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보도가 사실이라면 다른 기자들은 ‘물을 먹은’ 셈이다. 더구나 최근 서울 강남 아파트 값 폭등에 대한 정부 대책이 초미의 관심사였던 만큼 아침부터 본사 데스크로부터 불호령을 들어야 했다. 기자들은 이 기사의 취재원인 경기도 고위관계자가 한현규 정무부지사란 사실을 곧 알아냈고, 한 부지사를 경기도청 내 기자회견장으로 ‘소환’했다. 특정 언론사 기자에게만 정보를 흘린데 대한 항의와 함께 자세한 내용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한 부지사의 설명을 들은 기자들은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 부지사가 “‘남서울 프로젝트’는 과거 건교부에 근무할 때부터 개인적으로 구상해온 것으로 현재 밑그림을 그리고 있을 뿐”이라고 해명했기 때문이다. 한 부지사는 행정고시 20회 출신으로 건교부의 기획예산담당관 건설경제국장 고속철도기획단장 등을 거친 ‘수도권 개발 전문가’. 손학규 지사가 청와대에 요청해 현직 건설교통비서관이던 그를 정무부지사로 발탁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남서울 프로젝트’ 생태계 파괴 우려 목소리 높아

당장 시민단체들과 전문가들의 반발이 쏟아져 나왔다. 시민단체들은 ‘마구잡이’ 신도시 건설이 서울의 ‘허파’인 그린벨트 훼손을 불러올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건교부가 겉으로는 경기도의 이런 마스터플랜에 회의적인 입장을 밝히고는 있지만 한 부지사가 건교부 출신이라는 점에서 속으로는 건교부가 경기도를 앞세워 자기 부처 뜻을 관철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이 ‘남서울 프로젝트’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는 서울 남부지역의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 협성대 도시계획과 이상문 교수는 “청계산은 서울 남쪽에 버티고 있는 유일한 생태녹지 거점”이라면서 “청계산 주변에 신도시를 건설하면 이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울과 수원이 도시로 연결되고 결국 서울~수원~인천을 삼각점으로 해서 그 안에 거대한 시가지가 조성되는 셈이어서 심각한 교통·환경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건교부의 이런 방침에 대해 수도권 지역에 마땅한 택지가 바닥난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러나 그린벨트 지역을 ‘마구잡이’로 택지로 개발하는 것은 환경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 심지어 환경부도 건교부의 마구잡이 택지개발에 대해서는 브레이크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건교부는 원래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 예정지 11곳을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할 예정이었다. 환경부는 이 가운데 사전 환경성 검토 결과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경기 시흥시 정왕지구에 대해서는 ‘불가’ 입장을, 남양주시 가운지구와 부천시 송월지구 등 2곳은 ‘원칙적 불가’ 입장을 밝혔다.
환경부는 정왕지구의 경우 시화공단과 반월공단이 불과 1.2km 떨어져 있어 극심한 대기오염과 악취 발생이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또 가운지구는 지금까지 사실상 유수지 기능을 해온 저지대농지로서 택지로 개발될 경우 침수 피해를 입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됐다. 아울러 송월지구 역시 녹지공간이 가뜩이나 부족한 부천시의 산림을 훼손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교부의 그린벨트 택지개발 방침에 대해서는 해당지역 주민들도 크게 반발하고 있다. 수도권 8개 지역 중 경기의 군포 부곡, 의왕 청계지역 주민들은 7월3일 그린벨트 해제 반대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환경정의시민연대 및 경실련 도시개혁센터와 함께 건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70년대 초반 그린벨트 제도가 도입된 이후 그린벨트 내 주민들이 개발 이익을 포기하면서 그린벨트 유지를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환경정의시민연대 김홍철 부장은 “일부의 지적대로 주민들의 청원이 더 많은 보상을 받아내기 위한 차원이라고 해도 정부의 밀어붙이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그린벨트 해제 및 조정에 대한 기본지침을 제시하기 위한 수도권광역도시계획(안)조차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하는 것은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건교부와 경기도가 ‘신도시’ 건설을 들고 나오는 것은 기본적으로 아파트 공급 물량을 늘려 아파트 값 폭등을 막아보자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9·4 부동산 안정대책’에서 수도권 택지개발 추진 지구 67곳 중 판교를 포함한 11개 지구에 대해 2004년까지 4만6000 가구를 조기에 공급하기로 한 것도 이런 차원이다.
그러잖아도 폭발 직전, 국토 균형 개발 포기하나
이런 의도가 일부 설득력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90년대 초 5개 신도시 입주가 시작되면서 서울 강남 아파트 값이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 문제는 앞으로도 똑같은 상황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오고 있다는 점. 일각에선 부동산 값도 잡지 못하고 수도권지역의 ‘마구잡이’ 개발로 수도권 비대화만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우선 정부의 이런 구상이나 계획이 오히려 아파트 값 상승을 불러올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도시계획 설계 용역회사 H사 S이사는 “신도시 건설 구상을 섣불리 발표하다 보면 신도시 후보 지역에 대한 부동산투기를 유도하게 되고 결국 이들 지역 지가가 상승해 나중에 택지조성 원가를 끌어올림으로써 아파트 값 상승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 건교부가 발표한 ‘제2 강남’ 후보지에서는 벌써 땅값 상승 조짐이 보이고 있다. 건교부는 신도시 후보지로 서울 반경 50km 정도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부동산업계는 건교부가 강남 수요를 분산시키려면 결국 서울 반경 20∼30km의 수도권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해야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양재 성남 서울공항 과천 판교 등 청계산 주변 지역과 광명 안산 시흥시를 잇는 경부고속철도 광명역 주변을 유력한 후보지로 꼽고 있다.
협성대 이상문 교수는 “수도권지역에 집중적으로 택지를 개발하는 것은 그러잖아도 폭발 직전의 수도권 집중 문제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수도권 아파트 공급 물량 확대를 통한 부동산 안정과 수도권 개발 억제를 통한 국토의 균형 개발이라는 두 가지 정책 목표 가운데 균형 개발 목표를 포기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것.
택지 공급을 위한 신도시 건설 및 그린벨트 해제 자체가 난센스라는 지적도 있다. 환경정의시민연대 김홍철 부장은 “기존 도시 안의 미개발 용지와 시가화 예정지를 더하면 1억2300만평에 이른다”면서 “이 가운데 절반만 용적률 1005의 저밀도 주거지로 사용해도 400만명 이상 수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급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먼 미래를 내다보는 정부의 신도시 구상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