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영 급식을 하고 있는 서울미술고등학교. 전교생 대부분이 학교 식당을 이용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
실제로 이들과 함께 식사를 해보기로 했다. 배추김치, 시금치무침, 떡볶이, 꽃게탕이 오늘의 메뉴. 일단 밥맛이 좋다. 대량급식에서 흔히 먹게 되는 푸석한 밥이 아니라 찰기가 있는 조밥이다. 꽃게탕은 칼칼하고 김치는 신선하다. 이은성 영양교사는 “학교급식도 가정식처럼 만들자는 생각이다. 안심할 수 있는 재료만 사용하고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는다. 특히 냉동식품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사용을 자제하고, 대신 성장기 학생들이 칼슘을 섭취할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학교는 간장, 된장, 고추장 등 기본 장류는 영월에 있는 농장에서 만든 것을 사용하고 겨울에는 농장에서 담가 묻어둔 김장김치를 먹는다. 요즘 아이들이 김치를 싫어한다고 하지만 이 학교에서는 김치가 인기 메뉴다.
일부 학교 급식 중단 도시락 등장
3월26, 27일 이틀 동안 서울·경기지역 14개 중·고교에서 1500여명이 집단 식중독 증세를 보인 후 부쩍 서울미술고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졌다. 학교 직영식당의 운영 실태를 견학하기 위해서다. 이 학교 김명균 행정실장은 “서울 시내 중·고교 대부분이 위탁급식을 하고 있어 우리 학교의 직영 시스템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번 집단 식중독이 발생한 14개교(경기도 1개교 포함)는 모두 위탁급식을 채택하고 있어 학교급식의 안전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위탁외부조리(교내 급식시설 미비로 밖에서 조리한 음식을 교실에서 배식하는 시스템)를 해온 서울 시내 학교 가운데 식중독 사고를 우려해 급식을 일시 중지하고 도시락을 싸오도록 하는 곳도 늘고 있다.
자연히 그동안 위탁급식의 직영화를 요구해온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이하 급식네트)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이하 참교육학부모회) 등 학부모단체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식중독 사태는 직영·위탁 논쟁의 불씨를 당겼다.
먼저 3월28일 참교육학부모회가 성명서를 통해 “그동안 위탁급식이 형편없이 낮은 질과 위탁과정에서의 금품수수 등 많은 문제가 있음이 지적되어왔고 이에 따라 위탁급식을 직영으로 전환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서울시교육청이 이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급식네트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서울지역 중·고교 위탁급식정책을 조속히 직영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급식네트의 이빈파 사무처장은 “식중독 사고의 원인은 ‘급식은 교육이다’라는 철학의 부재에서 비롯됐다”며 “위탁급식의 경우 한 업체가 여러 학교와 계약을 체결하여 동일한 메뉴가 동시에 공급되고 있어 만의 하나 식품에 문제가 생겼을 때 동시에 여러 학교의 학생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고 주장했다. 서초강남교육시민모임에서는 시범적으로 한 학교를 직영화하기 위한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현재 이들 단체를 포함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민우회 등 108개 단체가 모여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제정을 위한 시민·사회단체연대’를 구성하고 직영화 운동을 펼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집단 식중독 사태와 관련해 유인종 서울시 교육감과 12개 학교장, 위탁급식업체 대표 등 22명을 업무상 과실치상, 식품위생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하고 본격적인 급식 직영화 투쟁에 들어갔다.
학교급식이 일반화하면서 식사의 질과 양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자율배식을 하고 있는 서울미술고 학생들.
그러나 서울 양천구 목동의 월촌중학교(이하 월촌중) 학부모들은 위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1년 동안 급식 시행을 미뤄오다 결국 지난 3월24일 학운위 회의에서 직영을 관철했다. 서울시내에서 첫 직영급식 중학교가 탄생한 것이다. 월촌중 학운위 위원으로 급식네트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영식씨는 “서울시교육청은 위탁이 원칙일 뿐 강제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실제 학교에서는 원칙을 법으로 받아들인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1년 전 처음 급식 관련 학운위가 열렸을 때 이미 위탁을 전제로 한 업무 추진 일정표가 나와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학운위에 직영과 위탁을 놓고 논의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학교는 서울시교육청의 지시대로 위탁을 기정사실화했고, 2002년 6월 공급계약을 체결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학운위가 이를 거부하고 전체 학부모를 대상으로 두 차례 설문조사를 실시해 1년 만에 직영(1차 85%, 2차 81.3%)을 확정했다.”
질 나쁜 반찬 등 그동안 불만 쏟아져
위탁급식을 하고 있는 한 중학교 점심시간.
이처럼 직영화를 부르짖는 학부모들은 위탁업체가 제공하는 급식의 질을 의심한다. 급식네트 배옥병 상임대표는 “1차 목표는 직영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우리농산물, 유기농산물을 먹이고 궁극적으로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며 “이윤을 추구하는 위탁업체에 학교급식을 맡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 급식네트 홈페이지에는 급식에 대한 불만들이 쏟아지고 있다. 위탁급식을 하고 있다는 수원의 한 남자고교 교사는 “담임 교사로 급식 도우미를 하다 보면 냉동 돈가스에 풀처럼 묵은 제육볶음, 핫도그, 설익은 바나나 등 어이없을 정도로 질이 나쁜 반찬들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양도 모자라 학생들이 충분히 먹지 못할 때가 많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잔반 처리했던 김치가 다시 배식되고(그것도 전날 나왔던 다른 반찬과 섞여), 벌레가 섞여 나오는 등 급식의 질과 위생 상태는 심각한 수준. 게다가 위탁급식의 경우 교사용과 학생용을 달리하거나 급식비를 연체한 학생에게 밥을 먹이지 않는 일까지 발생해 비교육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4월4일 ‘학교급식 사고에 대한 후속조치’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하고 “이번 사고로 학교급식 위탁계약을 해지하는 13개 학교와 금년 중 위탁계약이 종료되는 급식학교에 대해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고 학운위의 심의를 거쳐 학교장이 학교별 특성을 감안해 급식운영방법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위탁급식 원칙을 포기한 것이다. 그러나 교육청이 “직영급식으로 변경할 때 소요되는 인건비, 운영비는 교육청과 학교의 부담 없이 자체 해결하라”고 해 학부모들이 또다시 반발하고 있다. 급식네트의 배옥병 대표는 “학부모가 인건비, 운영경비 일체를 부담하는 직영급식을 하라는 것은 학교를 식당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시설비, 운영비, 인건비와 관리비 일체는 학교가 부담하고 학부모는 식료품비를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한다. 또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위탁급식인데 서울시교육청이 급식 위생관리상의 부주의와 급식 질 관리 소홀로 단정하는 것은 직영 전환을 요구하는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급식 직영화에 대한 압력이 거세지자 이번에는 위탁급식업체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사단법인 한국급식관리협회 임채홍 회장은 “식중독 사고는 관리의 문제지 위탁이냐 직영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학부모단체가 이번 사고를 계기로 무리하게 직영을 추진하다 보면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한국급식관리협회 회원사는 120여개, 전국적으로 사업자등록을 한 업체는 200여개에 달한다. 그중 절반 이상이 96년 학교급식법 개정 이후 우후죽순식으로 생겨난 신생업체로 위탁업체들 간의 과당출혈경쟁이 벌어지면서 질 관리에 문제가 생겼다. 특히 위탁급식 초기에 업체들이 학교에 과잉 시설투자를 해놓고 그것을 회수하기 위해 급식 질을 떨어뜨리는 일이 벌어지자 교육청이 시설투자비를 8000만원까지로 제한했고, 학교에 기부하는 행위도 금지했다.
경기도에서 위탁급식업체를 운영하는 서모 사장은 “위탁업체가 무조건 영리만 추구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서울에 비해 직영 비율이 높은 경기도에서는 직영급식은 정부미를 쓰고 위탁급식은 일반미를 쓰는 곳이 많다. 직영급식은 ‘최저가 입찰제’로 운영돼 좋은 재료를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상황이 생기고, 위탁업체는 대량구매를 하기 때문에 품질 좋은 제품을 더 싸게 살 수 있다. 식비의 65%를 식재료 구입에 쓴다고 반드시 급식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서울과는 반대로 직영을 원칙으로 삼았던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 9월부터 직영, 위탁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해서 점차 위탁이 늘고 있는 추세다.
서울시교육청은 위탁급식업자 선정에 반드시 학부모와 학운위가 참여하여 현장조사를 거친 후 선정하도록 하며 학운위에 ‘급식품 검수단’을 구성해 수시로 감시활동을 강화하도록 하는 등의 후속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학부모들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교육청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태도다. 이번 집단 식중독 사태는 못 믿겠으니 직접 해 먹이겠다고 소매를 걷어붙인 학부모들과 전문가에게 맡기라고 말하는 위탁급식업체의 충돌을 초래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어느 쪽의 손도 들어줄 수 없는 난처한 입장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