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적으로 바꾼 것이다. 극작가 아서 로렌츠는 16세기 이탈리아를 20세기 뉴욕 웨스트사이드로 옮기고, 부유한 두 가문의 갈등을 미국계와 푸에르토리코계의 인종적 갈등으로 바꿔놓았다. 이런 작품을 우리는 각색 혹은 패러디라 부른다. 그러나 만약 로렌츠가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고, 거꾸로 ‘로미오와 줄리엣’이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표절했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
표절 논쟁은 예술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티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는 공저 ‘예수는 신화다’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 이야기가 이교도 신화의 표절이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예수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메시아의 전기가 아니라, 이교도의 유서 깊은 이야기들을 토대로 한 하나의 신화일 뿐이며, 초기 로마 교회는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로마 교회는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을 말살하기 위해 잔혹한 계획을 세우고, 이교도의 신성한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말살했다.”
이들이 표절의 근거로 내세운 것은 이교도 신인 오시리스나 디오니소스의 신화와 예수의 전기가 갖는 유사성이다. 육체를 가진 신이며 구세주이고 하느님의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인간 처녀로 동정녀였다, 12월25일 동굴 혹은 누추한 외양간에서 태어났으며, 신도들에게 세례의식을 통해 다시 태어날 기회를 주고, 결혼식장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행했다, 세상의 죄를 대신해 죽고 사흘 만에 부활했다 등등 예수의 이야기로만 알았던 부분들이 이미 고대 신앙에 그대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우리를 곤혹스럽게 한다.
예수를 둘러싼 표절 논쟁의 역사는 놀랍게도 서기 170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리스도교 비판에 앞장섰던 풍자가 켈수스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수많은 아이디어는 고대 그리스인들에 의해 더 잘, 그리고 더 일찍이 표현되어 왔다”며 경멸을 감추지 않았다. 켈수스 외에도 여러 이교도들이 그리스도교 교리가 플라톤 철학을 모방했다고 몰아세우자, 4세기 무렵 그리스도교측은 플라톤이 오히려 모세를 표절했다고 주장했고, 이어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은 유대인 예언자 예레미야를 모방했다는 반박론을 펴기도 했다.
이처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표절 논쟁이 ‘예수는 신화다’에서 재현된다. 두 저자는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소아시아의 아티스, 시리아의 아도니스, 페르시아의 미트라스, 로마시대의 바쿠스는 여러 신이 아니라 하나의 신이었다고 말한다. 기원전 6세기부터 시작된 이 신앙을 그리스어로 ‘미스테리아’(영어 Mysteries)라 부르며, 유대인들이 이 고대 미스테리아를 받아들여 예수 미스테리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면 표절이 아니라 각색이 되겠지만, 초기 로마 교회는 표절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악마이론까지 동원했다. 2~3세기 초 ‘교회의 아버지’(敎父로 불림)들은 이교도와 예수 이야기의 유사성을 ‘악마의 모방’이라고 둘러댔다. 즉 하느님의 진짜 아들(예수)이 지상에 도래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악마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그의 생애 이야기를 베껴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저자들이 원본이라고 주장하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이 책의 첫 장 제목은 ‘생각할 수 없는 생각’이다. 예수가 이교도의 신이었으며 그리스도교는 이교 신앙의 이단적 산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2000여년의 금기를 깨는 위험천만한 시도다. 그러나 두 저자는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한 ‘생각할 수 없는 생각’을 시도했다.
예수가 실존인물이었다는 증거는 있는가. 초기 그리스도교인 바울은 정말 반영지주의자(그노시스를 이단으로 취급)였을까? 영지주의자들은 이미 예수 이야기가 신화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자 스스로 밝혔듯 추리소설 속의 탐정처럼 이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종교적 분파와 권력 투쟁,위조 문서와 허위 인물들, 편집되고 추가된 편지들, 역사적 증거의 대대적인 말살 사실을 찾아냈다. 그리고 예수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신비한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 치밀하게 꾸며낸 영적 비유일 뿐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이들은 이 연구로 인해 기독교를 부정하기는커녕 신앙이 더 확고해졌다고 주장한다. 예수의 역사적 실존에 연연하지 않고 예수를 신화로 이해함으로써 보편적인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1999년 영국에서 이 책이 출간되자 학계와 종교계가 격렬한 논쟁을 벌인 것처럼 한국 교회가 과연 이 주장을 화제로 삼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통 기독교의 입장에서 분명 불경스럽고 불편한 책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신화다/ 티모시 프리크, 피터 갠디 지음/ 승영조 옮김/ 동아일보사 펴냄/ 462쪽/ 1만2000원
표절 논쟁은 예술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티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는 공저 ‘예수는 신화다’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 이야기가 이교도 신화의 표절이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예수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메시아의 전기가 아니라, 이교도의 유서 깊은 이야기들을 토대로 한 하나의 신화일 뿐이며, 초기 로마 교회는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로마 교회는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을 말살하기 위해 잔혹한 계획을 세우고, 이교도의 신성한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말살했다.”
이들이 표절의 근거로 내세운 것은 이교도 신인 오시리스나 디오니소스의 신화와 예수의 전기가 갖는 유사성이다. 육체를 가진 신이며 구세주이고 하느님의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인간 처녀로 동정녀였다, 12월25일 동굴 혹은 누추한 외양간에서 태어났으며, 신도들에게 세례의식을 통해 다시 태어날 기회를 주고, 결혼식장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행했다, 세상의 죄를 대신해 죽고 사흘 만에 부활했다 등등 예수의 이야기로만 알았던 부분들이 이미 고대 신앙에 그대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우리를 곤혹스럽게 한다.
예수를 둘러싼 표절 논쟁의 역사는 놀랍게도 서기 170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리스도교 비판에 앞장섰던 풍자가 켈수스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수많은 아이디어는 고대 그리스인들에 의해 더 잘, 그리고 더 일찍이 표현되어 왔다”며 경멸을 감추지 않았다. 켈수스 외에도 여러 이교도들이 그리스도교 교리가 플라톤 철학을 모방했다고 몰아세우자, 4세기 무렵 그리스도교측은 플라톤이 오히려 모세를 표절했다고 주장했고, 이어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은 유대인 예언자 예레미야를 모방했다는 반박론을 펴기도 했다.
이처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표절 논쟁이 ‘예수는 신화다’에서 재현된다. 두 저자는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소아시아의 아티스, 시리아의 아도니스, 페르시아의 미트라스, 로마시대의 바쿠스는 여러 신이 아니라 하나의 신이었다고 말한다. 기원전 6세기부터 시작된 이 신앙을 그리스어로 ‘미스테리아’(영어 Mysteries)라 부르며, 유대인들이 이 고대 미스테리아를 받아들여 예수 미스테리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면 표절이 아니라 각색이 되겠지만, 초기 로마 교회는 표절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악마이론까지 동원했다. 2~3세기 초 ‘교회의 아버지’(敎父로 불림)들은 이교도와 예수 이야기의 유사성을 ‘악마의 모방’이라고 둘러댔다. 즉 하느님의 진짜 아들(예수)이 지상에 도래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악마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그의 생애 이야기를 베껴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저자들이 원본이라고 주장하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이 책의 첫 장 제목은 ‘생각할 수 없는 생각’이다. 예수가 이교도의 신이었으며 그리스도교는 이교 신앙의 이단적 산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2000여년의 금기를 깨는 위험천만한 시도다. 그러나 두 저자는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한 ‘생각할 수 없는 생각’을 시도했다.
예수가 실존인물이었다는 증거는 있는가. 초기 그리스도교인 바울은 정말 반영지주의자(그노시스를 이단으로 취급)였을까? 영지주의자들은 이미 예수 이야기가 신화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자 스스로 밝혔듯 추리소설 속의 탐정처럼 이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종교적 분파와 권력 투쟁,위조 문서와 허위 인물들, 편집되고 추가된 편지들, 역사적 증거의 대대적인 말살 사실을 찾아냈다. 그리고 예수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신비한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 치밀하게 꾸며낸 영적 비유일 뿐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이들은 이 연구로 인해 기독교를 부정하기는커녕 신앙이 더 확고해졌다고 주장한다. 예수의 역사적 실존에 연연하지 않고 예수를 신화로 이해함으로써 보편적인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1999년 영국에서 이 책이 출간되자 학계와 종교계가 격렬한 논쟁을 벌인 것처럼 한국 교회가 과연 이 주장을 화제로 삼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통 기독교의 입장에서 분명 불경스럽고 불편한 책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신화다/ 티모시 프리크, 피터 갠디 지음/ 승영조 옮김/ 동아일보사 펴냄/ 462쪽/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