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의 얼굴을 모른다면, 명동이나 남대문시장에서 마주친다고 해도 그를 무술의 고수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으리라. 대부분의 무술 고수들이 그렇지만 이연걸, 그도 너무나 평범한 외모를 갖고 있다. 일단 키가 작다. 자료에는 168cm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 보면 더 작게 느껴진다. 보디빌더처럼 근육이 울퉁불퉁 나와 있지도 않다. 그러니 거리에서 보면 그는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일 뿐이다.
이소룡·성룡·이연걸·토니 자로 이어지는 동양의 액션배우들은, 지금은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된 ‘터미네이터’ 아널드 슈워제네거나 실베스터 스탤론, 혹은 장 클로드 반담이나 스티븐 시걸처럼 거구의 근육맨이 아니다. 동양의 액션배우들을 와이어에 의지하는 배우로 절대 폄하할 수 없는 이유가 그들 대부분이 실제로 뛰어난 무술 고수이기 때문이다.
소림 무술경기대회 5연패 … 1979년 ‘소림사’로 데뷔
이연걸, 중국식으로는 리롄제, 영어 이름은 제트 리(Jet Li). 이연걸은 8살 때 무술을 시작해 중국 최고의 무술대회인 소림 무술경기대회 5연패라는 화려한 경력을 등에 업고 16살의 나이로 ‘소림사’(1979년)를 통해 스크린 데뷔했다. 그 이연걸이 이제 마지막 액션영화를 찍었다. ‘백발마녀전’의 우인태 감독이 연출한 ‘무인 곽원갑’은 중국 청나라 말기의 실존인물 곽원갑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로, 외세의 침입에 맞서 무술을 통해 중국인의 자존심을 지키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곽원갑은 42살 때 한 일본인에게 살해됐는데 이연걸의 올해 나이가 바로 그 나이다.
20세기 초, 상하이에서 정무무도회를 설립해 외세에 대항한 곽원갑은 ‘정무문’에서 이소룡이 연기한 진진의 스승이다. ‘정무문’에는 살해당한 스승의 복수를 하는 진진의 삶이 치열하게 그려져 있다. 이연걸은 1984년 리메이크된 ‘정무문’에서 1대 이소룡에 이어 진진 역을 맡았다. 곽원갑이라는 인물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던 이연걸은 자신의 마지막 액션영화로 ‘무인 곽원갑’을 선택했다.
“이번 영화는 우리가 결국 자기 안의 나약함을 이겨야 하며, 스스로를 극복해가는 게 진정한 승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는 올바른 무술정신을 곽원갑의 마음과 그의 삶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 나는 지난 20여년 동안 무술영화를 찍어왔다. 대부분 선악 구도의 영화였는데,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에게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착한 사람도 폭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교 신자가 되면서 나는 폭력은 절대 상대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술보다 중요한 건 이해와 사랑이다.”
이연걸이 한때 출가해 스님이 될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중국권 최고의 배우이며 할리우드에서도 성공한 배우가 스님이 된다는 소식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분명히 “출가할 생각은 없다. 앞으로도 영화를 통해 계속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그는 스님처럼 옷을 입고 염주를 돌리며 선문답 같은 말을 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제스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는 진정으로 심각하게 출가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출가만이 깨달음의 방법은 아닐 것이다.
“이 영화에는 무술의 깨달음과 정신이 깃들어 있다. 내 생각에 무도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는 3단계가 있다. 1단계는 손에도 마음에도 칼이 있는 단계다. 이때는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무술을 연마한다. 2단계는 손에는 칼이 없지만 마음에는 칼이 있다. 상대를 직접 해치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감화시키려고 한다. 3단계는 손에도 마음에도 칼이 없는 단계다. 절대적인 적이 없으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대한다.”
“지금 당신은 어느 단계인가”라는 질문에 이연걸은 웃으며 말한다.
“‘황비홍’을 찍을 때는 1단계였던 것 같고, 지금은 2단계에 와 있는 것 같다.”
그의 대답은 너무 겸손한 것 같다. 이연걸이 ‘무인 곽원갑’의 제작을 맡게 된 계기는 그가 36살 때 귀의한 불교였다.
이연걸은 “너무 일찍 명예와 부를 얻었다. 그래서 언제나 마음이 공허했는데 불교를 통해 물질이 주지 못하는 진정한 행복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에도 계속 한 손으로 염주를 돌렸다. 목에도 명치 부분까지 내려오는 긴 염주를 하고 있었다. 정말 그에게서는 면벽참선하는 수도승의 냄새가 났다. 어느 한 분야만 수십 년을 파고들어도 득도의 길이 열리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무술은 싸움을 안 하는 것이다. 무(武)는 창을 제지한다는 의미다. 무술이라고 하면 손발의 움직임 같은 기술을 말한다. 또 폭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을 무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음속의 두려움과 이기심을 극복하는 것, 그것이 진짜 무술이다. 내가 생각하는 무술은 마음의 터득, 무술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정신의 고귀함 같은 것들이다. 나는 무술연기 인생을 ‘무인 곽원갑’에 다 쏟아부었다. 더 이상 무술영화를 통해 할 말이 없다. 내가 말하는 무술로서의 영화는 이것이 마지막이다.”
할리우드 작품에선 대부분 악당 역할
정말 ‘무인 곽원갑’은 이연걸의 마지막 액션영화일까? 이제 다시는 그의 액션 연기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연걸의 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나 스스로의 무술영화는 ‘무인 곽원갑’이 마지막이다. 그러나 다른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을 때 내가 액션 연기를 꼭 해야 한다면 그때는 할 생각이다. 액션을 위한 액션영화는 하지 않겠다. 내가 죽지 않는 한 당신은 연기를 통해서 계속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연걸은 한 사람의 배우로서 계속 영화를 찍을 생각이다. 그러니 ‘무인 곽원갑’이 이연걸의 마지막 액션영화라고 홍보되고 있는 것에는 조금 과장이 있다. 왜냐하면 이연걸은 “앞으로 영화에서 꼭 필요하다면 액션 연기를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연걸을 캐스팅한 감독이나 제작자는 너무나 당연하게 그에게 액션 연기를 요구하지 않겠는가.
이연걸은 중국에서 태어나 소림 무술을 배웠고, 홍콩으로 건너가 아시아 최고의 배우가 됐으며, 할리우드로 진출해 세계적인 액션배우가 되었다. 그러나 할리우드가 요구하는 이연걸의 캐릭터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대부분 악당이다. 신비한 동양 무술을 보여주며 서양 배우들과 대결하다가 쓰러지는 악당 역할이다.
그러나 이제 조금씩 변화해가지 않을까? 이연걸은 사람을 해치는 최후의 살수는 쓰지 않는 곽원갑의 무술을 통해 자신의 내적 성숙을 표현하고 있다. 늙은 이연걸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바다나 자연을 정화하자는 운동은 있어도 오염된 영혼을 정화하자는 운동은 없다. 모두가 자신의 영혼이 병든지 모른 채 폭력을 앞세워 영리만 추구한다. 앞으로 내 인생의 절반은 심령을 정화하는 운동을 하는 데 바치고 싶다. 나의 진정한 적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이소룡·성룡·이연걸·토니 자로 이어지는 동양의 액션배우들은, 지금은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된 ‘터미네이터’ 아널드 슈워제네거나 실베스터 스탤론, 혹은 장 클로드 반담이나 스티븐 시걸처럼 거구의 근육맨이 아니다. 동양의 액션배우들을 와이어에 의지하는 배우로 절대 폄하할 수 없는 이유가 그들 대부분이 실제로 뛰어난 무술 고수이기 때문이다.
소림 무술경기대회 5연패 … 1979년 ‘소림사’로 데뷔
이연걸, 중국식으로는 리롄제, 영어 이름은 제트 리(Jet Li). 이연걸은 8살 때 무술을 시작해 중국 최고의 무술대회인 소림 무술경기대회 5연패라는 화려한 경력을 등에 업고 16살의 나이로 ‘소림사’(1979년)를 통해 스크린 데뷔했다. 그 이연걸이 이제 마지막 액션영화를 찍었다. ‘백발마녀전’의 우인태 감독이 연출한 ‘무인 곽원갑’은 중국 청나라 말기의 실존인물 곽원갑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로, 외세의 침입에 맞서 무술을 통해 중국인의 자존심을 지키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곽원갑은 42살 때 한 일본인에게 살해됐는데 이연걸의 올해 나이가 바로 그 나이다.
20세기 초, 상하이에서 정무무도회를 설립해 외세에 대항한 곽원갑은 ‘정무문’에서 이소룡이 연기한 진진의 스승이다. ‘정무문’에는 살해당한 스승의 복수를 하는 진진의 삶이 치열하게 그려져 있다. 이연걸은 1984년 리메이크된 ‘정무문’에서 1대 이소룡에 이어 진진 역을 맡았다. 곽원갑이라는 인물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던 이연걸은 자신의 마지막 액션영화로 ‘무인 곽원갑’을 선택했다.
“이번 영화는 우리가 결국 자기 안의 나약함을 이겨야 하며, 스스로를 극복해가는 게 진정한 승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는 올바른 무술정신을 곽원갑의 마음과 그의 삶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 나는 지난 20여년 동안 무술영화를 찍어왔다. 대부분 선악 구도의 영화였는데,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에게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착한 사람도 폭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교 신자가 되면서 나는 폭력은 절대 상대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술보다 중요한 건 이해와 사랑이다.”
이연걸이 한때 출가해 스님이 될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중국권 최고의 배우이며 할리우드에서도 성공한 배우가 스님이 된다는 소식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분명히 “출가할 생각은 없다. 앞으로도 영화를 통해 계속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그는 스님처럼 옷을 입고 염주를 돌리며 선문답 같은 말을 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제스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는 진정으로 심각하게 출가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출가만이 깨달음의 방법은 아닐 것이다.
‘무인 곽원갑’
“지금 당신은 어느 단계인가”라는 질문에 이연걸은 웃으며 말한다.
“‘황비홍’을 찍을 때는 1단계였던 것 같고, 지금은 2단계에 와 있는 것 같다.”
그의 대답은 너무 겸손한 것 같다. 이연걸이 ‘무인 곽원갑’의 제작을 맡게 된 계기는 그가 36살 때 귀의한 불교였다.
이연걸은 “너무 일찍 명예와 부를 얻었다. 그래서 언제나 마음이 공허했는데 불교를 통해 물질이 주지 못하는 진정한 행복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에도 계속 한 손으로 염주를 돌렸다. 목에도 명치 부분까지 내려오는 긴 염주를 하고 있었다. 정말 그에게서는 면벽참선하는 수도승의 냄새가 났다. 어느 한 분야만 수십 년을 파고들어도 득도의 길이 열리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무술은 싸움을 안 하는 것이다. 무(武)는 창을 제지한다는 의미다. 무술이라고 하면 손발의 움직임 같은 기술을 말한다. 또 폭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을 무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음속의 두려움과 이기심을 극복하는 것, 그것이 진짜 무술이다. 내가 생각하는 무술은 마음의 터득, 무술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정신의 고귀함 같은 것들이다. 나는 무술연기 인생을 ‘무인 곽원갑’에 다 쏟아부었다. 더 이상 무술영화를 통해 할 말이 없다. 내가 말하는 무술로서의 영화는 이것이 마지막이다.”
할리우드 작품에선 대부분 악당 역할
정말 ‘무인 곽원갑’은 이연걸의 마지막 액션영화일까? 이제 다시는 그의 액션 연기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연걸의 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나 스스로의 무술영화는 ‘무인 곽원갑’이 마지막이다. 그러나 다른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을 때 내가 액션 연기를 꼭 해야 한다면 그때는 할 생각이다. 액션을 위한 액션영화는 하지 않겠다. 내가 죽지 않는 한 당신은 연기를 통해서 계속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연걸은 한 사람의 배우로서 계속 영화를 찍을 생각이다. 그러니 ‘무인 곽원갑’이 이연걸의 마지막 액션영화라고 홍보되고 있는 것에는 조금 과장이 있다. 왜냐하면 이연걸은 “앞으로 영화에서 꼭 필요하다면 액션 연기를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연걸을 캐스팅한 감독이나 제작자는 너무나 당연하게 그에게 액션 연기를 요구하지 않겠는가.
이연걸은 중국에서 태어나 소림 무술을 배웠고, 홍콩으로 건너가 아시아 최고의 배우가 됐으며, 할리우드로 진출해 세계적인 액션배우가 되었다. 그러나 할리우드가 요구하는 이연걸의 캐릭터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대부분 악당이다. 신비한 동양 무술을 보여주며 서양 배우들과 대결하다가 쓰러지는 악당 역할이다.
그러나 이제 조금씩 변화해가지 않을까? 이연걸은 사람을 해치는 최후의 살수는 쓰지 않는 곽원갑의 무술을 통해 자신의 내적 성숙을 표현하고 있다. 늙은 이연걸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바다나 자연을 정화하자는 운동은 있어도 오염된 영혼을 정화하자는 운동은 없다. 모두가 자신의 영혼이 병든지 모른 채 폭력을 앞세워 영리만 추구한다. 앞으로 내 인생의 절반은 심령을 정화하는 운동을 하는 데 바치고 싶다. 나의 진정한 적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