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소년 아톰
로봇을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이 발달한 일본이 실제 세계 로봇산업을 이끈다는 사실은 대단히 흥미롭다. 상상력이 기술력으로 이어졌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로봇이라는 미래산업에 상당히 발 빠르게 대비해왔으며 그 결과 현재 일본의 로봇기술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소니, 혼다, 세이코, 엡손 등 익숙한 이름의 일본 유수 기업들이 모두 로봇산업에 뛰어들었을 정도로 활성화됐다.
로봇은 더 이상 공상과학 영화에만 등장하고 먼 미래에나 경험할 낯선 대상이 아니다.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극작가 차페크가 로봇이란 말을 사용한 이래로 과학기술은 쉼 없이 로봇을 개발해왔고, 오늘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영역에까지 수많은 로봇이 활용되기에 이르렀다. 로봇의 용도는 가정과 병원은 물론 3D산업과 군사용, 해저와 우주개척의 영역까지 실로 다양하다.
가정부터 우주까지 전 분야 활용
파익시스사가 제작한 엘비스(Elvis)는 병원용 로봇으로 바퀴 달린 캐비닛처럼 생겼다. 이 로봇은 혈액샘플이나 약품을 병원건물 내부에서 자유로이 운반한다. 복도를 거닐고 무선으로 엘리베이터를 제어해 이동할 수 있으며 사람이나 여타 장애물을 피할 수 있다. 이는 최근 의료 관련 산업에서의 로봇의 활용도가 증가하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3D산업용 로봇으로는 뉴욕의 지하에서 활동중인 와이저(Wisor)가 있다. 와이저는 크고 작은 파이프 속을 다니며 구멍 난 파이프를 자동 수리한다. 어뢰형으로 생긴 와이저에는 다섯 대의 카메라가 달려 있어 길을 잃지 않고 복잡한 파이프 속을 누비고 다닐 수 있다. 이 로봇을 제작한 로봇 전문회사 허니비는 화성탐사에 나선 우주용 탐사로봇을 제작하기도 했다.
군사용 로봇의 수요 역시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성공적으로 사용되었던 원격조종이 가능한 탐사 로봇인 프레데터(Predator)는 이라크전에도 투입되었다. 우주비행선의 로봇팔이나 NASA 화성탐사 프로그램의 바퀴 달린 로봇인 Rover 등도 빼놓을 수 없다.
혼다의 인간형 로봇인 아시모(ASIMO)는 몸무게 50kg 정도의 반자동 로봇으로 한 발로 서거나 춤을 추고,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다. 또한 감정이 담긴 듯 움직이고 말하는 기능도 포함되어 있는 등 인간형 로봇으로서의 모습을 지향하고 있다. 처음 등장했던 97년 자연스런 걸음걸이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주인공이다. 아시모는 지난 2월부터 총 15개월간의 미국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북미지역의 고등학교를 방문하고 있는데 인간형 로봇을 통해 미국 학생들에게 과학과 수학, 공학에 대한 흥미를 진작하는 것이 목적이다.
소니가 개발하는 로봇은 엔터테인먼트 로봇(ER·Entertainment Robot)이다. 대표적인 로봇으로 애완견 로봇 아이보(AIBO)가 있으며, 인간을 즐겁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소니의 SDR는 노래하고 춤추며 사람과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가정로봇이다. 세이코 엡손의 Monsieur II-P는 무게가 28g 이하인 마이크로 로봇으로 두 바퀴와 미니 초음파모터를 이용해 움직이며, 무선제어가 가능한 블루투스(Bluetooth) 방식이 채택됐다. 이번 ‘ROBODEX 2003’에서 이 방식을 이용해 여러 대의 로봇이 동기화해 동시에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마이크로 로봇은 의학 분야와 미세기계 분야에서 기대가 높다.
후지쓰 연구소는 얼마 전 구성이 동적으로 변하는 신경계 네트워크를 이용해, 인간형 로봇의 효율적인 동작을 학습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복잡한 제어가 필요한 인조인간의 동작 개발이 한층 가속화됐다.
세계적 연구소인 MIT 미디어랩이 최근에 개발한 로봇은 리플리(Ripley)라는 이름의 ‘아기로봇’이다. 리플리는 철학, 신경과학, 인지과학, 물리학, 언어학과 아동발달에 이르기까지 여러 학문의 공동연구의 소산이다. 유아 수준의 대화를 하고 간단한 명령에 반응하는 정도로 아직까지는 소설 속 화려한 로봇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미리 프로그램된 기능을 반복 수행하는 여타의 로봇과는 달리, 리플리는 처음부터 아이가 양육되듯 키워지며 실제 유아와 같은 자연스런 학습과정을 겪는다는 차이점이 있다. 즉 미리 정해진 프로그램이 알려주는 대로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물체를 보고, 만지고, 그에 해당하는 단어를 들으면서 인간처럼 학습해 나간다. 리플리의 성과는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와 함께 지능형 로봇에 대한 연구 수준도 발전시키게 될 것이다.
인간 무한한 상상력 실현 가능
한국에서도 휴먼로봇이 개발되고 있다.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는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여서 물건을 집거나 옮길 수 있는 센토(Centaur)와 한번 명령하면 스스로 판단해 주변상황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취하는 미모트(MIMOT)를 개발했고,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서는 시각인식과 감정표현 능력을 갖춘 아미(AMI)를 선보였다.
물론 아직까지 국내의 로봇기술은 휴머노이드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단지 인간의 조작에 의해 작동하고 기초적인 수준의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무의식을 가진 인간과는 깊이에서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인간형 로봇으로의 발전과 이를 통한 실용로봇의 대중화는 그리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그리 길지 않은 로봇 역사를 감안하면 현재의 로봇기술 수준은 상당히 진보한 것으로 대단히 희망적이다.
실용로봇이 대중화하는 시기가 도래하면 우리는 윤리시간에 아이작 아시모프 박사가 창시한 ‘로봇공학 3원칙’을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제1조, 로봇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되며 위험을 간과해 인간에게 위해를 끼쳐서도 안 된다. 제2조,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단, 명령이 제1조를 위반할 경우는 예외다. 제3조, 로봇은 제1조와 제2조를 위반할 우려가 없는 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결국 한 작가가 만든 ‘로봇’이라는 개념에, 또 다른 작가가 로봇공학 원칙을 더하고 여기에 수많은 작가들의 상상력과 수많은 과학자들의 창의력과 기술력이 더해져 비로소 실용로봇의 대중화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로봇기술보다 더 대단하고 위대한 것이 바로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일 것이다. 조만간 우린 그 상상력을 현실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어릴 적 만화 속의 친구인 아톰과 같은 인간적 로봇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