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은 수비형 미드필더-플레이메이커-좌우 윙포워드 등 어느 포지션이든 다 소화할 수 있다. 박주영은 원톱-처진 스트라이커-좌우 윙포워드 등 “공격은 어느 자리든 문제없다”고 할 만큼 만능이다. 비교적 가녀린 체격인데도 몸싸움에서 쉽게 밀리지 않는 것도 비슷하다.
공을 멈추지 않는 것도 닮았다. 흐르는 공을 그대로 살리면서 플레이 한다. 수비수들이 이들을 막으려면 흐르는 공의 움직임을 보는 한편, 드리블해 들어오는 사람의 움직임까지 살펴야 한다. 수비수로서는 한마디로 골치 아픈 존재들이다.
박지성은 평발이다. 발바닥 가운데 부분이 오목 들어가지 않고 거의 편평하다. 많이 뛰면 발바닥 가운데나 뒷부분이 화끈거리고 쑤신다. 발목도 시큰거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무릎과 허리로 이어진다. 발 생김새도 울퉁불퉁한 게 꼭 ‘못생긴 모과’ 같다. 상처투성이에 여기저기 굳은살. 게다가 엄지발가락은 다른 발가락보다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갔다.
다행히 박지성은 ‘2개의 심장’이 달렸다. ‘전차 엔진’을 달고 뛴다. 심장박동수가 1분에 40회 정도로 마라톤 선수 이봉주(38회)와 거의 같다. 그만큼 쉽게 지치지 않는다. 그는 허리에서 좌우로 끊임없이 휘젓고 다닌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헤집으면서 상대 수비수들의 얼을 빼놓는다.
박지성을 보고 있으면 이영무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의 현역 시절을 보는 듯하다. 그는 선수 시절 어찌나 그라운드를 헤집고 다니는지 ‘심장 2개, 허파 4개 달린 사나이’라고 불렸다. 일본축구협회에서 “보통 선수들은 10km를 뛰는데 이영무는 20km나 뛴다”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박주영의 움직임은 종적이다. 전후방으로 움직인다. 허리에선 동료에게 툭툭 패스를 찔러주며 힘을 아낀다. 공을 물 흐르듯 부드럽고 쉽게 찬다. 공을 끌거나 쓸데없는 드리블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기회다 싶으면 그대로 스피드를 실어 번개같이 상대 문전을 향해 드리블해 간다.
그는 상대 페널티에어리어에서 공간을 찾아가는 능력이 탁월하다. 뛰는 양은 박지성보다 부족하지만 순간적으로 돌아서는 능력은 더 뛰어나다. 마치 팽팽한 고무줄을 튕기는 듯한 볼 터치를 보고 있노라면 거문고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볼 키핑력도 빼어나 상대에게 볼을 잘 빼앗기지 않는다. 박주영처럼 순발력이 뛰어난 데다가 몸이 부드럽고 드리블에 능한 골잡이는 상대 골키퍼로 하여금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하는 법이다.
한국의 역대 골잡이 중 수비수를 1, 2명 제치고 슛을 해서 골인시킬 수 있는 골잡이는 이회택(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과 차범근(현 수원 삼성 감독), 그리고 박주영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차범근이 총알 같은 스피드를 바탕으로 드리블을 했다면 박주영은 스피드, 발놀림, 공간 침투 능력을 골고루 갖췄다. 만약 그가 박지성처럼 90분 동안 쉬지 않고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는 심장만 가지고 있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펄펄 날 것이다.
‘스피드’와 ‘압박’은 현대 축구의 화두다. 압박을 잘하는 팀이 경기를 지배한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압박을 가해도 스피드가 빠른 팀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잘도 빠져나간다. 스피드가 없는 팀은 상대의 압박에 주춤주춤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뒤로 공을 돌리거나 옆 동료에게 ‘수건 돌리기 패스’를 한다. 물론 브라질 선수들처럼 개인기가 뛰어나다면 일대일 돌파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같이 그렇지 못한 팀은 오로지 스피드로 뚫는 수밖에 없다.
박주영은 전진형이다. 그의 무게중심은 늘 발 앞부리에 있다. 게다가 무게중심이 낮다. 몸이 부드러워 잘 넘어지지도 않는다. 어깨, 팔, 무릎, 가슴 등 온몸을 이용해 속임 동작을 하며 질풍처럼 드리블해 간다. 그것도 골문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인 대각선 방향으로. 그러다 수비수들의 어지러운 발들 사이로 틈이 보이면 ‘벼락 슛’을 날린다. 수비수들은 박주영 같은 공격수가 가장 무섭다. 가속도가 붙은 드리블 상황에서 한번 제쳐지면 곧바로 골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박주영은 공을 죽이지 않는다. 흐르는 공을 그대로 놔둔 채 방향만 살짝살짝 바꿔준다. 안정환의 드리블도 화려하지만 그의 드리블엔 속도감이 없다. 동료의 패스를 받아 좌우 횡쪽으로 드리블해 가는 경우가 많다. 찰 듯 안 찰 듯, 슛을 할 듯 안 할 듯하다가 한두 수비수를 제친 뒤 갑자기 짧게 끊어서 슛을 때린다. 골키퍼로선 안정환의 예측불허 슛도 막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습성을 익히 알고 있는 골키퍼라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 골키퍼 쪽으로 대시해 오는 박주영보다는 횡쪽으로 가다가 때리는 슛이 막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말이다.
박지성은 동료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데 능숙하다. 자신이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의 움직임이 창조적이다. 상대 수비가 꼭 있어야 할 지점에 한발 앞서 지키고 있다가 동료의 앞길을 터준다. 공을 가지고 있을 때도 동료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해 킬패스를 찔러준다. 그만큼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한 예측력이 뛰어나다. 몸이 부드러워 역동작으로도 정확하게 동료 발 앞에 패스해준다. 2006년 3월1일 앙골라와의 평가전 때 박지성이 보여준 서너 번의 ‘킬패스’는 정말 위력적이었다.
박지성의 움직임은 주로 좌우의 횡쪽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다 공간이 생기면 득달같이 골문을 향해 달려든다. 어느 땐 최종 수비수로 변신해 위험한 공을 걷어내기도 한다. 에인트호벤에서 박지성은 좌·우측을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면서 최전방과 수비수의 부담을 줄여주는 살림꾼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박지성은 공을 너무 얌전하고 예쁘게 찬다. 좀더 거칠어져야 한다. 그의 팀 동료 웨인 루니의 황소 같은 파괴력을 본받아야 한다. 상대 수비에 좀 걸리더라도 저돌적으로 밀고 들어가는 힘을 길러야 한다. 나풀나풀 바람같이 유럽의 장대 숲을 잘도 누비고 다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발톱을 뾰족하게 갈고 송곳니도 날카롭게 벼려야 한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에 무서운 비수까지 품는다면 공포의 ‘신형 무기’가 될 것이 틀림없다.
한국 축구는 ‘투 박’ 이전과 이후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박주영 이전의 축구가 ‘군대스리가 축구’였다면 박주영 이후의 축구는‘분데스리가의 축구’가 될 것이다. ‘깡과 힘의 축구’가 비로소 ‘생각하는 축구’로 변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박지성이 휘젓고 다니며 허리에 공간을 만들어주면 박주영이 이를 드리블로 한두 수비수를 제친 뒤 강슛! 앞으로 한국 국가대표팀의 주 득점 통로는‘박-박 라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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