사회의 주의를 끌 것이냐”는 점에 있다고 한다.
우리의 골렘, 황우석
‘골렘’이라는 책에 주목하게 된 것은 물론 최근에 벌어진 황우석 박사 논란 덕분이다. 물론 황우석 박사는 논문을 조작했기에 과학의 정상적인 과정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기자회견을 통해 과학적 성과를 발표한다든지,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정치권에 로비를 한다든지, 자신의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요란한 수사학을 동원하는 것은 차라리 과학의 일상에 속하는 것이다. 과학을 위해 과학 밖에서 작동하는 기제는 얼마나 강고한가.
황 박사의 문제는 그 기제를 이용했다는 게 아니라 그 기제를 이용하는 것‘만’ 했다는 데에 있다. 그동안 황 박사와 언론에서는 “‘사이언스’의 검증을 거친 논문”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과학계의 ‘검증’이 과학보다는 정치 논리를 따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과학 역시 오직 과학자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성역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적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과학적으로 보면 황 박사 사건의 해결은 사실 간단한 일이다. 줄기세포와 체세포의 DNA를 비교하면 그만이니까. 사건의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은 다른 데에 있다. 황 박사는 줄기세포 몇 개는 오염으로 잃어버리고, 나머지는 바꿔치기 당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이 사건을 ‘실험자의 회귀’와 비슷하게 검증도 반증도 안 되는 미궁으로 몰아넣겠다는 생각이다. 영롱이는 이미 어미를 잃어버림으로써 과학적 검증의 피안으로 안전하게 옮겨가지 않았는가.
과학자의 약속
이 속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믿어줄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황 박사도 이를 안다. 여기서 황우석 신드롬은 유사종교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검증도 반증도 안 되는 미지의 영역이 남아 있는 한, 신도들은 결코 신앙을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줄기교에서 배반포교를 거쳐 스너피교로 둔갑해온 황우석교. 그 신앙의 마지막 거점은 이미 과학적 검증의 피안에 모셔진 영롱이가 되지 않을까?
저자들에 따르면 과학자는 신도 아니고 협잡꾼도 아니라고 한다. 과학의 울타리를 부숴버린 우리의 골렘 황 박사. 그는 아마 과학자가 아니었나 보다. 한동안 신이었다가 이제는 협잡꾼이 되었으니까. 휠체어를 탄 척수장애 아동에게 “곧 일어나 걷게 해주겠다”던 황우석 박사. 그에게 이 책에서 한 구절을 인용해주고 싶다. “과학자들은 약속을 덜 해야 한다. 그러면 약속을 더 지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