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 7개월간 옥살이를 한 현직 경찰관이 검찰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섰다. 전북 정읍경찰서 이광호(48) 경위는 자신을 구속기소했던 전주지검 정읍지청 검사가 창원지검으로 근무지를 옮기자 경남 창원시까지 원정 가 시위를 벌였다. 2010년 1월 4일 이 경위는 검찰에 구속됐다. 정읍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 시절 면세유 불법 취득 업자 김모 씨로부터 “사건을 잘 봐달라”는 명목으로 2007년 정읍의 한 식당에서 800만 원, 2009년 정읍보건소 주차장에서 500만 원 등 총 1300만 원을 받은 혐의(알선수재 및 뇌물수수)였다. 업자 김씨는 현재 복역 중이다.
이 경위는 “검찰이 수사의 기본원칙을 무시했다”고 주장한다. 검찰이 김씨의 진술에만 의존하고 자신의 무죄를 밝혀줄 알리바이나 객관적 증거는 외면했다는 것. 이 경위는 김씨의 진술을 반박하는 통화기록 명세 등을 1심 재판부에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돈 준 업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정황상 유죄가 인정된다”며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수사관 명예에 씻을 수 없는 상처
하지만 2심 재판부는 같은 수사기록, 증거를 가지고 “돈 준 업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고 이 경위가 제시한 증거가 인정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공소사실은 진실이라는 확신을 하게 만드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따라야 한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이 경위와 함께 구속됐던 다른 경찰 간부 2명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경위는 “수사를 잘못했다고 판단되면 구속한 뒤에라도 관둬야 했다. 검찰이 브로커 진술에만 의존해 경찰 간부 3명을 잡아들인 일이 알려질 경우 후폭풍이 크기에 밀어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위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3월 복직했다. 하지만 1987년 순경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해 행정자치부 장관, 경찰청장 등에게 28회나 표창을 받은 명예를 회복할 길은 요원하다. 게다가 이 경위의 가족도 비리 경찰 가족이라는 주변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이 경위는 자신을 구속기소했던 검사의 사과를 받으려고 연락을 시도했지만 사과 한 마디 듣지 못했다. ‘주간동아’ 역시 해당 검사실로 전화했으나 직원이 “이 사건과 관련해 검사는 아무런 할 얘기가 없다”고만 밝혔다.
이 경위에게는 도움을 구하거나 동병상련을 호소하는 전화가 무수히 걸려 왔다. 이 경위는 “수사관 생활을 오래 했지만 검찰의 억지 수사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이 이 정도라면 일반인이 겪은 피해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검찰의 기소권과 수사권 독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수사권 독립이 오랜 숙원인 경찰 내부에서도 이 경위의 1인 시위에 주목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 경위 같은 사례가 1년에 2~3건 된다. 경찰관 개인이 싸워야 할 뿐 본청 차원에서 돕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억울한 옥살이는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경찰청 이철규 정보국장은 2001년 안산경찰서 서장 시절 관내 음향기기 업체로부터 2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던 업체 관계자의 진술을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뇌물공여 사실을 시인한 업체 관계자가 자신의 회사가 검찰수사를 받게 될 것을 우려해 허위로 진술했다는 의심이 드는 데다, 당시 정황을 봐도 뇌물을 수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이 국장은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1년간 옥살이를 하고 2년여 동안 법정 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 밖에 경찰청 박모 전 특수수사과장, 경남지방경찰청 최모 공보관도 뇌물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무영 전 경찰청장은 2000년 2월 수지 김 피살 사건을 내사 중단하고 수사기록을 국정원에 넘겨준 혐의로 기소됐다가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마약사범의 진술로 구속됐다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A경감은 “일선에서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의 힘을 검찰이 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검찰청 한찬식 대변인은 “법원 판결에서도 유죄가 확정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증거판단 등에서 잘못 판단할 수 있다. 검찰도 첩보, 진정, 단서가 있을 때 수사를 시작하므로 경찰 흠집 내기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은 제 식구가 무고한 일로 당해도 어쩔 수 없지만 검찰은 다르다. 검찰은 뇌물수수 경찰을 중죄로 다스리면서 뇌물수수 검사는 직무 관련성이 없다며 처벌하지 않고 인사 조치로 수습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아왔다.‘스폰서 검사’사건과 ‘그랜저 검사’사건이 유명하다.‘스폰서 검사’사건은 부산·경남 지역 건설업자가 지역 전·현직 검사 100여 명에게 25년 동안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10만 경찰도 유권자다”
4월 6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선진수사제도연구회 학술세미나에서 패널들이 경찰 수사권 독립 문제에 관해 토론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 모두 잘못된 수사, 표적 수사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 만한 힘을 가졌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반면, 경찰은 검찰을 전혀 견제할 수 없다. 한 일선 경찰서 수사과 팀장은 “한창 수사를 하다가도 검찰이 수사기록을 넘기고 끝내라고 하면 손을 뗄 수밖에 없다. 검찰 관련 수사는 진행조차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른 경감은 “법에 어긋난 일을 한 경찰은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잘못이 없다는 게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경찰을 무리하게 기소하는 것은 자칫 의도적 경찰 흠집 내기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과 검찰은 수사권을 두고 한창 힘겨루기 중이다. 3월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이하 사개특위) 6인소위는 경찰 수사 개시권 명시, 명령 복종 조항 삭제에 합의했다. 당시 경찰은 반기면서도 표정관리에 들어갔지만 검찰은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검찰은 경찰이 수사를 독자적으로 하기 시작하면 억울한 피해자가 더 생겨 국민 인권은 한 발 후퇴할 우려가 있다는 논리를 편다.
이와 관련해 5월 25일 한나라당 비공개 간담회에 참가한 사개특위 소속 의원들은 경찰 수사 개시권 명시, 명령복종 조항 삭제 등 지난 3월 결정한 경찰 수사권 관련 큰 원칙을 유지키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찰청 한찬식 대변인은 “사개특위에서 구체적인 안이 나오면 의견을 피력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사개특위 안이 그대로 결정된다면 법무부와 일부 의원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한 상황. 이런 반발에 대해 경찰의 밑바닥 민심은 “표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한 경찰관의 말이다.
“경찰 조직이 10만 명입니다. 배우자만 포함해도 20만 명이에요. 표심으로라도 의원들을 설득할 겁니다. 무소불위 검찰을 견제하는 게 국민의 인권에 도움 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