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가슴곰(이하 반달곰) 복원을 위해 지난해 9월 국립환경연구원이 새끼 반달곰 네 마리를 지리산에 방사한 후 반달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부쩍 커졌다. 방사된 곰은 모두 국내 곰사육 농장에서 가려 뽑은 개체들.
그렇다면 국내 사육중인 반달곰은 몇 마리나 될까. 답은 1169마리다. 흑곰, 불곰 등 다른 종까지 합하면 국내 전체 사육곰은 1600여 마리에 달한다(지난해 3월 환경부 집계).
국내 야생곰(반달곰)이 다섯 마리로 추정되는 만큼 이들 사육곰은 사실상 국내에 존재하는 곰 개체의 전부나 다름없다. 묘하게도 이 곰들은 모두 오갈 데 없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 이 ‘만화 같은’ 사연은 아직 보도된 바 없다.
“쳐다보기도 싫어요.” 3월4일 경기도 내 한 곰사육 농장. 농장주 A씨(62)는 “곰이 애물단지”라며 한숨부터 내쉰다. 이곳의 사육곰은 140여 마리. A씨는 1987년 곰 사육을 시작했다. 마리당 600만원에 수입했지만, A씨는 지난 15년간 단 한 마리의 곰도 되팔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곰들의 ‘일용할 양식’인 집돼지용 사료만 꾸준히 먹여주는 것. 그 결과 사료비와 곰사육사 인건비, 사육시설비 등으로 15년간 10억원을 날렸다.
“적자 때문에 사육을 포기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포기도 못해요. 곰을 폐기처분하면 범법자가 됩니다. 환경부가 곰사육 농가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내놓지 않는 한, 모든 곰이 자연사할 때까지 생돈 들여 밥 먹여줘야 한다는 결론이죠.” A씨의 푸념대로 곰들이 자연사한다 해도 곰들의 ‘무위도식’은 계속된다. 대를 이어 증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육곰이 사유재산인데도 가축이 아닌 ‘곰’이기 때문에 사육업자가 자의로 처분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 국내 일반농가의 곰 사육이 허가된 때는 1984년. 1972년 도입된 야생조수 인공사육제도에 의거해 농가소득 증대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다. 당시 수입 곰은 ‘재수출’ 용도로 한정돼 500여 마리가 국내에 반입됐다. 이후 곰이 수입된 적은 없다. 수입 당시의 계획대로라면 성장하거나 증식된 곰들은 마땅히 수출됐어야 하지만, 외국의 경우 곰이 남아돌아 수입하려는 곳은 전무하다. 결국 재수출된 곰은 단 한 마리도 없다.
게다가 한국이 지난 93년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대한 협약’(CITES)에 가입함으로써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CITES는 근본적으로 곰의 국제거래를 엄격히 제한해 각국은 좀처럼 곰이나 곰 부위의 국제 거래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처치 곤란인 사육곰을 국내에서 분양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연구용으로 기증하는 것을 제외하곤 모든 곰의 국내 거래는 불법. 사육곰까지 야생동물로 보는 현행 ‘조수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곰들도 열악한 환경에 놓인다. 수익이 전무하므로 사육업자들은 사육시설을 늘리지 않는다. 자연히 많은 곰들이 한 우리에 합사돼 위생상 좋지 않은 데다, 합사된 곰들이 다투다 폐사하는 사례마저 빈번하다. 곰들끼리 잡아먹기도 한다.
A씨의 농장에도 새끼를 밴 몇몇 곰을 제외한 대다수 곰들은 5∼6마리씩 합사돼 있다. 곰들의 증식으로 불량한 사육관리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사육업자들의 토로다. 또 곰들이 밀집해 있다 보니 근친교배로 인한 유전적 열세현상이 발생하고, 원산지가 다른 곰들이 한데 뒤섞여 사육개체의 유전적 잡종화도 두드러지고 있다.
곰사육협회 박신일 회장(62)은 “환경부에 수차례 현실성 있는 대안 마련을 요청했으나 여태 공식 답변을 못 받았다”며 “국내 곰사육업자가 80여명으로 소수이기 때문에 환경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 같다”고 주장한다.
현행법상 국내에서 곰을 처분할 길이 전혀 없지는 않다. ‘조수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은 98년 12월부터 24년(반달곰 경우) 이상 된 노후 곰에 한해 재수출용이 아닌 가공품 재료로 용도 변경한 뒤 처분할 수 있도록 예외규정을 뒀다.
그러나 이 규정도 비현실적이란 지적이다. “학계에선 곰의 평균수명을 25∼30년으로 잡지만, 이 나이에 이르기 전 질병이나 싸움 끝에 폐사하는 곰이 상당수다. 국내 사육곰 중 20년 이상 된 곰은 한 마리도 없다”는 게 사육업자들의 항변이다.
서울대공원 관리사업소 관계자는 “곰의 앞 어금니나 송곳니를 잘라 횡단면을 측정해 나이를 추산하는 방법이 있지만, 정확도가 떨어진다. 더구나 곰이 20년 이상 살면 노화가 심해 대부분 이빨이 다 빠져버린다”고 귀띔한다. ‘24년’이란 노화 기준 자체도 문제인 셈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사육곰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정책적 고려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선의 방책은 사육곰을 적정 개체수로 유지하되 증식에 따른 잉여개체 가운데 반달곰 복원용이나 연구용을 제외한 활용가치가 낮은 ‘잡곰’들을 도태시켜 활용한다는 것.
대한본초학회 이영종 회장은 “CITES를 무시하고 ‘활웅취담’(活熊取膽)을 고집하는 중국을 따르자는 건 아니다”고 전제한 뒤 “국내에서 음성거래되는 웅담분(粉)의 대부분을 중국 여행객들이 외화를 낭비하며 몰래 구입해 오고 있고, 국내 실수요도 있는 만큼 차라리 일정 범위 내에서 사육곰을 의약품 용도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경우 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투명성을 기해야 한다는 것.
사육곰 문제는 판로를 확보하지 않은 채 곰부터 들여온 사육업자들의 자승자박(自繩自縛)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유재산임이 명백한 사육곰에 대해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게 돼 있는 메커니즘 또한 자본주의에서 보기 드문 모순이 아닐까. 게다가 한국에 곰을 수출한 국가들은 적정개체를 유지하려 곰 포획을 허용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자체 서식곰도 아닌 수입곰을 되레 엄격히 보호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수입 반달곰은 천연기념물도 아니다.
이와 관련, 환경부 관계자는 “사육업자의 애로를 모르는 게 아니다. 국가자원이란 측면에서 곰의 적절한 활용 문제를 신중히 검토중이다. 하지만 국제 동향도 파악해야 하고, 환경단체와 동물보호단체의 반발도 감안해야 하므로 선뜻 결정할 수 없는 형편”이라 밝혔다. 그러나 “환경부가 세워둔 반달곰 추가방사 계획이 만일 실행되면 추가 방사용 곰들을 어떻게 마련할 생각인가”란 질문에는 “아직 예산이 책정되지 않아 뭐라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둘 중 하나다. 국내 서식 반달곰에 가장 근접한 유전자를 지닌 외국곰을 선발해 들여오든지, 지난해처럼 국내 사육곰을 대상으로 유전자검사를 한 뒤 사육업자들로부터 우량한 곰을 기증받는 방법밖에 더 있겠나.” 곰사육협회 관계자의 이 말은 환경부와 사육업자가 대립이 아닌 협력관계에 있어야 함을 시사한다. 사육곰을 둘러싼 딜레마는 언제 해결될까. 환경부가 곰처럼 ‘묵묵부답’하는 지금도 곰들은 점점 늘어만 간다.
그렇다면 국내 사육중인 반달곰은 몇 마리나 될까. 답은 1169마리다. 흑곰, 불곰 등 다른 종까지 합하면 국내 전체 사육곰은 1600여 마리에 달한다(지난해 3월 환경부 집계).
국내 야생곰(반달곰)이 다섯 마리로 추정되는 만큼 이들 사육곰은 사실상 국내에 존재하는 곰 개체의 전부나 다름없다. 묘하게도 이 곰들은 모두 오갈 데 없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 이 ‘만화 같은’ 사연은 아직 보도된 바 없다.
“쳐다보기도 싫어요.” 3월4일 경기도 내 한 곰사육 농장. 농장주 A씨(62)는 “곰이 애물단지”라며 한숨부터 내쉰다. 이곳의 사육곰은 140여 마리. A씨는 1987년 곰 사육을 시작했다. 마리당 600만원에 수입했지만, A씨는 지난 15년간 단 한 마리의 곰도 되팔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곰들의 ‘일용할 양식’인 집돼지용 사료만 꾸준히 먹여주는 것. 그 결과 사료비와 곰사육사 인건비, 사육시설비 등으로 15년간 10억원을 날렸다.
“적자 때문에 사육을 포기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포기도 못해요. 곰을 폐기처분하면 범법자가 됩니다. 환경부가 곰사육 농가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내놓지 않는 한, 모든 곰이 자연사할 때까지 생돈 들여 밥 먹여줘야 한다는 결론이죠.” A씨의 푸념대로 곰들이 자연사한다 해도 곰들의 ‘무위도식’은 계속된다. 대를 이어 증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육곰이 사유재산인데도 가축이 아닌 ‘곰’이기 때문에 사육업자가 자의로 처분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 국내 일반농가의 곰 사육이 허가된 때는 1984년. 1972년 도입된 야생조수 인공사육제도에 의거해 농가소득 증대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다. 당시 수입 곰은 ‘재수출’ 용도로 한정돼 500여 마리가 국내에 반입됐다. 이후 곰이 수입된 적은 없다. 수입 당시의 계획대로라면 성장하거나 증식된 곰들은 마땅히 수출됐어야 하지만, 외국의 경우 곰이 남아돌아 수입하려는 곳은 전무하다. 결국 재수출된 곰은 단 한 마리도 없다.
게다가 한국이 지난 93년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대한 협약’(CITES)에 가입함으로써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CITES는 근본적으로 곰의 국제거래를 엄격히 제한해 각국은 좀처럼 곰이나 곰 부위의 국제 거래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처치 곤란인 사육곰을 국내에서 분양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연구용으로 기증하는 것을 제외하곤 모든 곰의 국내 거래는 불법. 사육곰까지 야생동물로 보는 현행 ‘조수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곰들도 열악한 환경에 놓인다. 수익이 전무하므로 사육업자들은 사육시설을 늘리지 않는다. 자연히 많은 곰들이 한 우리에 합사돼 위생상 좋지 않은 데다, 합사된 곰들이 다투다 폐사하는 사례마저 빈번하다. 곰들끼리 잡아먹기도 한다.
A씨의 농장에도 새끼를 밴 몇몇 곰을 제외한 대다수 곰들은 5∼6마리씩 합사돼 있다. 곰들의 증식으로 불량한 사육관리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사육업자들의 토로다. 또 곰들이 밀집해 있다 보니 근친교배로 인한 유전적 열세현상이 발생하고, 원산지가 다른 곰들이 한데 뒤섞여 사육개체의 유전적 잡종화도 두드러지고 있다.
곰사육협회 박신일 회장(62)은 “환경부에 수차례 현실성 있는 대안 마련을 요청했으나 여태 공식 답변을 못 받았다”며 “국내 곰사육업자가 80여명으로 소수이기 때문에 환경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 같다”고 주장한다.
현행법상 국내에서 곰을 처분할 길이 전혀 없지는 않다. ‘조수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은 98년 12월부터 24년(반달곰 경우) 이상 된 노후 곰에 한해 재수출용이 아닌 가공품 재료로 용도 변경한 뒤 처분할 수 있도록 예외규정을 뒀다.
그러나 이 규정도 비현실적이란 지적이다. “학계에선 곰의 평균수명을 25∼30년으로 잡지만, 이 나이에 이르기 전 질병이나 싸움 끝에 폐사하는 곰이 상당수다. 국내 사육곰 중 20년 이상 된 곰은 한 마리도 없다”는 게 사육업자들의 항변이다.
서울대공원 관리사업소 관계자는 “곰의 앞 어금니나 송곳니를 잘라 횡단면을 측정해 나이를 추산하는 방법이 있지만, 정확도가 떨어진다. 더구나 곰이 20년 이상 살면 노화가 심해 대부분 이빨이 다 빠져버린다”고 귀띔한다. ‘24년’이란 노화 기준 자체도 문제인 셈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사육곰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정책적 고려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선의 방책은 사육곰을 적정 개체수로 유지하되 증식에 따른 잉여개체 가운데 반달곰 복원용이나 연구용을 제외한 활용가치가 낮은 ‘잡곰’들을 도태시켜 활용한다는 것.
대한본초학회 이영종 회장은 “CITES를 무시하고 ‘활웅취담’(活熊取膽)을 고집하는 중국을 따르자는 건 아니다”고 전제한 뒤 “국내에서 음성거래되는 웅담분(粉)의 대부분을 중국 여행객들이 외화를 낭비하며 몰래 구입해 오고 있고, 국내 실수요도 있는 만큼 차라리 일정 범위 내에서 사육곰을 의약품 용도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경우 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투명성을 기해야 한다는 것.
사육곰 문제는 판로를 확보하지 않은 채 곰부터 들여온 사육업자들의 자승자박(自繩自縛)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유재산임이 명백한 사육곰에 대해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게 돼 있는 메커니즘 또한 자본주의에서 보기 드문 모순이 아닐까. 게다가 한국에 곰을 수출한 국가들은 적정개체를 유지하려 곰 포획을 허용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자체 서식곰도 아닌 수입곰을 되레 엄격히 보호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수입 반달곰은 천연기념물도 아니다.
이와 관련, 환경부 관계자는 “사육업자의 애로를 모르는 게 아니다. 국가자원이란 측면에서 곰의 적절한 활용 문제를 신중히 검토중이다. 하지만 국제 동향도 파악해야 하고, 환경단체와 동물보호단체의 반발도 감안해야 하므로 선뜻 결정할 수 없는 형편”이라 밝혔다. 그러나 “환경부가 세워둔 반달곰 추가방사 계획이 만일 실행되면 추가 방사용 곰들을 어떻게 마련할 생각인가”란 질문에는 “아직 예산이 책정되지 않아 뭐라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둘 중 하나다. 국내 서식 반달곰에 가장 근접한 유전자를 지닌 외국곰을 선발해 들여오든지, 지난해처럼 국내 사육곰을 대상으로 유전자검사를 한 뒤 사육업자들로부터 우량한 곰을 기증받는 방법밖에 더 있겠나.” 곰사육협회 관계자의 이 말은 환경부와 사육업자가 대립이 아닌 협력관계에 있어야 함을 시사한다. 사육곰을 둘러싼 딜레마는 언제 해결될까. 환경부가 곰처럼 ‘묵묵부답’하는 지금도 곰들은 점점 늘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