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 평북 선천 출생<br>。1951 서울대 수의과대학 <br>。1961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 대학원 수의학<br>。1958~88 서울대 농과대학(수의과대학) 교수<br>。1985~87 서울대 수의과대학 학장<br>。1970 서울시수의사회 회장<br>。1984~86 임상수의학회 회장<br>。1987~93 대한수의사회 회장<br>。1990~93 아세아수의사회연맹(FAVA) 감사<br>。1994~99 대한수의사회 명예회장<br>。현 서울대 명예교수<br>。현 대한수의사회 고문
한때는 ‘국민적 영웅’에서 이제는 ‘희대의 풍운아’로 바뀐 황우석 교수. 그런 그에게도 잊지 못할 스승이 있다. 황 교수는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할 때면 언제나 정창국(83) 서울대 명예교수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곤 했다. 평범한 연구조교에게 세계적인 학문 흐름인 ‘수정란 이식’ 연구를 권하고, 교수 자리까지 마련해줬다는 정 명예교수. 외부와의 소통을 끊어버린 황 교수에 대한 억측이 분분하지만 그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그의 스승만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2005년 12월29일은 마침 서울대 조사위원회(위원장 정명희)가 황 교수 사건에 대해 기자간담회를 하는 날이었다. 이 간담회에서는 누구나 짐작했듯 황 교수 팀이 만들었다는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았고 원천기술 또한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방향으로 결론이 모아졌다. 용인시 상갈의 한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는 정 교수는 간담회에서 나온 내용을 TV로 접한 뒤 기자를 맞이했다.
그는 그간의 경과가 궁금했던지 오히려 기자에게 “황 교수가 교수직을 유지할 수 있을 가능이 얼마나 되는지”부터 물었다. 황 교수는 12월23일, 서울대 조사위의 1차 발표 직후 서울대 교수직을 사퇴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제자에 대한 안타까움이 앞섰는지 그는 “결과적으로 서울대를 망신시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교수직 유지는 힘들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정 교수는 2006년에는 83세가 된다. 현직에서 물러난 지 17년이 흘렀지만 한국 수의학을 개척한 원로 학자답게 또렷한 기억력으로 황 교수 사태를 분석해냈다.
-황 교수와는 어떤 관계인가요.
“사실 황 군은 나의 직속 제자는 아니에요. 그는 동물의 생산을 다루는 산(産)과인데, 나는 수술을 다루는 외과니까요. 그의 학문적 스승은 고 오수각 교수라는 분인데 황 군이 연구조교로 있을 때 갑작스럽게 별세하는 바람에 황 군의 처지가 어려워졌어. 그래서 내가 도울 기회가 있었던 거지.”
정 명예교수는 황 교수에게 수정란 연구를 권유하고 교수 자리까지 마련해줬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대부분 그 정황이 맞다고 기억했지만, 교수직에 대해서는 자신의 배려라기보다 일본에서의 연구생활로 인해 자연스레 임용 기준에 충족되는 점수를 확보했던 것이라고 정정했다.
-젊은 시절의 황 교수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소와 씨름하던 열성적이고 성실한 조교였어요.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시락 반찬으로 매번 김치만 싸왔던 거죠. 허허. 열심히 일하려면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충고했는데도 줄곧 김치만을 고집하더군요.”
-우리나라 축산업이나 수의학도 이제는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는데요.
“축산은 특별할 게 없어요. 동물을 사랑하고 성질이 느긋한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수의과 자체는 동양에서 그다지 높은 대접을 못 받았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동물을 누가 쳐다보기나 했나요.”
-황 교수 덕분에 수의과 대학의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그건 큰 공이야. 고마운 일이야. 누구 하나라도 크게 성공해주면 학과의 인기가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
-오늘(2005년 12월29일) 서울대가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스너피까지도 근친상간으로 순종혈통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검증에 시간이 걸린다더군. 허허. 그런데 과학이란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과학자란 자기가 스스로 교정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오. 자연과학자들은 인문학자들과 달리 기본적으로 대단히 성실한 사람들이거든. 오류를 수정할 능력이 있는 사람일 텐데….”
-그런데 어째서 황 교수는 무리했을까요.
“….”
-그는 출중했던 연구자였던가요.
“출중이라…, 대학을 나와서 공부하자고 덤빈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다 했을 거요. 적어도 과학적 훈련은 제대로 받은 애들이니….”
그는 황 교수의 논문 조작 건에 대해서 침울한 표정으로 답했다. 주제를 바꿔서 수의과학의 역할에 대해 물었다. 황 교수는 잘 알려진 대로 의대 출신이 아닌 수의과대학 출신으로 생명공학(BT)계의 1인자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BT 분야에서는 의대, 생물학과, 수의과 등 여러 분야 출신들이 함께 연구를 진행합니다. 그런데 인간을 다루는 법적인 권한은 의사에게만 있기 때문에 분쟁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황 교수는 그 파워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언론과 정치권 힘을 빌린 것 같습니다.
“그랬을 거야. 의사들이 난자를 안 주면 그만이니까. 아마도 황 교수 팀에는 소 복제 연구를 통해 기술력을 쌓은 섬세한 애들이 많아서 큰 힘이 됐겠지. 수의과는 동물을 다루는 학문이야. 넓게 보면 인간도 동물이라지만 사회 통념이란 게 그렇지 않잖아. 인간에 대한 면허는 의사에게만 있고 연구비란 모조리 의대에서만 나오거든. 그럼에도 의대 출신들은 거의 개업의나 하고 순수 연구는 안 하고 있어. 전국적으로 해부학, 생물학, 미생물학에는 수의과 출신들이 많아요.”
-황 교수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잘해왔습니다.
“마지막에 틀어져서 그렇지 아주 잘했지. 그가 처음부터 ‘사이언스’에 엉터리 논문 내려고 생각이나 했겠어요. 순전히 내 생각인데 ‘이것은 어느 정도 되겠지’ 하고 생각했겠지. 줄기세포를 손아귀에 쥐고 발표했어야 했는데….”
-난자 1000개 이상을 써서 겨우 한 개를 만든 셈이 됐습니다.
“그 수준으로는 경제성이 없어요. 난자 1000개의 비용? 어휴…. 줄기세포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게 효과를 볼 수 있나, 모든 게 의문 아냐? 그런데 기자는 왜 그가 11개의 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잘 모르겠습니다. 몇 가지 해석이 있긴 한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런 연구에는 통계적 의미가 중요한데, 10개 이상은 나와야 그 조건에 부합한다고 생각한 듯해요.”
-황 교수는 원천기술을 갖고 있었을까요.
“글쎄요. 연구는 사실상 젊은 연구원들이 중요해요. 교수야 판단만 하고 방향 제시만 할 뿐이지. 난자를 핵과 분리하고 배양하는 일들이 얼마나 힘든 고행인지 알아요? 그 얼마나 많은 난관이 있었겠어. 이런 거대한 연구는 팀워크가 절대적이에요. 황 교수 처지는 군대의 사단장, 군단장과 비슷했을 것이오.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지.”
결국 원천기술이란 그 연구팀에 있다는 의미이지, 황 교수 개인에게 있을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팀이 해체되면 원천기술도 사라진다. 때문에 연구 팀이 해체돼서는 원천기술을 논할 상황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의 한탄은 계속됐다.
“그런 연구는 황 군 같은 바보나 하는 거다. 정말로 그는 바보가 아닌가. 무엇 때문에 그 고생을 했을까. 다달이 월급이나 타먹고, 남들처럼 편히 살지. 결국엔 남에게 수모나 당할 걸….”
-동정론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닙니다.
“열심이 연구해도 판단이 조금만 틀리면 반대파들이 죽이려고 하는 걸 왜 몰라. 그래도 그 친구는 파면당하지 않는다면 또 시작할 인물이오.”
-상황이 이렇게 틀어졌는데도 황 교수팀 연구원들이 앞으로 그와 함께 일하려고 할까요.
“그게 걱정이야. 다른 대학에서 스카우트를 해가겠지. 섀튼 교수만 해도 손재주 쓸 만한 사람들 벌써 다 데려갔잖아.”
-그의 교수직 유지가 과학계를 위하는 길인가요.
“글쎄. 그 문제는 서울대가 판단할 문제겠지. 이 연구가 크게 물의를 빚긴 했지만, 지금 있는 연구진을 데리고 계속 연구하는 길이 버리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이들이 함께한다면 또 하나의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황 군도 지금은 정신을 차렸겠지. 본인도 연구 이외에 무슨 일이 있겠소.”
-그는 현재 사회적으로 퇴출 직전입니다.
“그렇지. 교수직을 내줄 대학도, 연구비를 댈 기업도 없겠지. 며칠 전에 지인들이 나에게 황 교수에 대해 묻더라고. ‘난 잘 모르지만, 그가 연구를 앞당기려고 초조해서 그렇게 됐다, 연구하는 사람들이 성과에 매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어요. 나를 욕해도 좋은데, 당분간은 그를 위해 나서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가장 안타까운 대목은 황 교수는 왜 일찍 조작을 시인하고 사과하지 않았냐는 겁니다.
“그렇지. 결국은 거짓말한 꼴이 됐어. 그놈이 미련이 있었나 봐. 과학 하는 사람은 미련이 많은 법이야. 이것을 잘 키워서 배양하면 물건이 될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겠지. 처음부터 조작을 시인하는 것은 거짓말을 자인하는 꼴일 테니. 정말 어려운 일이었겠지….”
그는 아직도 황 교수에 대한 식지 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지금도 황 교수의 솔직담백한 고백과 새 출발을 기다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모두가 황 교수의 재능과 열정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