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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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1-06-03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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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11월,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실은 장문의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했습니다. 한 해 전 체결한 용산 등 미군기지 이전협정이 미군의 책임을 제대로 규정하지 못해 막대한 반환 부지 환경치유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게 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전협정 협상을 관할했던 외교안보 라인 핵심 인사들은 조사에 가까운 ‘의견청취’를 받기도 했죠.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제기에도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본인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동맹의 큰 뜻을 존중한다는 취지에서 그냥 넘어가는 것으로 마무리했다는 게 임기 말 당국자들의 설명이었습니다.

    4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고엽제 파문으로 인해 미군기지의 환경문제가 이렇듯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리라고는 정말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겁니다. 당시 쟁점이던 한미행정협정(SOFA)의 환경규정이나 치유기준 같은 주제는 이제 국가적 논란거리가 됐습니다. 미군기지의 환경오염은 ‘인간 건강에 대한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known, imminent and substantial endangerment)’인 경우에만 미군이 책임을 진다는 ‘KISE’ 조항이 대표적이죠.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
    이후 반환된 미군기지가 상당한 오염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KISE 기준을 초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치유비용은 우리가 부담해야 했고 그 예상 규모는 3000억 원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진행 중인 고엽제 매장 여부 조사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알 수 없지만, KISE만 넘지 않는다면 미국 측은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는 게 현행 SOFA의 규정입니다. 물론 국민이 이를 납득할 수 있을지는 별문제지만 말이죠.

    한마디 덧붙이자면, 당시 이전협정의 여러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비판했던 당국자 가운데 상당수는 정권이 끝나기도 전에 해외를 떠돌거나 민간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습니다. 그들은 요즈음의 고엽제 파문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문득 그게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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