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위복’이란 이런 것일까. 박영숙 한국수양부모협회 회장(호주대사관 문화공보실장)은 요즘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 수백명의 위탁아들을 계속 돌볼 수 있다는 사실이 봄햇살만큼이나 가슴을 들뜨게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그는 절망 속에서 무력감을 곱씹어야 했다. 3월21일 정부(서울시)는 박회장이 운영하는 한국수양부모협회를 재정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
20여년간 다니던 직장(영국대사관 공보관)을 그만두고 손에 쥔 퇴직금으로 협회의 어린이 쉼터를 만들 만큼 헌신적이었지만 애초 개인의 힘으로 사회사업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박회장이 정부의 도움을 요청한 것은 이 때문. 그렇지만 정부는 박회장의 손을 뿌리쳤고 이는 내부 동요로 이어졌다. 수양부모들이 “아이들을 되돌려 보내겠다”고 나섰고 주변에서는 “사회사업을 아무나 하나”고 빈정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기주의와 무관심의 한편에는 따뜻한 체온을 나누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박회장이 깊은 무력감에 휩싸인 그 시간, 하나둘 동반자가 나타난 것이다. 계기는 동아일보가 마련했다. 동아일보가 안타까운 사연을 보도(3월23일)하자 정동영 전재희 심재철 의원 등 정치인들을 비롯해 박원순 이상국 변호사, 손숙 전 환경부 장관, 최성균 한국사회복지사협회장 등이 지원을 자청하고 나섰다. 법과 원칙을 앞세웠던 서울시와 경기도의 태도도 달라졌다. 3월28일 만난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원을 약속하면서 시련은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참 의사를 밝힌 이들은 먼저 ‘수양부모협회 살리기 위원회’를 결성했다. 몸도, 마음도 지친 박회장에게는 단비나 다름없는 원군이었다. 박회장은 “이들의 관심이 눈물겹도록 고맙다”고 말한다.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고통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95년 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초심(初心)과 자신감도 되새겼다.
한국수양부모협회는 아직 달라진 것이 없다. 재정도 어렵고, 여진도 여전하다. 그러나 박회장은 어제와 다른 오늘을 느끼고 산다. 무엇보다 초롱초롱한 위탁아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다시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들떠 있는 탓이다.
20여년간 다니던 직장(영국대사관 공보관)을 그만두고 손에 쥔 퇴직금으로 협회의 어린이 쉼터를 만들 만큼 헌신적이었지만 애초 개인의 힘으로 사회사업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박회장이 정부의 도움을 요청한 것은 이 때문. 그렇지만 정부는 박회장의 손을 뿌리쳤고 이는 내부 동요로 이어졌다. 수양부모들이 “아이들을 되돌려 보내겠다”고 나섰고 주변에서는 “사회사업을 아무나 하나”고 빈정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기주의와 무관심의 한편에는 따뜻한 체온을 나누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박회장이 깊은 무력감에 휩싸인 그 시간, 하나둘 동반자가 나타난 것이다. 계기는 동아일보가 마련했다. 동아일보가 안타까운 사연을 보도(3월23일)하자 정동영 전재희 심재철 의원 등 정치인들을 비롯해 박원순 이상국 변호사, 손숙 전 환경부 장관, 최성균 한국사회복지사협회장 등이 지원을 자청하고 나섰다. 법과 원칙을 앞세웠던 서울시와 경기도의 태도도 달라졌다. 3월28일 만난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원을 약속하면서 시련은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참 의사를 밝힌 이들은 먼저 ‘수양부모협회 살리기 위원회’를 결성했다. 몸도, 마음도 지친 박회장에게는 단비나 다름없는 원군이었다. 박회장은 “이들의 관심이 눈물겹도록 고맙다”고 말한다.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고통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95년 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초심(初心)과 자신감도 되새겼다.
한국수양부모협회는 아직 달라진 것이 없다. 재정도 어렵고, 여진도 여전하다. 그러나 박회장은 어제와 다른 오늘을 느끼고 산다. 무엇보다 초롱초롱한 위탁아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다시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들떠 있는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