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원 이철현씨(33·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도 김씨와 비슷한 경우. 20여 차례나 카파라치에게 적발된 이씨는 적신호시엔 횡단보도가 없는 사거리에서조차 우회전을 하지 않는다. 카파라치 덕에 모범운전자가 된 셈이다. 이씨는 카파라치에게 고속도로에서 전용차선위반으로 하루에 3장을 찍힌 적도 있고, 같은 장소에서 수개월에 걸쳐 불법유턴하는 모습을 다섯 차례나 촬영당하기도 했다. 그는 “도로 시스템상 신호와 차선을 위반할 수밖에 없는 장소가 많다”며 “사고 예방이 신고포상금제의 목적이라면 운전자가 분명하게 보이는 위치에서 촬영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열변을 토했다.
대도시의 교차로와 고속도로를 카파라치들이 점령했다. 경찰에 따르면 교통법규위반 신고보상제 신고 건수가 지난해 3월 시행 이후 7월 말까지 400만건을 넘어섰고 보상금 지급액도 100억원을 돌파했다. 교통법규위반 차량을 전문적으로 찍는 카파라치의 수는 전국적으로 2500여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만 해도 7월까지 교통법규위반 신고 건수는 모두 130만2046건, 신고포상금은 28억6158만원에 이른다.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무려 9000여만원의 포상금을 타낸 카파라치도 있을 정도다.
전국적으로 2500여명 활동

9월9일 서울 강남구 신사전화국 인근. 10분이면 중앙선침범을 하는 차량을 4~5대는 족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위반 차량이 많은 곳이다. 운전자를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진하게 선탠을 한 승합차 1대가 주차중이다. 아날로그식 수동카메라로 승합차 안에서 셔터를 눌러대는 J씨는 주로 강남 서초 송파구 일대의 교차로를 돌며 위반차량을 찍는 경력 1년3개월의 베테랑 카파라치. 그는 한 달에 700~800건 정도는 너끈히 찍는다고 했다. 건당 포상금이 3000원이니 월 200만~250만원의 포상금을 챙긴다는 얘기다.
그는 “카파라치들은 아무리 목이 좋은 곳이라도 2~4주일 이상 머물지 않는다”면서 “새로운 장소 개발이 수입의 90%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평소에 교차로들의 유턴 지점을 꼼꼼히 살펴 유턴 신호가 짧은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는 것. “좋은 장소를 발견해도 꼼꼼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차량 흐름과 신호체계를 살피고, 위반차량이 많은 시간대도 분석합니다. 시간대별로 차량들이 위반을 하는 위치가 10m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하거든요.”

카파라치의 은신처
논현역사거리 역삼역사거리 제일생명사거리 신사역사거리 강남구청사거리 차관아파트사거리 등 강남의 대부분의 교차로에서 선탠을 짙게 한 차량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 중 절반 가량을 카파라치라고 보면 된다. 유턴이 가능한 작은 교차로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J씨는 “서울의 다른 자치구도 활동하는 인원이 적다 뿐이지 교통체증으로 위반이 많은 곳엔 반드시 카파라치가 숨어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나들목·휴게소 인근 주행 요주의
최근 베테랑 카파라치들은 강남을 버리고 고속도로와 지방국도, 인천 수원 부천 등 경기도의 중대형 도시들로 이동하고 있다. 카파라치의 활동무대가 고속도로 등으로 옮겨가면서 신고 유형도 바뀌었다고 한다. 도심 도로에서 일어나는 중앙선침범 신고가 크게 줄어들고 고속도로의 갓길통행과 전용차선위반 신고가 늘고 있는 것.

9월8일 오후 경부고속도로 서울~수원 구간. 서둘러 성묘를 다녀온 차량과 나들이 차량이 몰려들어 고속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전용차선위반과 갓길통행을 카메라에 담는 카파라치들에겐 최적의 조건. 운전자들이 위반의 유혹을 쉽게 느끼는 나들목과 휴게소 인근이 이들의 주요 활동무대다.
판교IC 인근에서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는 C씨는 서울 도심에서 활동하는 카파라치들과는 다소 달랐다. 그는 담쟁이 넝쿨에 카메라를 숨겨놓고 담배를 태워가며 리모컨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지난해 여름부터 카파라치 일을 시작했다는 C씨가 지금까지 찍은 위반 사진은 2만여장. 6000만원 이상을 포상금으로 챙겼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입에 대해 묻자 C씨는 “필름값, 인화료, 기름값 등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최근엔 경찰의 심사까지 까다로워져 실수입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했다. “하루에 1000장 정도는 찍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뛰어들었는데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운이 아주 좋은 날에도 70~80장 이상 찍기는 힘듭니다. 야간에도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밤에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스트로브 빛 때문에 운전자에게 들켜 싸움이 나기 십상이거든요.”
고속도로 갓길 주변 축대를 오가는 사람들이나 인적이 드문 숲 속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C씨와 같은 고속도로 카파라치들이다. 고속도로 카파라치들의 은폐, 엄폐 기술은 혀를 내두르게 만들 정도. 대형 드럼통을 설치하고 그 안에서 사진을 찍는가 하면 도로에 박스형 구조물을 설치해놓고 카메라를 숨겨놓은 뒤 선을 연결해 리모컨으로 위반차량을 카메라에 담기도 한다. C씨는 “담쟁이 넝쿨이 많은 곳이나 숲이 우거진 곳엔 카파라치가 하나씩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교통사고 예방이 돈벌이로 전락
카파라치가 모여드는 곳의 상당수는 구조적으로 신호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곳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경기도 부천 소사구 소사삼거리. 이 지역에선 1주일 동안 약 6000건의 위반 사례가 파파라차들에게 적발되기도 했다. 운전자들은 경인옛길에서 소사삼거리 경인로와 만나는 방향으로 가다가 만나는 마지막 횡단보도 위 신호등의 빨간 신호를 무시하고 그 앞 50여m 지점에 있는 삼거리 신호등 앞 정지선까지 진행하다 카파라치들에게 걸려든다. 운전자들은 “보행자 신호등이 빨간색이면 그 위의 신호등이 파란 신호등일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다”며 “신호체계의 결함 때문에 위반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강남지역 유턴 위반의 경우도 도로 중앙에 불법유턴을 막는 가드레일 등을 세우고 유턴을 허용하는 백색 점선 구역을 늘리면 교통법규 위반이 크게 줄어들 거라는 지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카파라치의 단속에 대한 운전자들의 저항도 만만찮다. 운전자들은 카파라치들의 상당수가 교통안내 표기가 허술해 운전자들이 위반을 할 수밖에 없는 곳에 집중돼 있다고 지적한다. 안티카파라치 사이트(www.antiphoto.com)를 운영하는 이원영씨는 “시민들을 이간질하는 교통위반신고제는 폐지돼야 한다”며 “시민 모두를 예비범법자로 보는 정부의 정책은 재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통위반신고제는 최근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크게 줄어든 이유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동안 교통법규를 제멋대로 어겨온 운전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몰래카메라를 동원한 원시적 단속이 일시적 효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선진교통문화를 이끌어내기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교통위반신고제가 본말이 전도돼 교통사고 예방 목적이 아니라 신고자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추석 귀성길에도 교차로와 고속도로를 점령한 카파라치와 운전자들 사이의 실랑이가 이곳저곳에서 벌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