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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난 누리꾼들, 경찰이 만만해?

촛불집회 관련 집단 자수로 맞장 … “정부 고위층 도덕적 결함과 경찰권위 실추 탓”

뿔난 누리꾼들, 경찰이 만만해?

뿔난 누리꾼들,  경찰이 만만해?
자수하겠습니다.” 5월14일 경찰청 인터넷 홈페이지인 사이버경찰청 열린게시판에는 1000명 넘는 자칭 ‘자수자’들이 올린 글로 과부하가 걸렸다. 보통 때는 하루 10개 남짓한 글이 올라오던 터였다. 완전실명제로 운영되는 경찰청 게시판에 이처럼 많은 누리꾼(네티즌)이 ‘자수’를 명목으로 글을 올린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5월13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문화제 형식을 빌린 미신고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주최자들을 나중에라도 반드시 사법처리할 것”을 밝혔다. 또한 경찰은 포털사이트 게시판 등에 광우병 ‘괴담’을 퍼뜨린 이들의 신원 확보에 주력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형법상 명예훼손죄, 전기통신기본법 위반죄 적용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경찰조사 대상에는 탄핵서명을 주도한 ‘안단테’라는 ID의 고교 2학년생 황모 군이 포함됐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사이버경찰청 게시판에 일반 누리꾼들의 글이 폭주하기 시작한 건 이러한 내용이 알려진 뒤부터다. 수많은 누리꾼이 ‘자수합니다’ ‘내가 안단테다’ ‘나 잡아가시오’ 등의 제목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과 어청수 경찰청장 등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공권력 집행이 불공정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면서 불이 붙었다.

“이전 정부의 허술한 법집행이 사태 야기” 해석도

“집회를 평화적으로 하면 도와줘야 하는 게 경찰 아닌가요? 국민의 지팡이라고 광고해놓고 그 지팡이로 국민을 잡겠다는 것인가요?”



“허위사실 유포가 수사 대상입니까? ‘광우병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건 허위사실 아니고 뭡니까. 신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정부부터 수사하세요!”(사이버경찰청 열린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에서)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집회 역시 확산됐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이에 앞서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장관 고시를 연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5월14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평일인데도 2만여 명의 시민이 모여들었다. 대전 대구 부산 등 전국 20여 개 도시에서도 촛불집회가 열렸다. 촛불집회가 이번처럼 전국적으로 열린 것은 2002년 효순·미선 양 추모행사,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 이후 처음이다.

도대체 왜 이번 일이 이처럼 커지게 된 것일까? 현재의 사태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대표적 공권력 집행기관인 경찰, 나아가 법질서의 권위가 실추된 사실을 지적한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는 “공권력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정당성이 공유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공권력 집행의 정당성은 도덕적 우위에서 나온다”고 전제한 뒤 “현재 대통령이나 정부 고위층의 도덕적 결함이 크게 드러나면서 공권력을 집행하는 권력자와 기관에 대한 정당성에 의문이 생긴 것”이라고 해석했다.

“‘나보다 큰 죄를 지은 대통령도 있는데 내가 광우병을 막겠다고 난리치는 게 무슨 문제인가’ 하는 식이 된 거죠. 그런데 여기에 경찰이 앞서서 나서니까 부당한 권력의 하수인처럼 보일 수밖에 없고요. 이런 식으로 공권력에 대한 반발이 심해지면 법치가 무너지는데, 그만큼 위험한 일도 없습니다.”(황상민 교수)

황 교수처럼 현 정부 고위층의 도덕적 결함과 경찰권력의 실추를 연결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전 정부의 허술한 법집행 전력이 지금의 사태를 야기했다는 해석도 있다. 안동근 한양대 교수(신문방송학) 역시 이번 사태를 “법질서 집행기관의 권위가 약화된 것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해석하지만, 그 원인은 “노무현 정부의 낮은 법 수호 의지가 오늘과 같은 법질서에 대한 존경심 약화로 이어지게 된 것”으로 본다. 그는 “그동안 불법시위와 같은 불법행위를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인 양 묵인했기 때문에 이 같은 일들이 습관적으로 일어났고, 새 정부가 이를 규제하려는 것에 반발이 커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촛불집회 주최자와 인터넷 괴담 유포자를 사법처리하기로 한 경찰 방침에 대한 견해도 다양하다. 보수논객으로 잘 알려진 전원책 변호사는 촛불집회가 “문화제를 빙자한 정치적 집회인 것이 확실한 만큼, 집시법을 위반한 사항이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 변호사는 또 “댓글 등과 같이 가벼운 글은 넘어갈 수도 있지만 사회 소요를 목적으로 조직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글은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NGO대학원)는 “광우병 관련 인터넷 괴담을 과연 수사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인터넷상에 떠도는 근거 없거나 과장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이를 모두 수사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 정치적으로 이슈가 된 내용만 표적 수사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진중권 중앙대 교수(독문학)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이나 정권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했던 사람들이 3공화국이나 5공 때처럼 신공안 정국을 맞고 있는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당사자인 대통령이 명예훼손 고소도 하지 않았는데 명예훼손이라며 경찰이 먼저 조사하는 것은 국민이 아닌 대통령에게 코드를 맞추기에 급급한 행태죠. 더불어 평화롭게 진행된 문화제에서 대통령을 비난하는 발언이 나왔다고 자기들 마음대로 불법집회로 규정한 겁니다. 합법과 불법 여부를 경찰이 규정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진중권 교수)

경찰 급히 불 끄려다 불 키운 격

이런 가운데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에 대한 문제점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2002년 효순·미선 양 추모집회에서는 당시 범대위 관계자들이 집시법 위반으로 기소돼 2005년 유죄판결을 받았다. 현행 집시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만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하여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한 경우에는 관할경찰관서장은 질서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도 옥외집회를 허용할 수 있다”(집시법 10조)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이는 헌법의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조항과 모순된다는 지적이 있다. 공익변호사단체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신고가 필요한 것은 만일의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현재 경찰과 사법기관은 집회의 자유라는 기본권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이 직권을 남용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어청수 경찰청장이 강한 수사의지를 보인 것과 달리 이후 경찰은 눈에 띄는 견해는 밝히고 있지 않다. 송강호 경찰청 수사국장은 “인터넷 괴담의 경우는 좀더 검토해봐야 한다”면서 “내사를 진행하다 사법처리가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관련자를 소환해 조사하겠다”고 언론에 밝혔다. 그러나 경찰 내부에서도 사법처리 시기나 합법성과 관련한 의견이 분분하다는 평이다. 급히 불을 끄려다 되레 불을 키운 경찰의 행보와 그에 따른 누리꾼들의 대응이 주목된다.



주간동아 2008.05.27 637호 (p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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