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영국 방문을 통해 미국과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동반자 관계라는 점을 과시하고 있어 화제다. 5월 말 영국을 국빈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이 사흘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연출한 장면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단순히 파트너십이나 동맹 같은 외교적 수사로 묘사하기엔 한참 부족했다.
국빈 방문에 걸맞게 장엄하고 격조 높은 왕실 최고의 의전이 제공된 것은 물론이다. 오바마 대통령 내외는 버킹엄궁전에서 묵으며 두 차례의 공식 만찬을 통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그와 동시에 오바마 대통령과 캐머런 총리는 정상회담 전후로 캐주얼하고 역동적 장면을 연출하는 데 공을 들였다. 회담 전날 두 정상은 런던 남부의 한 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복식조를 이뤄 학생들과 탁구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또 정상회담 직후에는 총리실에서 바비큐 가든파티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두 정상은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직접 고기를 구워 아프가니스탄 참전 부상 병사들의 접시에 올려주는 정겨운 장면도 연출했다.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서로를 ‘버락’ 과 ‘데이비드’라고 부르며 시종일관 친구 같은 모습을 보였다.
1980년대 당시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 이후 양국 정상외교에서 이렇게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기는 처음이었다. 냉전체제 붕괴 이전 서방세계에 ‘힘에 의한 평화’와 신자유주의라는 경제 이데올로기를 함께 주도하던 두 사람은 한때 ‘솔 메이트(soul mate)’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공화당 소속의 레이건 대통령과 보수당 지도자인 대처 총리의 관계는 정치적 공통분모를 기반으로 한 ‘정치적’ 파트너십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오바마와 캐머런은 정치 색채가 다른 정상 간에 형성된 ‘개인적’ 스킨십이라는 측면에서 더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영국 언론 “록스타 같은 인기 누려”
영국과 미국 정상 간 이러한 스킨십은 최근 몇 년 동안 양국 관계를 살펴보더라도 이례적이다.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과 함께 이라크전쟁을 이끈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는 ‘부시의 푸들’이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정상 간 파트너십을 확고히 구축했지만, 정작 국민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아 ‘그들만의 리그’로 끝나고 말았다.
미국에서 민주당 오바마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 후 영국 노동당 소속 고든 브라운 총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백악관과 긴밀한 공조를 추진했다.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브라운 총리는 미국 워싱턴과 영국 런던을 오가며 G20 정상회의를 번갈아 개최함으로써 공황 직전에 빠진 경제를 정상 궤도로 끌어올리는 데 지도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외교 무대에서의 파트너십이 두 정상 간 화학적 결합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오히려 예기치 못한 대형 악재가 잇달아 터지면서 양국 관계에 어두운 그림자가 자주 드리워졌다.
브라운 총리 시절에는 미국 팬암 여객기를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공중 폭파한 혐의로 수감 중이던 리비아 출신 테러범을 스코틀랜드 정부가 석방, 양국 간 외교적 갈등이 깊어지기도 했다. 당시 미국 내 팬암 여객기 테러 희생자 유족과 의회를 중심으로 반영(反英) 여론이 확산되자 브라운 총리는 “석방 결정은 스코틀랜드 정부가 내린 독자적 결정”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신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진땀을 흘려야 했다.
또 2010년에는 영국 석유회사 BP가 멕시코 만에서 대규모 원유 유출 사고를 일으켜 양국 관계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았다. 사고 수습 작업이 난항을 겪으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비외교적 수사를 동원해 BP를 원색적으로 비난하자, 영국 경제계가 발칵 뒤집혔던 것이다. 당시 캐머런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미국 방문을 앞둔 상황이었고, 오바마 대통령과의 첫 대면부터 어색한 장면이 연출됐다. 제2차 세계대전은 물론 테러와의 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을 함께 치르며 혈맹을 과시하던 양국은 이런 암초에 걸려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영국 국빈 방문을 통해 두 정상은 과거의 불편했던 관계를 청산하고 최고의 동맹관계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오바마-캐머런의 정상외교는 과거 영국 국민이 외면하던 블레어-부시 관계와 달리 대다수 국민의 절대적 지지 속에서 진행됐다. 영국 언론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방문 기간 내내 “록스타 같은 인기를 누렸다”고 보도했다.
‘기브 앤 테이크’ 방정식
그렇다면 민주당 소속의 오바마 대통령과 보수당 소속의 캐머런 총리가 서로 다른 정치적 지향점을 가졌음에도 여느 정상들 사이에서는 보기 어려운 다정한 스킨십을 과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워싱턴과 런던의 분석가들은 무엇보다도 두 사람이 처한 국내 정치적 현실을 꼽았다.
먼저 오바마 대통령은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번 유럽 순방을 통해 국내 유권자에게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기 위상을 다시 한 번 각인하려는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도를 충족하는 데 화려함과 장엄함을 함께 보여주는 영국 국빈 방문만큼 효과적인 소재도 없을 것이다. 버킹엄궁전에서의 공식 만찬, 불과 한 달 전 세계를 열광시켰던 윌리엄-미들턴 로열 커플과의 만남 등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후광 효과를 안겨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반면, 캐머런 총리는 현재 영국 국내 정치의 가장 큰 쟁점인 재정 긴축 문제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호의적 언급을 해준다면 긴축정책에 따른 정치적 논란을 잠재우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현재 미국과 영국은 국가 재정 적자로 경제정책에 관한 한 초긴축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노동당은 이를 두고 보수당의 지나친 긴축정책이 오히려 경제 회복 기조를 더디게 한다고 지적해왔다. 또한 캐머런 총리가 주도하는 급진적 긴축정책과 오바마 행정부가 취하는 상대적으로 완만한 경제정책을 비교해가며 경제말살정책이라고 비난했다.
따라서 캐머런 총리로서는 고실업에 이은 복지 혜택 축소로 국민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말을 통해 경기 침체가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외교 정책으로 무대를 옮겨도 영국과 미국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먼저 아프가니스탄 철군 일정을 순조롭게 진행해야 하고, 중동 민주화 지원 프로그램에도 공조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는 리비아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일이다.
장기화하고 있는 리비아 사태에서 미국은 여전히 한발 뺀 채 핵심 임무를 맡길 꺼린다. 프랑스와 영국을 중심으로 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카다피 제거를 비롯해 리비아에서 임무를 끝까지 완수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국가 재정 적자 여파로 국방비를 대폭 삭감하려는 영국 역시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프리카 지역에서 영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감안할 때 카다피 제거에 실패한 채 리비아를 떠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영국과 프랑스를 앞세워 리비아 사태를 끌고 가려 하고, 캐머런 총리는 부담스러운 전쟁을 떠맡는 대신 오바마에게 대가를 얻어내려 하고 있다. 국내 정치와 외교 정책의 각자 우선순위를 서로 다른 손에 들고 있는 이런 ‘기브 앤 테이크’ 방정식이 민주당 출신 미국 대통령과 보수당 소속 영국 총리의 ‘찰떡궁합’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국빈 방문에 걸맞게 장엄하고 격조 높은 왕실 최고의 의전이 제공된 것은 물론이다. 오바마 대통령 내외는 버킹엄궁전에서 묵으며 두 차례의 공식 만찬을 통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그와 동시에 오바마 대통령과 캐머런 총리는 정상회담 전후로 캐주얼하고 역동적 장면을 연출하는 데 공을 들였다. 회담 전날 두 정상은 런던 남부의 한 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복식조를 이뤄 학생들과 탁구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또 정상회담 직후에는 총리실에서 바비큐 가든파티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두 정상은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직접 고기를 구워 아프가니스탄 참전 부상 병사들의 접시에 올려주는 정겨운 장면도 연출했다.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서로를 ‘버락’ 과 ‘데이비드’라고 부르며 시종일관 친구 같은 모습을 보였다.
1980년대 당시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 이후 양국 정상외교에서 이렇게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기는 처음이었다. 냉전체제 붕괴 이전 서방세계에 ‘힘에 의한 평화’와 신자유주의라는 경제 이데올로기를 함께 주도하던 두 사람은 한때 ‘솔 메이트(soul mate)’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공화당 소속의 레이건 대통령과 보수당 지도자인 대처 총리의 관계는 정치적 공통분모를 기반으로 한 ‘정치적’ 파트너십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오바마와 캐머런은 정치 색채가 다른 정상 간에 형성된 ‘개인적’ 스킨십이라는 측면에서 더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영국 언론 “록스타 같은 인기 누려”
영국과 미국 정상 간 이러한 스킨십은 최근 몇 년 동안 양국 관계를 살펴보더라도 이례적이다.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과 함께 이라크전쟁을 이끈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는 ‘부시의 푸들’이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정상 간 파트너십을 확고히 구축했지만, 정작 국민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아 ‘그들만의 리그’로 끝나고 말았다.
미국에서 민주당 오바마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 후 영국 노동당 소속 고든 브라운 총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백악관과 긴밀한 공조를 추진했다.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브라운 총리는 미국 워싱턴과 영국 런던을 오가며 G20 정상회의를 번갈아 개최함으로써 공황 직전에 빠진 경제를 정상 궤도로 끌어올리는 데 지도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외교 무대에서의 파트너십이 두 정상 간 화학적 결합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오히려 예기치 못한 대형 악재가 잇달아 터지면서 양국 관계에 어두운 그림자가 자주 드리워졌다.
브라운 총리 시절에는 미국 팬암 여객기를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공중 폭파한 혐의로 수감 중이던 리비아 출신 테러범을 스코틀랜드 정부가 석방, 양국 간 외교적 갈등이 깊어지기도 했다. 당시 미국 내 팬암 여객기 테러 희생자 유족과 의회를 중심으로 반영(反英) 여론이 확산되자 브라운 총리는 “석방 결정은 스코틀랜드 정부가 내린 독자적 결정”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신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진땀을 흘려야 했다.
또 2010년에는 영국 석유회사 BP가 멕시코 만에서 대규모 원유 유출 사고를 일으켜 양국 관계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았다. 사고 수습 작업이 난항을 겪으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비외교적 수사를 동원해 BP를 원색적으로 비난하자, 영국 경제계가 발칵 뒤집혔던 것이다. 당시 캐머런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미국 방문을 앞둔 상황이었고, 오바마 대통령과의 첫 대면부터 어색한 장면이 연출됐다. 제2차 세계대전은 물론 테러와의 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을 함께 치르며 혈맹을 과시하던 양국은 이런 암초에 걸려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영국 국빈 방문을 통해 두 정상은 과거의 불편했던 관계를 청산하고 최고의 동맹관계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오바마-캐머런의 정상외교는 과거 영국 국민이 외면하던 블레어-부시 관계와 달리 대다수 국민의 절대적 지지 속에서 진행됐다. 영국 언론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방문 기간 내내 “록스타 같은 인기를 누렸다”고 보도했다.
‘기브 앤 테이크’ 방정식
미국 오바마 대통령(왼쪽)과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국내 정치와 외교 정책 등을 논의하면서 최고의 동반자임을 과시했다.
먼저 오바마 대통령은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번 유럽 순방을 통해 국내 유권자에게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기 위상을 다시 한 번 각인하려는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도를 충족하는 데 화려함과 장엄함을 함께 보여주는 영국 국빈 방문만큼 효과적인 소재도 없을 것이다. 버킹엄궁전에서의 공식 만찬, 불과 한 달 전 세계를 열광시켰던 윌리엄-미들턴 로열 커플과의 만남 등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후광 효과를 안겨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반면, 캐머런 총리는 현재 영국 국내 정치의 가장 큰 쟁점인 재정 긴축 문제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호의적 언급을 해준다면 긴축정책에 따른 정치적 논란을 잠재우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현재 미국과 영국은 국가 재정 적자로 경제정책에 관한 한 초긴축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노동당은 이를 두고 보수당의 지나친 긴축정책이 오히려 경제 회복 기조를 더디게 한다고 지적해왔다. 또한 캐머런 총리가 주도하는 급진적 긴축정책과 오바마 행정부가 취하는 상대적으로 완만한 경제정책을 비교해가며 경제말살정책이라고 비난했다.
따라서 캐머런 총리로서는 고실업에 이은 복지 혜택 축소로 국민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말을 통해 경기 침체가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외교 정책으로 무대를 옮겨도 영국과 미국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먼저 아프가니스탄 철군 일정을 순조롭게 진행해야 하고, 중동 민주화 지원 프로그램에도 공조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는 리비아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일이다.
장기화하고 있는 리비아 사태에서 미국은 여전히 한발 뺀 채 핵심 임무를 맡길 꺼린다. 프랑스와 영국을 중심으로 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카다피 제거를 비롯해 리비아에서 임무를 끝까지 완수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국가 재정 적자 여파로 국방비를 대폭 삭감하려는 영국 역시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프리카 지역에서 영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감안할 때 카다피 제거에 실패한 채 리비아를 떠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영국과 프랑스를 앞세워 리비아 사태를 끌고 가려 하고, 캐머런 총리는 부담스러운 전쟁을 떠맡는 대신 오바마에게 대가를 얻어내려 하고 있다. 국내 정치와 외교 정책의 각자 우선순위를 서로 다른 손에 들고 있는 이런 ‘기브 앤 테이크’ 방정식이 민주당 출신 미국 대통령과 보수당 소속 영국 총리의 ‘찰떡궁합’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