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벤처붐이 다시 일고 있다. 이 기회를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최근 모바일 시장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제2 벤처붐을 두고 한국벤처캐피탈협회(이하 협회) 이종갑(57) 회장은 “2000년대 초 벤처붐 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벤처캐피털업계가 ‘묻지마 투자’로 벤처 거품을 키웠다가 한순간에 거품이 꺼지면서 침체기에 빠졌던 데 대한 자성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는 “이제 달라졌다”며 체질 개선에 성공한 벤처캐피털이 제2 벤처붐을 확산하는 구실을 제대로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벤처업계 ‘자금·구인난·인식’ 3중고
▼ 최근 벤처붐이 다시 인다.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
“스마트 혁명, 방송과 통신의 융합으로 새로운 시장이 열려 큰 힘이 됐다. 투자 환경도 많이 개선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투자가 위축되긴 했지만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벤처투자 금액이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 벤처펀드 조성액이 10년 만에 1조 원을 돌파했다.”
▼ 벤처투자가 늘었음에도 벤처기업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많은 벤처사업가를 만나보면 자금도 자금이지만, 왜곡된 시선과 구인난 때문에 힘들어한다. 특히 젊은 벤처사업가는 성공하기까지 인내해야 할 시간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이 ‘친구는 번듯한 직장에 자리 잡는데, 너는 도대체 뭐 하느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벤처기업에 다닌다고 하면 주변에서 왜 3류 회사에서 고생하느냐며 불쌍하게 바라본단다. 벤처기업으로선 열정과 실력을 겸비한 인재가 필요한데, 이런 인식 탓에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 벤처캐피털의 스타트업(Start-Up) 기업에 대한 투자는 부족하다.
“벤처캐피털이 스타트업 기업에 투자하기란 쉽지 않다. 스타트업 기업은 5000만 원 내의 적은 투자금액을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벤처캐피털로선 너무 적은 규모다. 따라서 이런 부분은 엔젤투자자가 메워줘야 한다. 2000년대 초반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엔젤투자자가 자취를 감췄다. 벤처기업도 생애 주기가 있는데 초기 단계에서는 엔젤투자자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는 벤처캐피털이 나서서 기업을 키워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엔젤투자자들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 벤처투자를 결정할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가.
“성장성을 중요시한다. 특히 관련 기업이 속한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주목한다. 2007년 10월 ‘모린스’라는 기업에 10억 원을 투자한 적이 있다. 터치패널을 공급하는 업체인데, 당시 매출액이 1억 원도 안 됐다. 하지만 스마트 혁명이 일면서 스마트폰, 태블릿PC에 사용하는 터치패널이 유망하리라 전망했다. 해당 기업이 꾸준히 연구 개발에 투자한다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 이후 20억 원을 더 투자했는데, 2008년부터 매출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불과 1년 만에 매출액이 440억 원으로 늘었고, 투자금액의 5배가 넘는 160여억 원을 회수할 수 있었다.”
▼ 자금을 회수하는 방법으로 기업공개(IPO)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인수합병(M·A)을 통한 자금 회수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또한 여러 벤처기업에 투자하다 보면 수익이 없고 처치도 곤란한 좀비 펀드가 꼭 나온다. 이런 것을 정리해 벤처투자금을 회수한 뒤 재투자해야 한다. 자동차는 중고차 시장이 활성화됐기에 신차 시장도 발전하는 것이다. 벤처투자 시장도 마찬가지다. 상장 이전에 지분을 팔 수 있는 프리보드나 세컨더리 마켓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협회 차원에서 연구 중이다.”
비계량적 요소 중요성 증가
2011년 2월 협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30여 년간 공직에서 활동한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과거 경제기획원에서 예산 업무를 맡았으며, 2008년부터 두산그룹 계열사인 네오플럭스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그는 공직이 온실 속 화초였다면, 지금 활동하는 벤처업계는 말 그대로 야생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일반적으로 10개 벤처에 투자하면 1~2개가 10배 이상 수익을 거두는 소위 ‘대박’을 터뜨리고, 3개가 2~3배 수익을 내며, 5개 정도가 망한다. 그만큼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이 회장은 “업계 20위권 내 벤처캐피털이 두 자릿수 수익률을 거둔다는 사실에서 국내 벤처캐피털의 우수성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 투자받은 벤처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막으려고 어떤 조치를 취하는가.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돈을 빌리는 사람의 마음이 각각 다르다(웃음). 벤처캐피털도 여러 기관이나 투자자에 자금을 펀딩해 벤처기업에 투자한다. 자선사업가가 아니기 때문에 일정 수익을 거둬야 한다. 자금을 투자받은 기업이 그 자금을 제대로 쓰는지 주 또는 월 단위로 감시한다. 투자받은 돈을 원자재를 구입하거나 뛰어난 엔지니어를 고용하는 데 쓰지 않고, 대표이사 월급을 올리거나 자동차를 사는 데 사용한다면 분명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대표이사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투자금을 회수한 적도 있다.”
▼ 벤처기업 사이에서는 투자자가 지나치게 경영 간섭을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물론 불편해하는 기업가도 있다. 하지만 벤처투자자는 최소한의 감시만 한다. 외국계 캐피털이 투자했을 때는 별말 없다가도 국내 벤처캐피털이 투자하면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가 있다. 사실 외국계 투자자의 감시는 더 심하다. 하루 단위로 경영 활동을 보고하라는 곳도 있다. 벤처기업이 벤처캐피털의 투자금을 정부기관의 보조금 정도로 생각하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 벤처투자업계의 발전을 위한 선결 과제는.
“국내 벤처캐피털리스트(투자심사역)는 통틀어 500명을 넘지 않는다. 웬만한 중소기업 직원 수보다도 적다. 장기적으로 2000~3000명까지 늘려서 이들이 벤처기업에도 가고, 투자활동도 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엔젤투자와 같은 구실을 직접 할 수 있도록 조성한 모태펀드 ‘한국벤처투자’의 소임이 중요하다. 현재 1조 원가량 자금을 조성했는데 이를 2조 원까지 늘린다면 펀드가 자생적으로 스타트업 기업을 지원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 정부의 벤처투자에 대한 규제는 어떠한가.
“많이 완화된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있다. 벤처투자자금의 성격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국민연금이나 군인공제회 같은 기관투자자가 많다. 이들은 준정부기관으로 감사원의 감사를 받는다. 문제는 감사가 형식에만 너무 집착한다는 점이다. 투자는 장래성 같은 비계량적 요소를 보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계속 눈에 보이는 것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벤처투자의 특성상 크게 이득을 보는 것도 있고, 부득이하게 손해를 보는 것도 있다. 그런데 획일적으로 ‘아니, 이렇게 손해를 많이 보는 사업에 왜 투자했느냐’고 따지면 이들 기관이 움츠러든다. 그럼 벤처캐피털도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적으로 투자할 수가 없다. 벤처기업 가운데 재무상태가 좋고, 회사 사정이 제대로 된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그런 기업이라면 벤처투자자가 아닌 은행에서 돈을 빌렸을 것이다.”
최근 모바일 시장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제2 벤처붐을 두고 한국벤처캐피탈협회(이하 협회) 이종갑(57) 회장은 “2000년대 초 벤처붐 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벤처캐피털업계가 ‘묻지마 투자’로 벤처 거품을 키웠다가 한순간에 거품이 꺼지면서 침체기에 빠졌던 데 대한 자성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는 “이제 달라졌다”며 체질 개선에 성공한 벤처캐피털이 제2 벤처붐을 확산하는 구실을 제대로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벤처업계 ‘자금·구인난·인식’ 3중고
▼ 최근 벤처붐이 다시 인다.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
“스마트 혁명, 방송과 통신의 융합으로 새로운 시장이 열려 큰 힘이 됐다. 투자 환경도 많이 개선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투자가 위축되긴 했지만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벤처투자 금액이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 벤처펀드 조성액이 10년 만에 1조 원을 돌파했다.”
▼ 벤처투자가 늘었음에도 벤처기업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많은 벤처사업가를 만나보면 자금도 자금이지만, 왜곡된 시선과 구인난 때문에 힘들어한다. 특히 젊은 벤처사업가는 성공하기까지 인내해야 할 시간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이 ‘친구는 번듯한 직장에 자리 잡는데, 너는 도대체 뭐 하느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벤처기업에 다닌다고 하면 주변에서 왜 3류 회사에서 고생하느냐며 불쌍하게 바라본단다. 벤처기업으로선 열정과 실력을 겸비한 인재가 필요한데, 이런 인식 탓에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 벤처캐피털의 스타트업(Start-Up) 기업에 대한 투자는 부족하다.
“벤처캐피털이 스타트업 기업에 투자하기란 쉽지 않다. 스타트업 기업은 5000만 원 내의 적은 투자금액을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벤처캐피털로선 너무 적은 규모다. 따라서 이런 부분은 엔젤투자자가 메워줘야 한다. 2000년대 초반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엔젤투자자가 자취를 감췄다. 벤처기업도 생애 주기가 있는데 초기 단계에서는 엔젤투자자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는 벤처캐피털이 나서서 기업을 키워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엔젤투자자들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 벤처투자를 결정할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가.
“성장성을 중요시한다. 특히 관련 기업이 속한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주목한다. 2007년 10월 ‘모린스’라는 기업에 10억 원을 투자한 적이 있다. 터치패널을 공급하는 업체인데, 당시 매출액이 1억 원도 안 됐다. 하지만 스마트 혁명이 일면서 스마트폰, 태블릿PC에 사용하는 터치패널이 유망하리라 전망했다. 해당 기업이 꾸준히 연구 개발에 투자한다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 이후 20억 원을 더 투자했는데, 2008년부터 매출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불과 1년 만에 매출액이 440억 원으로 늘었고, 투자금액의 5배가 넘는 160여억 원을 회수할 수 있었다.”
▼ 자금을 회수하는 방법으로 기업공개(IPO)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인수합병(M·A)을 통한 자금 회수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또한 여러 벤처기업에 투자하다 보면 수익이 없고 처치도 곤란한 좀비 펀드가 꼭 나온다. 이런 것을 정리해 벤처투자금을 회수한 뒤 재투자해야 한다. 자동차는 중고차 시장이 활성화됐기에 신차 시장도 발전하는 것이다. 벤처투자 시장도 마찬가지다. 상장 이전에 지분을 팔 수 있는 프리보드나 세컨더리 마켓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협회 차원에서 연구 중이다.”
비계량적 요소 중요성 증가
2011년 2월 협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30여 년간 공직에서 활동한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과거 경제기획원에서 예산 업무를 맡았으며, 2008년부터 두산그룹 계열사인 네오플럭스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그는 공직이 온실 속 화초였다면, 지금 활동하는 벤처업계는 말 그대로 야생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일반적으로 10개 벤처에 투자하면 1~2개가 10배 이상 수익을 거두는 소위 ‘대박’을 터뜨리고, 3개가 2~3배 수익을 내며, 5개 정도가 망한다. 그만큼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이 회장은 “업계 20위권 내 벤처캐피털이 두 자릿수 수익률을 거둔다는 사실에서 국내 벤처캐피털의 우수성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 투자받은 벤처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막으려고 어떤 조치를 취하는가.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돈을 빌리는 사람의 마음이 각각 다르다(웃음). 벤처캐피털도 여러 기관이나 투자자에 자금을 펀딩해 벤처기업에 투자한다. 자선사업가가 아니기 때문에 일정 수익을 거둬야 한다. 자금을 투자받은 기업이 그 자금을 제대로 쓰는지 주 또는 월 단위로 감시한다. 투자받은 돈을 원자재를 구입하거나 뛰어난 엔지니어를 고용하는 데 쓰지 않고, 대표이사 월급을 올리거나 자동차를 사는 데 사용한다면 분명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대표이사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투자금을 회수한 적도 있다.”
▼ 벤처기업 사이에서는 투자자가 지나치게 경영 간섭을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물론 불편해하는 기업가도 있다. 하지만 벤처투자자는 최소한의 감시만 한다. 외국계 캐피털이 투자했을 때는 별말 없다가도 국내 벤처캐피털이 투자하면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가 있다. 사실 외국계 투자자의 감시는 더 심하다. 하루 단위로 경영 활동을 보고하라는 곳도 있다. 벤처기업이 벤처캐피털의 투자금을 정부기관의 보조금 정도로 생각하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 벤처투자업계의 발전을 위한 선결 과제는.
“국내 벤처캐피털리스트(투자심사역)는 통틀어 500명을 넘지 않는다. 웬만한 중소기업 직원 수보다도 적다. 장기적으로 2000~3000명까지 늘려서 이들이 벤처기업에도 가고, 투자활동도 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엔젤투자와 같은 구실을 직접 할 수 있도록 조성한 모태펀드 ‘한국벤처투자’의 소임이 중요하다. 현재 1조 원가량 자금을 조성했는데 이를 2조 원까지 늘린다면 펀드가 자생적으로 스타트업 기업을 지원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 정부의 벤처투자에 대한 규제는 어떠한가.
“많이 완화된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있다. 벤처투자자금의 성격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국민연금이나 군인공제회 같은 기관투자자가 많다. 이들은 준정부기관으로 감사원의 감사를 받는다. 문제는 감사가 형식에만 너무 집착한다는 점이다. 투자는 장래성 같은 비계량적 요소를 보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계속 눈에 보이는 것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벤처투자의 특성상 크게 이득을 보는 것도 있고, 부득이하게 손해를 보는 것도 있다. 그런데 획일적으로 ‘아니, 이렇게 손해를 많이 보는 사업에 왜 투자했느냐’고 따지면 이들 기관이 움츠러든다. 그럼 벤처캐피털도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적으로 투자할 수가 없다. 벤처기업 가운데 재무상태가 좋고, 회사 사정이 제대로 된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그런 기업이라면 벤처투자자가 아닌 은행에서 돈을 빌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