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나오토(管直人) 일본 총리는 2010년 12월 23일 고노 마사하루(河野雅治) 주러시아 일본대사를 사실상 경질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취임 2년이 채 안 되는 주요국 대사의 경질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경질 이유가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는 내용이다.
고노 대사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는 쿠릴열도(일본 명칭은 북방영토) 남방 4개 섬의 하나인 쿠나시르(일본명 구나시리(國後))를 방문(11월 1일)하기 직전까지 “대통령의 방문은 없다”고 본국에 정보 보고를 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고노 대사는 10월 28일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정례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방문 계획이 구체적으로 있다고 들은 적 없다”고 공개적으로 부인했다. 대통령이 섬을 방문하기 고작 나흘 전이다.
고노 대사의 이 같은 보고를 근거로 정부 대변인인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관방장관은 대통령의 섬 방문 사흘 전인 10월 29일 기자회견에서도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잘못된 언급을 되풀이했다.
일본으로선 매우 중요한 사안인 러시아 대통령의 북방영토 방문을 관방장관이 새카맣게 모르고 있었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꼴이었다. 일본 외교의 망신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고노 대사, 나흘 전까지 “방문 없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2010년 9월 말 “가까운 시일 안에 방문한다”고 명언했고, 대통령의 방문설은 10월 말까지 계속 러시아 언론 등에 보도됐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일본 대사관은 “방문은 없다”고 보고했다. 간 총리도 주위에 “정말 대통령이 방문하지 않느냐”고 물었으나 보좌관들은 “러시아 대사관의 보고로는 하지 않는다”고 답할 뿐이었다. 이에 따라 간 총리는 사전에 대통령 방문 중지를 요청할 수 없었다. 세계 각국에 정보망을 가진 일본의 정부조직이 이 정도로밖에 기능하지 못하느냐는 의문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러시아(구소련 포함) 국가원수로는 사상 처음 쿠나시르 섬을 방문한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영토 문제에 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방문 그 자체로 이들 4개 섬을 일본에 반환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준 셈이었다. 1945년 패전 이후 수십 년간 북방영토 4개 섬을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며 러시아 측에 반환을 요구해온 일본 정부와 국민에겐 충격적인 일이었다. 마침 이 시기는 중국과 일본이 각각 영유권을 주장하는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주변에서 일어난 중국 어선과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충돌사건(9월)으로 일본이 중국의 고압적인 태도에 굴복해 어쩔 수 없이 구속했던 중국인 선장을 석방한 직후였다.
일본 여론은 ‘굴욕외교’라며 정부에 강한 불만을 터뜨렸고, 중국에선 이와 관련한 반일 데모가 일어나는 등 양국관계가 험악해지고 있었다. 영토 문제가 어느 때보다 일본 정부와 국민에게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을 때였다. 야당과 상당수 국민으로부터 ‘굴욕외교’ ‘약체외교’라는 불만과 비난이 거세게 일었고, 간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하는 한 원인이 됐다.
어쨌든 일본 정부의 수뇌가 전혀 모르는 사이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쿠나시르 방문길에 올랐고, 대통령 방문 후 간 총리는 러시아 측에 항의하기 위해 2010년 11월 3일 고노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상황 파악에 나선 간 총리와 관방장관이 “왜 방문하지 않는다고 보고했느냐”는 추궁하자 대사는 “러시아 외무성으로부터 그렇게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간 총리는 “누가 그렇게 말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그렇게 판단했느냐가 중요하다”고 질책했다. 이에 대사는 “저는 러시아 사정에 밝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이 순간 간 총리의 분노가 폭발했다.
고노 대사는 외무성의 종합외교정책국장, 경제담당 외무심의관 등을 지낸 정통 외무관료 출신으로 대사 취임(2009년 2월) 전까지 러시아 근무 경험이 없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일본 정부의 정보 수집 및 분석 능력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러시아 정권의 정보 관리는 구소련 첩보기관(KGB) 요원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 현 총리가 대통령으로 취임(2000년)한 이후 매우 엄격해졌다. 러시아 사정에 밝은 일본의 한 소식통은 “러시아 정정(政情)이 혼란스럽고 내분도 있던 1990년대엔 크렘린의 내부 정보까지 입수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각국이 정보 수집에 큰 곤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 분석과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지금 총리 관저에서 가공하지 않은 ‘생(生)정보’를 요구하면서 각 대사관이 보낸 전문을 그대로 읽으려고 한다. 그러나 비전문가들인 정치인들이 갑자기 생정보를 읽는다고 해서 그 의미를 적확히 분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현 정권의 정보분석 체계에 의문을 표시했다.
중·러시아로부터 동시 협공받는 형국
일련의 혼란에 대해 일본 정부 내에선 “대사 한 사람의 책임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정보가 정권의 중추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상황이 문제다. 고노 대사는 희생양이 된 셈”이라는 동정론도 나온다.
일본 측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북방영토로 부르는 4개 섬은 홋카이도(北海道) 북서쪽의 에토로후(擇捉), 구나시리, 시코탄(色丹), 하보마이(齒舞) 군도다. 1850년대 초반까지 일본인도 러시아인도 살지 않던 무인도였으나, 1855년 일본과 러시아 간 국경이 확정된 러일통호조약(또는 화친조약)이 체결되면서 일본 영토가 됐다. 그러나 당시 일본이 국제적 승인을 얻는 조치를 취해놓은 것은 아니었다.
이후 이곳에 일본인들이 이주해 1945년 8월 당시 약 1만7000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해 8월 8일 소련이 대일 선전포고를 하면서 소련군이 진입해 일본인들을 전원 퇴거시켰고, 이후 샌프란시스코조약(1951년)으로 러시아가 실효 지배 중이다.
이에 일본은 북방영토가 역사적으로 자국 영토였다며 반환을 요구했고, 소련은 1956년 양국 간 국교를 정상화한 소일공동선언에서 시코탄과 하보마이의 반환을 일본에 타진했다. 그러나 일본 측이 4개 섬 모두를 반환하라고 요구해 교섭이 결렬됐다.
1960년 소련은 미일안보조약 개정 등의 정세 변화를 이유로 2개 섬 반환 의사까지 백지화했다. 1997년에 러시아는 이 문제를 “2000년까지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고 했으나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간 내각은 대사 교체를 계기로 혼선을 빚고 있는 대러시아 외교를 바로잡을 방침이다. 그러나 러시아 부총리가 12월 중순 쿠나시르 등 2개 섬을 방문해 “이곳은 러시아 땅”이라고 말한 데 이어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12월 말)에서 “4개 섬 전부 우리 땅”이라고 처음 언급해, 4개 섬 전부를 일본에 돌려줄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일본의 북방영토와 관련한 대러시아 외교는 큰 장벽에 부딪혀 가까운 장래에 해결될 전망이 없어 보인다. 소련 붕괴 후 급격히 약화됐던 러시아의 경제력이 자원개발 등으로 회복되고 있어 더는 일본으로부터 경제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된 것이 영토 문제에서 강경 자세를 취한 배경의 하나로 분석된다.
일본은 2010년도 국내총생산(GDP)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떠오른 중국과 러시아 양국으로부터 영토와 관련해 협공을 받는 형국이다.
고노 대사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는 쿠릴열도(일본 명칭은 북방영토) 남방 4개 섬의 하나인 쿠나시르(일본명 구나시리(國後))를 방문(11월 1일)하기 직전까지 “대통령의 방문은 없다”고 본국에 정보 보고를 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고노 대사는 10월 28일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정례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방문 계획이 구체적으로 있다고 들은 적 없다”고 공개적으로 부인했다. 대통령이 섬을 방문하기 고작 나흘 전이다.
고노 대사의 이 같은 보고를 근거로 정부 대변인인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관방장관은 대통령의 섬 방문 사흘 전인 10월 29일 기자회견에서도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잘못된 언급을 되풀이했다.
일본으로선 매우 중요한 사안인 러시아 대통령의 북방영토 방문을 관방장관이 새카맣게 모르고 있었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꼴이었다. 일본 외교의 망신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고노 대사, 나흘 전까지 “방문 없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2010년 9월 말 “가까운 시일 안에 방문한다”고 명언했고, 대통령의 방문설은 10월 말까지 계속 러시아 언론 등에 보도됐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일본 대사관은 “방문은 없다”고 보고했다. 간 총리도 주위에 “정말 대통령이 방문하지 않느냐”고 물었으나 보좌관들은 “러시아 대사관의 보고로는 하지 않는다”고 답할 뿐이었다. 이에 따라 간 총리는 사전에 대통령 방문 중지를 요청할 수 없었다. 세계 각국에 정보망을 가진 일본의 정부조직이 이 정도로밖에 기능하지 못하느냐는 의문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러시아(구소련 포함) 국가원수로는 사상 처음 쿠나시르 섬을 방문한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영토 문제에 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방문 그 자체로 이들 4개 섬을 일본에 반환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준 셈이었다. 1945년 패전 이후 수십 년간 북방영토 4개 섬을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며 러시아 측에 반환을 요구해온 일본 정부와 국민에겐 충격적인 일이었다. 마침 이 시기는 중국과 일본이 각각 영유권을 주장하는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주변에서 일어난 중국 어선과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충돌사건(9월)으로 일본이 중국의 고압적인 태도에 굴복해 어쩔 수 없이 구속했던 중국인 선장을 석방한 직후였다.
일본 여론은 ‘굴욕외교’라며 정부에 강한 불만을 터뜨렸고, 중국에선 이와 관련한 반일 데모가 일어나는 등 양국관계가 험악해지고 있었다. 영토 문제가 어느 때보다 일본 정부와 국민에게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을 때였다. 야당과 상당수 국민으로부터 ‘굴욕외교’ ‘약체외교’라는 불만과 비난이 거세게 일었고, 간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하는 한 원인이 됐다.
어쨌든 일본 정부의 수뇌가 전혀 모르는 사이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쿠나시르 방문길에 올랐고, 대통령 방문 후 간 총리는 러시아 측에 항의하기 위해 2010년 11월 3일 고노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상황 파악에 나선 간 총리와 관방장관이 “왜 방문하지 않는다고 보고했느냐”는 추궁하자 대사는 “러시아 외무성으로부터 그렇게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간 총리는 “누가 그렇게 말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그렇게 판단했느냐가 중요하다”고 질책했다. 이에 대사는 “저는 러시아 사정에 밝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이 순간 간 총리의 분노가 폭발했다.
고노 대사는 외무성의 종합외교정책국장, 경제담당 외무심의관 등을 지낸 정통 외무관료 출신으로 대사 취임(2009년 2월) 전까지 러시아 근무 경험이 없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일본 정부의 정보 수집 및 분석 능력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러시아 정권의 정보 관리는 구소련 첩보기관(KGB) 요원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 현 총리가 대통령으로 취임(2000년)한 이후 매우 엄격해졌다. 러시아 사정에 밝은 일본의 한 소식통은 “러시아 정정(政情)이 혼란스럽고 내분도 있던 1990년대엔 크렘린의 내부 정보까지 입수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각국이 정보 수집에 큰 곤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 분석과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지금 총리 관저에서 가공하지 않은 ‘생(生)정보’를 요구하면서 각 대사관이 보낸 전문을 그대로 읽으려고 한다. 그러나 비전문가들인 정치인들이 갑자기 생정보를 읽는다고 해서 그 의미를 적확히 분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현 정권의 정보분석 체계에 의문을 표시했다.
중·러시아로부터 동시 협공받는 형국
일련의 혼란에 대해 일본 정부 내에선 “대사 한 사람의 책임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정보가 정권의 중추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상황이 문제다. 고노 대사는 희생양이 된 셈”이라는 동정론도 나온다.
일본 측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북방영토로 부르는 4개 섬은 홋카이도(北海道) 북서쪽의 에토로후(擇捉), 구나시리, 시코탄(色丹), 하보마이(齒舞) 군도다. 1850년대 초반까지 일본인도 러시아인도 살지 않던 무인도였으나, 1855년 일본과 러시아 간 국경이 확정된 러일통호조약(또는 화친조약)이 체결되면서 일본 영토가 됐다. 그러나 당시 일본이 국제적 승인을 얻는 조치를 취해놓은 것은 아니었다.
이후 이곳에 일본인들이 이주해 1945년 8월 당시 약 1만7000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해 8월 8일 소련이 대일 선전포고를 하면서 소련군이 진입해 일본인들을 전원 퇴거시켰고, 이후 샌프란시스코조약(1951년)으로 러시아가 실효 지배 중이다.
이에 일본은 북방영토가 역사적으로 자국 영토였다며 반환을 요구했고, 소련은 1956년 양국 간 국교를 정상화한 소일공동선언에서 시코탄과 하보마이의 반환을 일본에 타진했다. 그러나 일본 측이 4개 섬 모두를 반환하라고 요구해 교섭이 결렬됐다.
1960년 소련은 미일안보조약 개정 등의 정세 변화를 이유로 2개 섬 반환 의사까지 백지화했다. 1997년에 러시아는 이 문제를 “2000년까지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고 했으나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간 내각은 대사 교체를 계기로 혼선을 빚고 있는 대러시아 외교를 바로잡을 방침이다. 그러나 러시아 부총리가 12월 중순 쿠나시르 등 2개 섬을 방문해 “이곳은 러시아 땅”이라고 말한 데 이어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12월 말)에서 “4개 섬 전부 우리 땅”이라고 처음 언급해, 4개 섬 전부를 일본에 돌려줄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일본의 북방영토와 관련한 대러시아 외교는 큰 장벽에 부딪혀 가까운 장래에 해결될 전망이 없어 보인다. 소련 붕괴 후 급격히 약화됐던 러시아의 경제력이 자원개발 등으로 회복되고 있어 더는 일본으로부터 경제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된 것이 영토 문제에서 강경 자세를 취한 배경의 하나로 분석된다.
일본은 2010년도 국내총생산(GDP)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떠오른 중국과 러시아 양국으로부터 영토와 관련해 협공을 받는 형국이다.